[돋보기] '설강화' 1987년에 파티하고 춤추는 청춘? 선넘은 사랑타령

이이슬 2021. 12. 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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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시간벌기용 꼼수도, 로맨스로 시선 돌리기도 안 통한 '설강화'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민주화 역사 훼손 논란에 '오해'가 풀릴 것이라며 1회를 추가로 편성했지만, 기존 스토리와 다를 바 없는 전개에 우려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설강화'(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는 민주화 폄훼, 안기부 미화 등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서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고, 시대를 관통한 여러 인사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JTBC는 "'역사 왜곡과 민주화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설강화' 전개 과정에서 오해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며 "앞으로 전개를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지난 24~26일 3~5회 연속 방영을 결정했다.

스토리 전개를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며 당당한 입장을 보였으나 오해가 풀리긴 커녕 앞서 방송된 1~2회와 다를 바 없는 전개에 비판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는 '설강화'의 존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35만여 명이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데 서명했고, JTBC 폐국까지 청원하는데 이르렀다.

'설강화'는 1987년을 배경에 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JTBC는 시대에 배경을 둔 '가상 창작물'로 봐달라는 입장이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또 기억해야만 하는 우리는 이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을까.

참으로 신박하다. '설강화'는 군부독재 속 대선 정국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극적 장치로 활용하는 것도 모자라, 1987년임을 구체적으로 표기한 장면도 나온다. 여러 실존 인물과 극이 겹쳐지는 바. 당시와 분리해서 봐 달라는 입장은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80년대는 민주화 열망을 품은 수많은 청춘의 피와 희생으로 이뤄낸 시대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이 확산했고, 특히 1987년은 군부독재 타도를 향한 열망과 외침으로 가득찬 시대다. 그해 6월 민주 항쟁과 민주화 선언이 이어졌고, 수많은 희생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끌어냈다. 현재 사회의 모습을 형성한 시대이자, 우리의 뿌리가 닿아있는 의미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청춘이 희생됐는지 기억해야 한다. '설강화'의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정해인) 설정은 당시 실제 남파된 간첩이 있었다고 인지하게 할 여지가 있다. 이 점이 역사왜곡으로 지적되는 것이다.

여전히 당시를 둘러싼 여러 음모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작진은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았다면 '오해'나 '반전'을 운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일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설강화'를 향한 논란에 민주화운동 당시 간첩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드라마가 음모론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아울러 '설강화'는 당초 여성 주인공 이름을 영초(지수)로 설정했다가 민주화운동가 천영초를 떠올리게 한다는 뭇매를 맞고 영로로 변경했으나, 남자 주인공인 임수호 역시 임종석, 임수경, 윤이상 등을 연상시킨다는 질타가 거세다.

제작진이 87년대를 배경에 두고,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이름까지 설정한 것은 시대를 단지 가상 배경으로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다.

'설강화'의 남자 주인공 임수호는 여전히 간첩이고, 여자 주인공 은영로는 시대적인 고민 없이 사랑에 빠진 여대생으로 그려진다. 영로는 수호가 운동권 학생인 줄 오해하고 돕는다. 수호가 간첩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종종 의심하는 주변 인물들과 달리, 영로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데 이는 수호를 향한 연정을 품었기 때문으로 그려진다.

한 마디로 사랑에 눈먼 여대생이 간첩 남성에게 빠져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돕다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이야기다. 이후 영로가 수호의 정체를 알고 배신감에 휩싸였지만, 크게 반전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예고된 바. 결국 둘은 사랑을 나눌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설강화'에 출연하는 대학생은 누구도 시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여서 웃고 떠들고, 외모를 가꾸고 파티를 계획한다. 시종일관 이성에 관해 말하고 심지어 신분 세탁을 위해 조건 좋은 배우자를 만날 궁리를 한다. 87년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을 묘사한 수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파 간첩과 안기부, 전두환과 하나회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뻗어나가는 극에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고, 그를 멋있게 연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두환은 간첩조작, 고문 등 80년대 저지른 잘못에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 역사의 산증인들이 여전히 역사를 기억한다. 이는 '설강화'가 지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왜곡 논란과 별개로 극 자체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시청자는 이미 '설강화'에 등을 돌린 분위기다. 1회에서 3.0%로 출발한 시청률은 3회에서 1.9%, 4회 1.7%로 추락했다. 배우 정해인과 그룹 블랙핑크 지수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했지만, 모든 걸 상쇄하긴 역부족이었다.

JTBC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설강화' 방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도 계속한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조용히 이슈가 잦아들길 바란다면, 향후 해당 채널에서 선보이는 드라마를 시청자가 계속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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