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자유 주장하기 전 책임의식부터 [윤지혜의 슬로우톡]

윤지혜 칼럼 2021. 12. 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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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JTBC가 추구한다는 핵심가치 중에 콘텐츠 창작의 자유가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하고 만들어야 할 혹은 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창작되는 데 있어, 어떤 외압도 훼방을 놓는다거나 저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군사독재정권 하에 고통을 당한 바 있던 우리로서는 분명 더없이 귀중한 권리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든 표현의 자유든, 자유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뒤따르는데 ‘책임’이다. 자유는 방송이 아닌 까닭이다. 콘텐츠 창작의 자유를 추구한다면 동시에 그것이 불러올 모든 결과적 상황들에 대한 책임감 또한 묵직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JTBC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자사의 드라마 ‘설강화 : snowdrop’(연출 조현탁, 극본 유현미, 이하 ‘설강화’)에 가지고 있는 오류는 여기서 비롯된다.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는 ‘설강화’는 방영 전부터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배경이 되는 ‘1987년’ 자체가 민주화운동에 있어 상징적인 시기로, 당시 수많은 대학생들이 운동에 참여했단 이유로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잡혀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간첩과 여대생의 로맨스라니 민감하지 않기가 어렵겠다.

물론 혹자의 주장대로, 그렇다고 1987년을 배경으로 한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면 안 될 건 또 없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까. 문제는 실제 역사 속 한 시기를 이야기의 세계로 끌어왔다면, 그것이 설사 단순한 배경에 불과할 지라도, 올바른 시각을 장착하여 접근하는 게 창작자로서 반드시 져야 할 책임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설강화’가 두 주인공에게 부여한 설정은 시대의 아픔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해당 시대를 지나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그 아픔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내고 있다. 그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벗어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설강화’는 어떤 이야기보다 더 각별하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다루는 노력을 보여야 했다.


방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설강화’를 향한 비판이 더욱 거세진 이유다. 여자주인공이 간첩인 남자주인공을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학생으로 오인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남자주인공이 남한의 유력정치인을 납치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민주화운동 관련 노래인 데다가, 남자주인공과 접촉하는 사람은 또 야당의 핵심 인물이다.

반면 안기부(국가 안전 기획부) 직원들은 정의의 수호자처럼 미화되어 그려지며, 심지어 여자주인공은 안기부 부장 딸이다. 이 정도면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기에 각 인물들의 사정에 시대를 너무 깊이 개입시켜 놓은 것이 아닌가. 그래놓고 왜곡된 시선인지 아닌지의 검증의 기미 하나 보이지 않는, 그저 흥미와 재미를 위해 자유롭게 재창작 되었을 뿐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무책임하게 흩뿌려 놓았다.

이를 아직 이야기의 진행이 초반부에 불과하며 뒷 내용을 알지 못해 생긴 오해다, 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나의 이야기, 작품의 주제의식 혹은 세계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실려있기 마련이라서, 전체적인 내용을 모른다 해서 느끼지 못한다거나 읽어내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귀중한 역사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이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일한 1987년을 배경으로, 영화 ‘1987’이 오랜 시간 왜곡되어 왔던, 당시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분투한 사람들의 모습을 ‘힘겹게’ 실어놓았다면, ‘설강화’는 앞서 힘겹게 벗겨놓은 왜곡된 시선을, 고작 두 남녀주인공의 로맨스 이야기를 하겠다고, 그것도 창작의 자유를 운운하며 다시 끌고 들어왔다. 자유를 주장하기 이전에 책임의식부터 갖추는 게 ‘힘겹게’ 자유를 얻어 민주시민이 된 이들의 자세이자 태도임을 상기하길 바랄 따름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JTBC ‘설강화 : snow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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