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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의 안테나] 설리가 브래지어를 하든 말든

입력 2019.05.23. 18:14

브래지어 착용 유무가 언제까지 논란이 돼야 하나.

설리가 또 입방아에 올랐다.

설리의 '노브라' 논란은 이러한 움직임과 맞물린다.

그저 설리는 스스로 브래지어 착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며, '여성의 젖꼭지'를 자연스러운 '신체의 한 부위'로 대중에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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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브래지어 착용 유무가 언제까지 논란이 돼야 하나.

설리가 또 입방아에 올랐다. 이번에도 브래지어 하지 않은 차림을 SNS에 게재했단 이유다. 설리의 '노브라' 쟁점은 지난 2016년 처음 촉발된 문제다. 아직도 논란이니, 3년간 얼마나 인식의 변화가 없었는지 여실히 반증한 꼴이다.

여전히 상당수는 설리의 '노브라'를 비난한다. '유명인이라서', '음란하게 보여서', '노브라는 사회적으로 보편화 된 차림이 아니라서' 등 비난 이유는 다양했는데, 마치 범법 행위라도 한 마냥 거세게 헐뜯는 이들도 있다.

'노브라' 논란의 쟁점은 여성의 젖꼭지를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소비하고 있었는지 돌이켜볼 중요한 전환점이다.

남성 연예인이 상의를 벗고 상반신을 드러내면 당당한 '탈의'라고 했다. 반면 여성 연예인이 상의 안에 브래지어만 안 입어도 민망한 '노출'이 된다. 심지어 예능에선 남성의 젖꼭지를 거리낌없이 웃음 소재로 삼기도 했다. 남성의 젖꼭지를 철저하게 '신체의 한 부위'로 본다면, 여성의 젖꼭지도 동일하게 '신체의 한 부위'로 바라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노브라'는 아직까진 보편적 문화는 아니다. 이는 청소년기부터 '여성이라면 브래지어를 해야만 한다'는 학습을 받으면서, 덩달아 여성의 가슴을 감춰야만 하는 '금단의 신체 부위'로 여긴 탓이 크다.

이 가운데, 최근 국내에 분 페미니즘 바람은 여성들이 신체의 자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함께 '여성의 가슴을 감추기 위해서'란 브래지어의 변질된 목적을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도 야기했다.

설리의 '노브라' 논란은 이러한 움직임과 맞물린다. 그저 설리는 스스로 브래지어 착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며, '여성의 젖꼭지'를 자연스러운 '신체의 한 부위'로 대중에 드러낸 셈이다. 설리가 자신의 신체 부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 역시 대수롭지 않게 '신체의 한 부위'로 여기면 될 일이다.

여성의 브래지어 착용이 당연했던 과거의 사회 분위기에 반하니, 생소하게 느껴지고 눈길이 갈 순 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기 때문에 발생한다. 성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노골적인 대화가 오간다. 여성은 그렇게 또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젖꼭지'를 선정적으로 만드는 게 과연 설리일까. 설리의 당당한 '노브라' 행보를 '틀린 것'으로 치부해 비난할 자격은 누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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