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교미·출산·착유.. 우리가 외면한 젖소의 삶

김상목 입력 2022. 8. 11. 15:21 수정 2022. 8. 11. 16: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카우>

[김상목 기자]

 영화 <카우>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젖소 Cow'.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사육되는 소이고, 대표적인 품종은 얼룩 점박이 외양의 홀스타인 종이며 젖소 1마리는 1년 기준 약 5톤의 우유를 생산한다. 품종 개량된 경우 10~20톤까지 생산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이들은 우유 생산을 목적으로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6년 전후의 경제수명을 가진다. 즉 그 이상 나이를 먹으면 (사람으로 치면 노산의 우려가 발생할 나이대가 되면) 도축당할 운명이다.

모든 젖소는 암소다. 수소는 임신과정을 통해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수소만이 번식용 종우로 수명을 연장할 뿐, 대부분의 수소는 육우 혹은 치즈를 만들기 위한 레닛 제조 용도로 곧 도살된다.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암소와 마찬가지로 끊이지 않고 교배에 동원되기 때문에 암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제수명을 마무리하게 될 운명이다.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의 20년 만의 신작으로 선보였던 2015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선 인류문명이 멸망한 후 살아남은 극소수를 지배하는 군벌 세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원을 독점하고 사회 유지를 위해 생산을 독려한다. 이들이 공급하는 물자 중 'Mother's Milk'가 있다. 인간 외의 대부분 동식물이 사라진 시대, 소나 염소 같은 초식동물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이 고영양분 액체의 정체는 뭘까? 직역 그대로 모유였다. 착유기를 가슴에 착용한 거구의 여성들이 내내 모유를 생산하고 있다. <카우>는 <매드 맥스> 속 여성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어느 젖소의 일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1_어느 젖소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체험
 
 영화 <카우>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이 영화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젖소 '루마'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으로 <카우>는 시작된다. 산고 끝에 송아지가 마침내 루마의 몸 바깥으로 꺼내진다. 루마는 갓 태어난 새끼를 정성스럽게 핥아주고 초유를 먹인다. 하지만 그 직후 엄마와 새끼는 갈라진다. 가장 젖이 많이 나올 시기인 출산 후 1달 동안 생산될 우유는 루마의 새끼 몫이 되면 안 된다. 어미 소의 젖 대신 어린 송아지에겐 분유가 제공된다. 원래는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잔뜩 루마의 체내에서 생산되었을 우유는 젖꼭지마다 빈틈없이 부착된 착유기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빨아들인다. 인간의 의도가 철저하게 관철되는 이 순간에는 목장의 상황과는 이질감이 드는 팝음악이 귓가에 가득 스며든다.

출산 직후에 잔뜩 예민해진 루마는 자신에게 집중된 제작진의 카메라를 줄곧 노려본다. 영화 초반부에서 시선을 바짝 집중시키는 순간이다. 유별난 상황에 제작진의 카메라는 그야말로 초 집중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직접 축산업에 종사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간접적이나마 최초의 체험, 즉 관객이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소와 눈이 서로 마주치는 체험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극장 스크린에서 보시길 권고하는 바다) 그저 고기나 우유를 공급해주는 생체-기계처럼 치부되던 소가 '나'와 대등하게 시선을 교환하는 체험은 퍽 기이한 순간으로 뇌리에 남지 않을까. 초장부터 꽤 묵직한 체험의 시간이다.

이후 겉보기에는 그저 자연스럽게 목장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목가적이라 제멋대로 단정해온 그 시공간에선 우리네 일상 못지않게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이 펼쳐지는 중이다. 찬찬히 전개되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루마는 자기 배로 낳은 새끼와 채 며칠도 함께 있지 못한 채 부지런히 착유기와 한 몸이 된 양 우유를 매일 짜내는 나날을 보낼 따름이다. 처음엔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뎌지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자연스러운 풍경은 못된다.

루마의 갓 태어난 송아지는 어미 소의 우유 수확을 위해 젖도 채 떼지 못한 상태에서 금방 격리되어 비슷한 또래들이 모인 송아지 축사로 옮겨진다. 루마는 격하게 항의해보지만 애지중지 돌보던 새끼와 생이별은 뒤집을 수 없는 운명이다. 물론 이 비극은 루마에게 수차례 반복되어 왔을 테다. 다른 송아지들과 함께 섞인 송아지는 원래 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뿔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신경과 혈관이 이어져 있는 머리의 뿔을 특별한 마취도 없이 제거하고 그 자리를 인두로 지지는 과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통념이 무너져간다.

비록 다른 공장제 축산보다 카메라에 담긴 이 목장은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보이긴 하지만 결국 가축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본질은 다른 목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마는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교미하고, 출산하고, 강제 이별을 거듭하며 매일 착유기로 우유를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좀 더 나아 보였던 조건은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한 (그래서 우유 품질과 생산량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는) 철저한 인간 본위의 판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2_인간의 일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축의 시간
 
 영화 <카우>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시종일관 의도적으로 젖소 루마의 삶을 인간의 그것과 등치 시킨다. 여기엔 발상의 전환이 연계되어 있다. 그렇게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그저 타자이자 객체로만 취급되던 젖소를 주체적인 존재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의인화 기법을 적극 활용해 감정과 지능을 가진 루마라는 존재에게 앞으로 닥쳐올 비극성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순간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교배를 위해 수소와 만난 루마의 시간은 비슷한 소재를 다른 영화들의 접근법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취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주인공 슈퍼돼지가 겪는 강제 교배 장면을 떠올리면 <카우>는 그 대척점에 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이 영화에선 해당 장면의 묘사가 인간들의 로맨스와 의도적으로 유사하게 비치도록 표현된다. 3류 영화에 나올법한 사운드트랙이 깔리고 암소와 수소 사이의 눈빛 교환은 에로틱하기보단 웃음을 유발한다. 인간의 잔혹함을 부각하는 대신에 정반대로 그들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임을 강조하려는 작전이다. 이런 의인화 묘사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제법 호불호가 나뉘긴 할 것 같다.

루마의 반복되는 일상 변주 가운데 간간히 루마가 사라지는 지점도 흥미롭다. 루마의 자손인 송아지가 성장하는 과정은 헤어진 루마의 자녀가 어떻게 되었나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 되기도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이미 성체가 된 루마의 어린 시절을 대신 표현하는 기제로도 활용된다. 그래서 루마가 낳은 새끼가 생이별 후에도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은 안도의 한숨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루마는 새끼가 성장하며 뛰어노는 장면과 반비례하듯 상대적으로 이제 점점 더 나이 들고 쇠약해져 간다. 루마의 노쇠화를 지켜보면서 혈기왕성한 새끼의 성장과정과 비교한다면 이건 마치 윤회 현상을 보듯 내부 순환적인 풍경이 그려지게 된다.

늙고 병든 가축의 운명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실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할 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루마의 운명도 수천수만 마리의 동족들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감독은 영화 내내 인간의 생애와 시기별로 루마(그리고 새끼)의 시간을 매치시키는 방식으로 독특한 감응의 정서를 전달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들지도 모르게 하는 후반부의 몇몇 순간이 있지만 결국 인간의 냉혹함이 방조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거나. 또는 루마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것을 표현하려는 듯 결국 최종 막판에 예상되었던 결말을 단호하게 선보인다. 모두가 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회피해온 바로 그런 결말이다. 더없이 '드라이'한 종말의 시간이다.

3_전대미문의 동물권 영화, 건조하게 현실을 담아내다
 
 영화 <카우>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이 영화에는 내레이션도, 인터뷰도, 자막해설도 없다. 물론 현장의 소리는 존재하지만 목장의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며 툭툭 일상적인 한두 마디를 던질 뿐이다. 그런 인위적인 몇 마디 말들은 특별히 영화의 흐름을 규정하는 내용과는 무관하다. 그 대신에 음악의 사용빈도가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우리가 그저 '음메음메'라고만 인식했던 소의 울음소리는 마치 ASMR 소리처럼 영화 내내 일상 풍경과 어우러진다. 인간들의 수다 대신 인위적 요소로는 목장에서 실제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연출적인 의도로 고유 임무를 띠고 삽입된 음악들이 때로는 과도할 만큼 상징적으로 들어가 역할을 수행한다.

대체 이 독특한 동물복지 다큐멘터리를 기록한 감독은 누구일까? 대충 머릿속에 동물권 관련 소재를 작업하는 몇 명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번지수가 잔뜩 틀렸다. <카우>를 만든 감독은 데뷔작 <말벌>로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고, <붉은 거리> <피쉬 탱크>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무려 3번이나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관록의 안드레아 아널드 감독이다. <카우>는 그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영국 켄트 지방 목장에 살았던 젖소 루마의 '우생'에 관해 제작진의 별다른 개입이나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업되었다.

그렇게 명감독이 작정하고 밀어붙인 <카우>는 아주 독한 영화다. 누구나 알지만 차마 표현하기 쉽지 않았던 작업을 감독은 눈 딱 감고 저질러버린다. 4년의 시간을 루마를 기록하며 보냈다는 감독의 마지막 결단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일정한 각오가 필요하긴 하다.

굳이 본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를 들자면, 해당 주제 관련해서는 국내에서 여전히 교범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서 인간 가족 출연 분량을 몽땅 다 덜어내고 오직 돼지가족의 비극적 운명만을 골격으로 남긴 채, 주인공을 젖소로만 교체하면 나올법한 이야기와 풍경이 가득 펼쳐지는 그런 작품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