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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아티스트 '모어'의 하루하루는 찬란하고 애잔하다 [인터뷰]

이유진 입력 2022. 08. 06. 13:55 수정 2022. 08. 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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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한겨레S] 인터뷰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
"하루하루 찬란하고 애잔한 2022년"
올 상반기 첫 에세이집 출간
다큐 '모어' 개봉..국내외 무대 종횡무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지만
그저 인간으로서 끼 펼치고 싶어"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씨. ㈜엣나인필름 제공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있고 없고/ 그저 인간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로서/ 아름답고 끼스럽게 살아가고 싶다’(‘모어는 모어고 모어다’,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어(본명 모지민·44)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래그 아티스트 중 한명이다. ‘드래그’는 의복, 화장, 행위로 외모를 꾸미고 특정 젠더를 과장되게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가리킨다. ‘드래그 퀸’을 ‘여장 남자’, ‘드래그 킹’을 ‘남장 여자’라고도 했지만 편견을 담은 용어라는 비판이 있다.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모어는 어려서부터 끼가 흘러넘쳤다. 춤추기를 좋아했고, 누이 옷을 즐겨 입고 인형 놀이를 했다. 시골 사람인 부모는 아이를 발레학원에 보냈고 빚을 내 왕자님 옷 같은 100만원짜리 발레복을 사 입혔다.

목포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지만,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해 선배가 뺨을 후려치며 ‘그 여성성 버려!’라고 소리쳤다. 폭력 앞에 마른 몸이 내동댕이쳐졌다. 이태원 지하클럽에 숨어들어가 ‘애증덩어리’ 드래그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는다. 올해 4월 첫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가 나왔고 6월엔 다큐멘터리 <모어>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같은 달, 한국에서 가장 힙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만든 디저트 베이커리 개장 공연에서 갈채 속에 연기를 마쳤고, 미국 뉴욕에서 연 아시아영화제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약속한 날 그는 맥을 추지 못했다. 귀국 직후 코로나 의심 증세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상과 전화를 통해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는 밭은기침을 거듭하면서도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2019년 뉴욕 스톤월항쟁 50주년 기념공연에서 흑조로 분했다. 사진은 타임스퀘어에서의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뉴욕의 털 난 물고기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잖아요. 너무 신나 보여서 아프리라곤 생각 못 했어요.

“엄청난 가면이죠. 3년 만에 간 건데, 호텔방에 누워 있다가 올 수만은 없잖아요. 아픈 몸을 이끌고 이 악물고 관객과의 대화(GV)를 했죠. 가기 직전에 ‘누데이크 성수’ 플래그십 개장에 맞춰 하루 동안 리허설 두번, 공연 다섯번을 했어요. 최악의 몸 상태에서 비행기를 탄 것이에요.”

―2019년 뉴욕 실험예술의 메카인 라마마 극장 무대에 섰죠. 게이 해방운동의 시작점인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으로요.

“창작 뮤지컬 <13 후르츠케이크>에서 올랜도 역을 맡았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인 것이잖아요. 저는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귀신이 제 머리끄덩이를 잡고 드래그 퀸이 되게 하였고, 저는 밤마다 신께 기도를 드렸어요. 학교 선배가 폭력을 행사했고 피하는 심정으로 이태원 환락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결국에는 폭력인 거예요. 힘들게 살던 중에 뉴욕을 가게 되었고 제 꿈을 펼칠 수 있게 됐죠.”

그는 단숨에 20년 세월을 요약했다. 낯선 이와 만남에서 자신의 경험을 거듭 설명해온 사람의 다소 방어적이면서도 예의 바른 꼿꼿한 자세가 느껴졌다.

―<헤드윅>의 원작자, 감독, 배우인 존 캐머런 미첼 공연 무대에도 올랐죠.

“뉴욕에서 미첼이 같이 밥을 먹다 갑자기 제안해서 무대에 선 거죠. 스톤월 항쟁 기념 공연을 두번이나 한 셈이에요.”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을까요?

“살아보니, 그건 2022년이에요. 전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 찬란해서요, 이렇게 찬란한데, 신이 내 운명을 이렇게 아름답게 빚어왔는데, 그걸 모르고 멍청하게 스스로 괴롭히고 아파했던 것일까. 요즘 그런 말을 제가 많이 하거든요. 행복으로 ‘뚜드려 맞아서’ 온몸이 피투성이라고.(웃음)”

영화 <모어>의 한 장면. <헤드윅> 원작자, 배우, 감독인 존 캐머런 미첼이 자신의 집으로 모어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모어>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언어를 물려준 엄마, 보호해준 아빠

2014년 무대에서 뮤지션이자 작가인 이랑을 처음 만났다. 2019년 이메일 구독 서비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를 반년간 함께 했다. 그때 황인찬 시인이 모어의 글을 눈여겨보고 출판 편집자를 소개해 첫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가 나왔다. ‘털 난 물고기’(毛魚)는 육지에도, 바닷속에도 속하지 않는 상상의 생물이자 고독한 존재다.

―황인찬 시인이 추천사에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라고 상찬했어요.

“글을 쓸 땐 저의 뼛속 세포 안에서 언어들이 줄넘기하듯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무용을 전공했고 글도 춤추듯이, 호흡하듯이 씁니다.”

―‘장시’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도 있는 법 1·2’는 읽으면서 놀랐어요. 농도가 짙고, 삶을 직면해요.

“느닷없이 삶에서 튀어나오는 문장들을 메모장에 기록해둡니다. 그런 것들이 엮여서 시가 돼요. ‘그런 날도 있는 법 1·2’는 합해서 총 535연이에요. 정말 하염없이 길잖아요.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글이에요.”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그런데 난 둘 다 되지 못했어요/ 나는 딸도 아니오 아들도 아니오/ 나는 없어요// (…) // 사악한 뱀들이 어슬렁어슬렁/ 지난한 운명을 업신여겨요/ 무단씨 자빠져 으스러진 껍딱에/ 혼불이 빠져나가요// 무서워요// 아빠 없으면// 나는 죽어요’(‘같이 가요, 끼대디’)

―부모님께서 한번도 남자답게 굴라고 하지 않으셨다면서요? 부모님 이야기를 읽으며 코끝이 찡했습니다.

“엄마는 정말 시인이에요. 엄마 말 들으면 ‘우리 엄마 (시인) 최승자 같은데?’ 그래요. 절대 긴말 안 해요. 치명적인 말 몇마디만 던져요. 제 언어는 엄마한테 배운 거예요. 엄마는 저를 지켜보는 존재, 아빤 항상 저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존재. ‘절에 들어가야 돼, 너 군대 가기 힘들겠지, 내가 널 보호해줄게’, 아빤 항상 그랬어요.”

모어 모지민씨가 촬영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사진 최성열 <씨네21> 기자 youl@cine21.com

찬란하고도 애잔한

2017년 5월24일, 장미꽃이 흐드러진 계절 서울 한강변에서 러시아 출신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2019년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안무를 맡았다. 2020년 7월11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드래그 퀸으로서 최초로 한시간 솔로 퍼포먼스를 했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모어>는 춤추듯 살아온 일상의 무대를 예술적으로 재구성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공격 때문에 원가족과 배우자를 영화에 노출하는 것을 고민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책을 내고 처음 일간지 인터뷰가 인터넷에 실렸는데 엄청 악플이 달리더라고요. 밑도 끝도 없는 악플을 살면서 처음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 우려를 한 거죠. 제가 욕먹는 건 괜찮은데 가족마저도, 그건 감당할 수 없겠다, 그걸 걱정했는데 1년 이상 가족이 출연해야 한다며 감독님이 하염없이 저를 설득했어요. 저도 저를 완전 깨부수는 작업을 매일 한 거예요.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가족들은 영화나 책을 보고 뭐라고 하셨나요?

“서울 영화관에서 부모님과 가족을 모시고 상영회를 했어요. 브이아이피(VIP)룸에 모셔가지고요. 아빠가 뇌출혈이 와가지고 몇번 쓰러지시고 잘 걷지 못하시고 말씀을 힘겹게 하세요. 그런 아빠가 영화를 보고는 ‘고맙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 그러는데, 눈물을 꾹 참고 집에 가는 택시에서 하염없이 오열을 했어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가지고 그런 부모랑 어떤 문화적 혜택을 누려본 적이 없어요. 살면서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 아름다운 일은 벌어지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양가적 감정에서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무슨 뜻일까요?

“너무 찬란하고 너무 행복한데 이면의 어떤 애잔함. 그래서 울었어요.”

영화 <모어>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남편께서는 ‘You make the world more beautiful’(당신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이라고 했다면서요. 반응이 어땠나요?

“처음엔 영화 러프컷을 보고 ‘너의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체 누가 보냐’면서 비웃더라고요. 용기는 못 줄망정.”

―흔한 남편의 반응이네요.

“(웃음)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보고 ‘최고다’라고 박수를 치면서 너무 행복해하더라고요. 영화를 두번 봤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대사는 뭘까요?

“남편이랑 시골 엄마 집에 가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엄마한테 ‘멀어’라고 말해요. 제가 ‘하염없이’라는 말을 많이 쓰거든요. 인생도 가족도 남편도 사람도…, 하다못해 엄마를 보러 가는 길마저도 너무 먼 거예요. 이렇게 하염없이 서로 멀리 살다 가야 하는 것이 너무 씁쓸하죠. 남편도 지금 멀리 있어요. 저는 장흥에 있고 남편은 시흥에 있어서 너무 오고 가기가 멀어요. 남편을 생각하면 되게 비극이에요. 제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비자 문제며, 생각하면 참 많이 아프죠, 항상. 모든 것이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며 복합적이에요. 그래서 제 영화를 보며 서럽게 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영화 <모어>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1만 관객을 이루기까지

―관객수가 1만명이 넘었어요.

“개봉 전 전문가들이 관객 1만명을 무난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어요. 미공개 블라인드 시사회 관객들의 편애와 기대도 엄청났고요. 그런데 개봉관이 예상의 절반밖에 잡히지 않았고 저도 열심히 홍보했죠. 관객과의 대화를 한 20번은 했나 봐요. 친구 이랑을 비롯해 배우, 뮤지션 등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1만명을 일궈낸 거죠.”

6월23일 개봉 첫날 잡힌 영화관은 총 54개였다. 100여곳에서는 너끈히 개봉할 거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지만 코로나 거리두기를 완화하면서 새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어려움이 컸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관심을 모은 정은혜씨 주연의 다큐멘터리 <니 얼굴>도 같은 날 개봉했다. 다양성영화가 손잡고 등장한 기쁜 일이었지만 주연배우로서 모어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모어님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독약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삶을 바꿔주고 깨달음을 주고 찬란함을 주었지만 사람을 둥둥 띄워주니까요. 전 애초에 유명인의 삶을 좇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저를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저는 그저 변방에서 애쓰는 사람, 아름다움을 쫓아가는 사람이에요. 뉴욕에서 돌아올 때도 저는 거품이 사라지면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 아름답게 끼를 떨며 살자고 생각했어요.”

―이일하 감독님과 ‘밀당’도 있었을 텐데요.

“서로 결이 너무 달라서 힘들어했죠. 감독은 굉장히 날것을 좋아하는 오타쿠적인 특성에 밀어붙이는 성격이 강한 사람이었고, 저는 굉장히 연약하고 예민한 ‘끼순이’니까요. 거리에서, 논밭에서, 눈 위에서 거울도 없이 춤추며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었나요?

“보여줘, 갑옷을 해체하고 저를 보여주라고 차갑게 말했어요. 이게 얼마나 가혹해요. 나는 사실 더 실력이 있는 사람인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이렇게밖에 못 하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구나, 싶더군요. 촬영 마지막날도 각오를 하고 송지호 바닷가에 갔는데 숨이 아예 안 쉬어지는 거예요. 1월달이니까 얼마나 추워요. 발이 꽁꽁 얼고 너무 눈물 나는데, 감독 앞에서 울면 지는 거 같아서, 눈물 참은 거예요.”

영화 <모어>의 한장면. 10대 시절 모어 모지민씨의 모습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특정한 젠더로 살지 않는다는 것

―왜 그렇게 아름다움에 집착하시나요?

“아름다움은 그냥 저의 치부인 것 같아요. 저는 치부를 달고 세상으로 기어 나왔고, 그 치부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잖아요. 그럼으로써 저는 무기징역형 불행이 시작된 삶을 살아야만 했고 삶은 엄청나게 험난했죠.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뼛속의 구더기까지 다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에요.”

―드래그 아티스트로서 애증을 갖고 계시죠. 힘겨우면서도 극단적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르이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저는 누구보다 절실한 거 같아요. 굳이 어떤 무대에서는 위험하게 키치한 방식으로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공연할 필요는 없거든요. 얌전하게 토슈즈 신고 하면 될 것을. 하지만 저는 형식을 부수어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고전예술과 대중예술의 형식도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하시는데요.

“세계 어딜 가도 저 같은 아이덴티티를 가진 드래그 퀸, 저 아직 못 봤고요. 저는 다른 드래그 퀸들과는 솔이 완전 달라요. 어떤 관객은 제가 유학파인 줄 알았다고 했는데 실은 시골 태생으로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고. 통쾌한 것 같던데요, 그 반전이.”

―한예종을 졸업은 못 하셨죠. 어린 시절의 지민이 눈앞에 있다면,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똥구멍 힘 주고 코로 숨 쉬고 척추기립근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살아진다, 이것밖에는 답이 없어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요. 그때는 철이 없었죠. 제 정체성과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못 버티고 ‘죽어야만 한다’라는 것에 집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졸업을 못 한 것도 후회가 없진 않아요. 하지만 그냥 발레를 해서 학교 졸업하고 살았더라면 책과 영화가 절대 나오지 않았고, 이런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겠죠. 결론은, 내 운명에 감사한다, 내 운명을 받아들인다, 살아 있어 너무 다행이다, 결국엔 이런 정답을 얻게 되더라고요.”

영화 <모어>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지금은 스스로 성정체성을 고정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시점에서 저는 젠더가 없는, 논바이너리가 됐더라고요. 그럼 넌 뭐냐, 나는 인간이다, 나를 어떤 젠더 규범에 국한시키지 말라, 타이틀을 묻지 말라고 해요. 사람들은 나의 정체성을 궁금해하고 명확하게 하기를 원하잖아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나는 나고, 나로서 존재하고, 존재로서 끼스럽고, 아름다움을 열망하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나름의 성별 이분법적인 틀, 게이나 트랜스젠더라는 사고에도 가둬두지 말라. 가슴이 달렸고, 성기가 달렸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만이 중요하지. 그냥 매일 아름다워지고 싶어요.”

―그래서 더 위험하고 성정치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변방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애쓰며 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안 되고 알아야만 한다, 세상에는 나 같은 존재도 있고, 나 같은 존재가 굉장히 여러가지 목소리를 내면서 아름다운 형태의 예술을 끼적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너는 모르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향해 썼던 글) ‘아가야’는 이런 마음이었어요. 노력과 반성이 없는 것들을 아그리 싸그리 빠그리 파탄 내주자. 저와 같은 다양성이 있는 것들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모서리 근처도 가지 않아. 몇달 전 한 매체랑 인터뷰를 했지만 인터넷에만 실리고 지면에는 나가지 못했어요. 제가 종이에 실리지 못할 정도의 사람인가요? 세상 험한 뉴스는 다 보내면서.”

―성적 공격, 혐오, 성적 대상화에 맞서는 모어님의 전략이 있을까요?

“너무 없죠. 저는 공격이 중요하지 않아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20년 전 처음 드래그를 시작할 때부터 욕을 먹었거든요. 영화에서도 저를 보고 욕설을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그냥 퀴어퍼레이드 앞에서 깃털을 들고 걸어가죠. 너무 실망스럽겠지만, 단 1도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훗날 내 묘비명을 적어야 한다면요?

“내가 죽은 뒤에 만약 드래그 문화가 정말 어떤 문화예술 장르로 자리가 확고히 매겨진다면, ‘전무후무한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 저는 정말 그런 자부심이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게 저의 계획? 멍청히 앉아 있고, 전화기만 들고 있고, 그럼 뭐가 나와요. 애써야 되지. 저는 되게 성실해요.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어떤 아름다운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책 <털 난 물고기 모어> 표지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
1978년 12월28일 전남 무안 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2019년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13 후르츠케이크>, <헤드윅: 디 오리진 오브 러브> 투어 공연. 영화 <모어>(감독 이일하)는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2021),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2021)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2021)에 초청되었다. 아이피티브이(IPTV) 및 브이오디(VOD) 서비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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