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도 못 뽑은 '이브' 제작진의 서예지 캐스팅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6. 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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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지의 연기로는 '이브'의 운명적인 비극이 담기기 어렵다

[엔터미디어=정덕현] '비극은 나와 나의 주변인에게 닥칠 수 있는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허약함을 느끼게 하며, 그 고통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통해 공포와 전율을 주기 때문이다.' tvN 수목드라마 <이브>의 기획의도에는 이 작품이 '아름다운 비극'이고 고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이야기하는 <이브>는 그래서 기획의도만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그 비극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이브>를 보면서 이러한 비극이 던지는 자못 비장하고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것은 고통에 빠진 한 인간을 보면서 느끼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연민과 동정 같은 데서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브>는 너무 표피적인 뻔한 복수극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비장함을 줘야 할 주인공 이라엘(서예지)에 대한 깊은 공감이 생기질 않는다.

총리 출신이지만 LY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인 한판로(전국환)와 국정원 출신이지만 LY그룹 부회장인 김정철(정해균)에 의해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실종되는 비극을 겪은 이라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넘어갔고, 심지어 아버지의 최측근조차 배신했다. 등에 새겨진 문신은 그 당시 그가 겪은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가려놓은 것으로, 이 인물이 자신이 겪은 비극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려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떤 상처는 더 큰 고통으로 덮어야 나을 수 있거든요."

상처를 화려한 문신으로 덮고 있듯이 이라엘이 보여주는 면면들은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 가면을 쓰고 강윤겸(박병은)을 유혹하는 이라엘은 복수를 향한 일념과 동시에 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동질감(그 역시 가사도우미 출신이라는 이유로 친모를 잃었다)에 흔들린다. 그는 복수의 일념으로 돌아왔고 그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행해가고 있는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접근한 한소라(유선) 앞에서는 세상 살가운 동생 같은 모습을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

강윤겸을 유혹하지만 그것이 단지 정념이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해 저들에게 복수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이라엘의 유혹은 매혹적이면서도 슬퍼야 한다. 또 한소라 앞에서 비극과는 거리가 먼 다소 속물적이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지만 뒤돌아서면 정반대로 날카로운 칼끝 같은 섬뜩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서은평(이상엽) 같은 과거의 이라엘을 상기시키는 인물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지만 거기에는 못내 흔들리는 감정이 담겨야 한다.

그래서 피아졸라의 탱고나 반도네온 같은 악기가 등장하는 건, 그 치명적인 매혹을 담은 춤에 깃들여진 아픔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작품에 드리우기 위함이지만, 과연 이것이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라엘이라는 인물이 풀어나가는 복수와 사랑의 엇갈림으로 만들어지는 비극이 중심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이런 복잡한 표현들이 서예지의 연기로는 버겁게만 느껴져서다.

물론 갖가지 논란 때문에 배우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이물감으로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면은 있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 외적인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서예지가 하고 있는 연기는 발성에서부터 표정 그리고 액션(베드신이나 키스신에서조차)에서도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 인물이 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랄까.

물론 대본 자체가 '비극' 운운할 정도로 깊이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배우들이 그 빈 구석을 채움으로써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는 있을게다. 예를 들어 이 드라마에서 한소라 역할의 유선은 서예지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서예지가 흔들리면서 <이브>는 갈수록 표피적인 자극에 머무는 막장드라마의 결을 자꾸만 드러낸다.

사실 서예지가 갖가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건 제작진도 충분히 인지하던 바였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캐스팅한 것이라면, 그런 논란 정도는 넘어설 수 있을만한 연기력을 전제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타난 결과로 보면 왜 논란에 어색한 연기까지 보여주는 서예지를 굳이 캐스팅했는가가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2%대까지 주저앉은 시청률은 시청자들의 실망감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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