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제작진은 왜 막판에 변심했나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2. 4. 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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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예쁜 판타지의 힘을 더 믿었어야 했다
안녕이라 말하는 청춘의 결말이 너무나 아쉬운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건 또 한 번의 애프터서비스 글이다. tvN 금토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바닷가 수학여행으로 청춘 감성을 폭발시킨 10회까지 보고 나서 이 드라마는 모든 것이 예쁘고 청량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 톤이 확연히 달라졌다. 아쉽게도 김태리, 남주혁, 보나, 최현욱, 이주명 등 최고의 연기와 발전,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배우들의 열연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의 후반부 늘어졌다. 10회까지 여름밤의 공기를 머금은 청량한 청춘물이자 성장드라마로 힘 있게 달려온 반면, 그 이후로는 사랑의 생채기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익숙한 로맨스물로 급격히 전환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신선함은 촌스럽다고 판명 난 1990년대 청춘물의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가져온 패기에서 비롯된다. 90년대를 바탕으로 하는 시대극이지만, 배경만 취한 추억 콘텐츠가 아니다. 오글거리는 대사를 마구 던지는 그 시절 트렌디드라마의 정수를 복원해 오늘날의 여성서사와 접목시킨 성취다. 여기에 장르상 기본 구도인 삼각관계를 다시 한 번 비틀어 배신과 분노와 질투의 감정 대신 여성의 연대와 우정을 삼각관계의 한 꼭짓점으로 삼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장르의 정석대로라면 남주혁이 연기하는 백이진은 백마 탄 왕자여야 하는데 여기서는 캔디에 가깝다. 하지만 탄탄한 캐릭터 배경과 극중 성장은 나희도(김태리)의 서사를 위해 기능적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자기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올해의 발견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보나가 연기한 고유림은 모든 걸 가졌지만 남주의 마음만은 갖지 못해서 고약하게 구는 전형적인 여자 빌런이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거만함과 독선, 열등감과 연민, 반성, 결단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이에 더해 나희도와 선의의 라이벌이자 단짝 친구로 우정을 쌓는 서브플롯과 문지웅(최현욱)과의 서브 멜로라인까지 소화하며 성장하는 가장 바쁜 캐릭터다.

이처럼 <스물다섯 스물하나>이 사랑스럽고 예쁜 청춘물로 다가왔던 건 익숙한 클리셰를 비튼 신선함과 로맨스에 잡아먹히지 않고 각자 자기만의 성장을 도모하는 캐릭터들이 가진 풋풋한 기운 덕분이었다. 10화 이전까지는 캐릭터 빌드업에 있어 각자 가진 그늘을 신파나 눈물로 연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순도 높은 탄산처럼 맑은 청량함을 선사했다. 특히 이 청량감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시원하게 터진다.

그런데 11화부터는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터진다. 백이진과 나희도의 로맨스가 전면에 나선 가운데 나희도는 엄마와 폭풍 오열로 십여 년간의 오해를 푼다. 이후 고유림의 이민 사연까지 눈물의 연속이다. 그때부터 설렘과 청량함이 가득한 공기를 만들어낸 트렌디드라마의 클리셰는 헐거운 관계(갈등과 봉합)와 개연성(대표적으로 기자란 무엇인가)을 묵인하는 허술한 설정을 덮는 장치로 쓰인다.

15화의 한 장면에서 드러냈듯이 <라라랜드>는 90년대 트렌디드라마와 함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명확한 레퍼런스다. 후반부의 아쉬움은 90년대 청춘물로 시작해 <라라랜드>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클리셰를 영리하게 활용해서 신선함과 밀도를 만들어냈던 드라마가 설득력 잃은 개연성을 커버하기 위해서 눈물의 클리셰를 활용하면서 시작된다. 백마 탄 왕자로부터 구원받는 트렌디드라마의 서사를 여성 주도 성장서사로 바꾼 나희도는 눈물로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익숙한 비련의 여주가 되고, 캔디에 가까웠던 백이진이 <라라랜드>의 남주인공처럼 가진 것 없던 위치에서 사랑에서는 멀어지지만 나름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변화와 성장을 직업적 사명감으로 해결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였던 나희도와 고유림의 특별한 관계가 단짝으로 전환된 것까지도 예쁜 판타지라서 좋다. 그러나 그 이후 극중 가장 복합적인 인물이고, 섬세한 감정선을 가진 고유림은 예쁜 얼굴의 싱그러움만 남은 단편적인 캐릭터가 되며 존재감이 사라졌다. 펜싱으로 상징되는 성장은 이때부터 멈춰버렸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의 청량한 습도를 담당했던 우정 공동체는 존재감을 급속히 잃고 배경으로 밀려났다. 꿈, 연대(우정), 사랑을 공유하던 성장기는 한동안 멈춰 있다 마지막회에서 비로소 다시 작동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며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흐릿한 기억으로 남는 청춘의 한 때를 포착한 특유의 아련함, 달콤 쌉싸름한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회에서는 청춘의 정서를 폐부에 가져다 꽂는 사랑의 감정과 유쾌한 장면들이 여전히 번뜩인다. 그런데 어떻게든 어긋나야만 하는 사랑을 납득시키기 위한 이별의 서사가 너무나 헐겁고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진다. 이민과 9.11테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헤어져야만 하고, 떠나야만 했던 나희도-백이진, 나희도-고유림의 관계의 무리한 전개와 그 사이 쏟은 눈물들을 지탱하는 설득력이 아쉽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90년대는 복고, 추억의 전시장이라기보다 현실에서 벗어난 어떤 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만화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낸 판타지의 몰입감은 대단했다. 90년대를 다룬 콘텐츠 중 그 시절 추억놀이에 빠지지 않는 가장 색다른 접근이었다. 그 자체로도 예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을 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에게 잊었던, 희미해진 스무 살 무렵의 풋풋했던 기억과 공기를 환기하는 통로가 되었다.

만큼 판타지의 힘을 믿었어야 했다. 클리셰를 비틀어 '설렘'과 '청량함'이란 트렌디드라마의 정수를 복원해낸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성취인데, 후반부 현실적이고 알싸한 사랑의 또 다른 맛을 담기 위해 너무 뻔해졌다. 청춘 성장물은 마무리가 가장 어렵다. 절정을 터트리고 난 이후 아련함을 갖고 멈추는 시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점에서 마지막회의 터치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클리셰로 흥했다 클리셰로 깎아먹은 부분이 너무나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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