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떳떳하게"..유재석도 연신 감탄한 두봉 주교의 삶('유퀴즈')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 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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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2년 간 매주 아버지가 두봉 주교에게 보낸 편지의 가치

[엔터미디어=정덕현]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요. 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며 소년처럼 웃는 두봉 주교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한국에 와 70년을 헌신하며 살아온 두봉 주교. '기쁘고 떳떳하게'는 그의 삶의 좌우명 같은 것이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가 담담하게 전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유재석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말을 얹기 어려울 정도의 숭고함이 묻어났다.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라는 부제로 <유퀴즈 온 더 블럭>은 묵묵히 긴 레이스를 걸어가듯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나귀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한 임택 여행작가, 이제 스물의 나이에 한국 수영의 새 역사를 쓴 수영 괴물 황선우, 웹툰 작가에서 유튜버로 활동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말년 작가 그리고 이십 대에 한국에 와 이제 90대의 나이가 되도록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두봉 주교가 그들이었다.

이날의 이야기가 특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삶 전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두봉 주교의 삶이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겪고 성직자의 길을 택해 한국에 오게 된 두봉 주교. 당시 한국전쟁의 끄트머리에서 한국은 비참할 정도로 어려운 나라였다고 했다. 그래서 두봉 주교는 자신이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다고 했다. 무척 도움이 필요한 나라였기 때문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두봉 주교님은 당시 한국은 비참했지만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좋게 보였다"고 했다. 떳떳하고 친절했고 인간다운 인간, 사람다운 사람이 한국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는 "상황이 안 좋았지만 사람이 좋았다"며 소년처럼 웃었다.

한국생활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유재석에게 두봉 주교는 서양사람이라고 하면 아주 좋은 데서 살다가 온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자신도 열 살 때 터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라 제대로 먹지 못해 성장이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움을 겪어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 아마도 그런 어려움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래서 헌신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터였다.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아 낭비하는 걸 꺼려하고 싫어한다는 두봉 주교는 "아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너무나 진심어린 목소리로 전했다. "평생 평범하게 살았어요. 그래도 행복해요." 하지만 그가 겪은 삶은 온전히 평범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농촌 교구를 담당해 농민들편에 서서 일했는데, 당시 오원춘씨가 군청에서 보급한 불량 씨감자에 항의했다 납치, 고문을 당한 사실 때문에 항의를 하자 추방령까지 받았다는 것.

요한 바오로2세와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그리고 두봉 주교가 함께 바티칸에서 이 문제로 긴급회의를 했고 결국 교황님이 어려운 농민편에 서는 건 잘못한 것이 아니라며 추방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네 역사의 아픈 상처 곁에 두봉 주교님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두봉 주교님은 스스로 "기쁘고 떳떳하게" 살았다고 했다. 그 말에 유재석은 감탄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가 이렇게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있는가 하고 그는 되물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아온 데는 모범신자로 살아오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늘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던 분들이었다고.

스물다섯에 한국에 오게 된 두봉 주교와 무려 32년 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매주 편지를 보내신 아버지의 사연은 감동적이었다. "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편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며 아버지는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2년 간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 더 감동적이었던 건 손수 가져온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에 어떤 내용이 있냐고 묻는 유재석에게 두봉 주교가 한 말이었다.

"별다른 내용이 아니에요."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고 홀로 기력이 쇠해 누워 지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 힘겨움에도 일어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 힘들어 무슨 내용인지도 애매한 글귀들이 있었지만 두봉 주교는 그 자체가 너무나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내용은 별다른 내용이 아니에요. 그런데 나이 그렇게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이렇게 일어서서 마지막 편지를 쓰신 것을 보면 감동이 돼요."

두봉 주교가 전한 건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대단하고 별다른 내용이 담긴 건 아니지만, 일관된 사랑의 마음을 그 긴 세월 동안 갖고 전하고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그렇게 아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삶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다. 그가 당당하게 "기쁘고 떳떳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기 때문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두봉 주교 또한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의 회한을 전한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아파 돌아가시기 전 너무 피곤해 잠깐 존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 이야기를 전하며 이 90세가 넘은 어른의 마른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성인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라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그런 삶이 우리와 유리된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우리도 추구할 수 있는 삶이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두봉 주교가 걸어온 이 삶의 이야기는 이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이 프로그램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기쁘고 떳떳한' 길을 걸어가길. 두봉 주교님 같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삶들을 앞으로도 계속 조명해주길.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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