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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고려 최고 충신이 되기까지, 몰랐던 사실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김종성 입력 2022. 01. 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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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 1TV <태종 이방원>

[김종성 기자]

'고려 마지막 충신' 하면 정몽주가 떠오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를 읊은 포은 정몽주가 충절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2일 방송된 KBS <태종 이방원> 제8회에서는 정몽주(최종환 분)가 이성계(김영철 분)의 왕조 창업을 막고자 분투를 벌이다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주상욱 분)에게 테러를 당하는 장면이 묘사됐다.

"백골이 진토이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를 읊었던 정몽주는 고려 멸망 직전에 이성계와 대립하다가 1392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뒤 선비들은 그를 존경하고 추앙했다. 그를 충절의 대명사로 기억했다.

문묘에 안치된 정몽주 위패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선비들은 개혁세력인 사림파(유림파)를 이끄는 조광조가 집권할 때인 1517년에 정몽주를 공자 사당인 문묘에 배향했다. 대학로 근처인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에 딸린 문묘에 그의 위패가 함께 안치됐다. 공자와 더불어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 중 하나로 정몽주가 공식 선정됐던 것이다.

1517년이면 제12대 주상인 중종이 재위할 때였다. 이성계 왕조가 한창이던 시점에, 이성계를 반대했던 정몽주가 국립대학 성균관의 문묘에 배향됐던 것이다. 정몽주가 조선 선비들로부터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충절이 얼마나 높이 평가됐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고려는 1392년에 망했지만, 그 운명은 1388년에 갈렸다. 본거지인 함경도에 수천 명의 사병들이 있었던 이성계가 조민수 장군과 함께 5만 대군을 지휘하게 된 뒤 개경으로 진격한 것이 고려 멸망의 시작이었다. 그 직전까지 최영 장군과 함께 각종 전쟁에서 고려를 수호하며 충성을 다했던 이성계는 요동정벌군 5만을 접수한 다음부터 태도가 달라지다가 결국 '사고'를 쳤다.

이때부터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왕을 연달아 폐위하며 왕씨의 나라를 이씨의 나라로 만들어갔다. 성씨에 목(木)과 자(子)가 들어간 이(李)씨가 나라를 세우게 된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 유행어가 된 것은 이 시점이다. 위화도회군 당시부터 이에 관한 노래가 널리 퍼졌다.

<고려사> 우왕 편(정식 명칭은 신우열전)은 바로 이 시기에 "군인과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서술한다. 고려왕조에 납세 및 군역 의무를 다하던 민중들 사이에서 "목자가 나라를 얻으리"라는 노래가 급속히 유행한 것은 이 왕조가 위화도회군 때부터 실질적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려가 형식상으로 멸망한 시점과 실질상으로 멸망한 시점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마지막 충신인가를 판단할 때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몽주는 형식상 멸망 시점의 마지막 충신이었다. 실질상 멸망 시점의 마지막 충신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 시점의 충신은 따로 있었다.

위화도회군을 단행한 이성계는 조민수와 힙을 합쳐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을 폐위했다. 그런 뒤 조민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옹립했다. 그런 다음, 조민수를 실각시키고 이듬해에 창왕을 폐위했다.

이성계는 우왕의 어머니인 반야가 승려 신돈의 노비였던 점을 부각시켜 '우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씨'라며 우왕과 창왕 부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고려사> 내에서 우왕이 왕우가 아니라 신우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왕우였던 임금을 이성계가 '신우'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뒤, 이성계는 또 다른 허수아비 임금인 공양왕을 옹립했다. 그는 공양왕 역시 실각시켰다.

이성계의 행동은 고려왕조의 가치관에서 보면 '불충'이었다. 그는 연달아 세 번이나 왕을 갈아치웠다. 개념상, 세 번의 불충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세 번 중에서 두 번은 정몽주도 함께했다. 정몽주는 공양왕을 옹립할 당시만 해도 이성계의 핵심 참모였다.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폐위하는 일을 함께했다. 세 번의 불충 중에서 두 번을 함께했던 것이다.

정몽주는 정도전과 더불어 '이성계 캠프'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성계·정도전에게 등을 돌린 것은 토지개혁이 추진될 즈음부터였다. 이때부터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위화도회군을 지지했던 개혁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이 과전법 추진을 놓고 분열된 시점부터 그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려사>의 축약판이면서도 다소의 개성을 띤 <고려사절요>는 이때부터 "정몽주는 양쪽 사이에서 우물쭈물했다"했다고 서술한다.

정몽주의 우물쭈물함은 머지않아 단호함으로 바뀌고, 그는 고려왕조를 사수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게 된다. 그랬다가 선죽교에서 화를 입게 됐던 것이다.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단심가> 마지막 대목에서 정몽주는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읊었다. 왕조에 대한 일편단심이 변할 리가 있겠느냐고 읊었다. 하지만 그는 우왕·창왕 폐위에 가담했다. 일편단심이 지켜지지 않고 두 번이나 꺾였던 것이다. 정몽주가 위화도회군을 지지하고 우왕·창왕 폐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그가 1388년 시점에는 충신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고려의 '진짜' 마지막 충신

고려가 실질적으로 멸망할 시점의 마지막 충신은 다름아닌 최영이었다. 최영의 행보는 정몽주와 현저히 달랐다. 최영에게는 '순도 100'의 일편단심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을 쿠데타로부터 지켜냈다. 조일신의 난, 김용의 난, 덕흥군의 난, 제주 반란 등 각종 쿠데타로부터 왕조를 지켜냈다. 또 우왕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또, 각종 외침으로부터도 왕조를 지켜냈다. 홍건적에게 점령된 개경을 두 번이나 탈환했고, 오예포(황해도 장연)에서는 왜선 400척을 격파하기도 했다.

그는 변심한 이성계로부터 왕실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전투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개경에 진입한 쿠데타군을 상대로 끝까지 항전했다. 중과부적이라 막아내기 힘든 줄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다가 붙들렸다. 이성계에게 패해 유배를 갔다가 최종적으로 처형되는 과정에서도 일편단심을 잃지 않았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 따르면, 최영을 탄핵하는 사람들도 왕조에 대한 그의 충성심만큼은 높이 평가했다. 그가 각종 내우외환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다만, 요동정벌이라는 잘못된 전략을 추진해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었으므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었다.

정몽주가 두 번의 불충을 범했는데도 그를 충절의 대명사로 띄우기로 기획한 이들이 있었다. 정몽주의 불충을 직접 목격한 당대의 사람들이었다.

이방원이 왕이 된 지 1년 뒤인 음력으로 태종 1년 1월 14일자(양력 1401년 1월 28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정몽주 띄우기를 제안한 장본인은 이방원의 측근인 권근이었다. 권근의 논리는 '이전 왕조의 충신을 띄우는 방법으로 지금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쿠데타와 정쟁이 끊이지 않을 때였다. 이런 시점에 정몽주 띄우기를 통해 정치안정을 도모하자는 발상이 정권 내부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왕조 하에서 정몽주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정권 차원의 기획이 계기가 되어 선비들 사이에서도 정몽주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던 것이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아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이 그를 충신의 대명사로 높이 띄우는 것은, 이방원의 이미지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게 없었다. 그것은 이방원의 포용력을 과시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었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는 1388년이 부각되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1388년의 최대 사건인 위화도회군과 1388년의 최고 충신인 최영을 부각시키면, 위화도회군을 일으킨 이성계와 최영을 물리친 이성계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가 더욱 부각되면, 이성계를 배신하고 왕이 된 이방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치적 요인 역시, 그가 진짜 충신인 최영을 제치고 정몽주를 충신으로 띄우는 데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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