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 논란 '시끌', 작품성은 '꽝'..넌 정체가 뭐니?('설강화')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2. 1. 2. 14: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강화', 진짜 문제는 화려함에 감춰진 안일함과 지루함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 포스터에서 남파간첩 임수호(정해인)와 호수여대 1학년 은영로(지수)는 함께 마주보며 춤을 춘다. 두 사람은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포스터와 달리 <설강화>는 그리 사랑스러운 드라마는 아니다.

<설강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2019년 연말 대히트작 tvN <사랑의 불시착>의 남녀구도가 떠오른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간 그녀가 북한의 미남과 사랑에 빠진 로맨틱코미디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니 북에서 내려온 미남 남파간첩이 한국의 여대생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는 왜 안 돼?

맞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안 되는 콘텐츠는 없다. 다만 사랑받기 힘든 이야기는 존재한다. 남파간첩 개그캐릭터가 성공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가슴 시린 간첩 로맨스에 그리 호의적인 건 아니다. 남북관계도 안 좋은 시기에 왜 굳이 간첩의 사랑?

<사랑의 불시착>은 좀 달랐다. 북한을 헐벗었지만 순박한 판타지 공간으로 희화화해 민감한 남북문제를 코미디로 희석한다(물론 북한 시청자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을 수도 있다). <설강화> 역시 논란을 피하기 위해 1987년의 대학가를 레트로 판타지의 동화적 색감으로 덧칠한다. 그 덕에 <설강화>의 1987년은 시대 풍경을 살려내면서 호수여대 기숙사 등을 통해 꽤나 정감 넘치는 비주얼을 보여준다. <설강화>는 이 배경을 가지고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나 <응답하라 1988>같은 가벼운 청춘 로맨스로 갈 수도 있었다.

허나 여기에 욕심을 내 무거운 1987년의 서사를 더 포갠다. 실제 남파간첩 임수호와 그를 쫓는 안기부의 서사다. 그 시기는 많은 대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한 시절이었다. 시대의 피해자들은 드라마의 전개와 상관없이 그 프레임 구조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이미 여주인공 이름을 민주화운동가이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실명에서 따왔다가 바꾼 전력까지 있었기에.

다만 <설강화>는 북한과 손잡고 간첩 공작하는 전두환 정권을 풍자하는 서사로 흘러가긴 할 것이다. 아쉽게도 안기부 풍자도 그렇게 성공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박성웅이 연기하는 안기부 출신 여당 사무총장 남태일을 그리는 방식 자체가 낡고 진부하다. 안기부를 진지하게 비판하기 두려워서 적당한 풍자를 뒤섞은 탓에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맛이다.

대신 <설강화>의 화려한 스펙터클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 5회 차의 경우 호수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남북의 인질극과 총격전으로 꽉 채웠다. 다만 요란한 총격전을 지켜보는 순간 뭔가 헛헛하다. 과연 이 총격전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까? 남파간첩 아니면 안기부? 당연히 둘 다 편을 들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두 입장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며 분석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간첩, 안기부, 여대생이란 시대의 평면적 캐릭터만 있을 뿐, 공감 가고 궁금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없어서다.

만약 <설강화>가 대작 드라마를 꿈꿨더라면 좀 더 시대와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어야 했다. 민감한 시대를 다룬 콘텐츠라면, 아무리 '판타지 1987'이라도 좀 더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작이란 스케일이 커서 대작이 아니다. 시대와 불응하거나 순응하거나 혹은 희생당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고뇌가 있기에 대작이다.

<설강화>는 결국 화려한 배경 안에서 대작과 로맨스, 코미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녹아드는 복합장르가 아니라 얼기설기 장르에 더 가까운 진행이다. 로맨스라 홍보하긴 했지만 딱히 로맨스도 아니었다. 한줌의 로맨스, 여대생이 기숙사에 낯선 남자 숨겨주고 밥 날라주는 전개도 뭔가 1980~90년대 방화 같아서 따분하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는 화려하고 수다스럽고 시끄럽지만, 늘어지고 지루해진다. 오히려 <설강화>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다. 정작 드라마의 전개보다 이쪽이 더 첨예하고 드라마틱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