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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플] 세계 정상 포토그래퍼 김명중..'철부지 정신'은 계속된다

조성진 기자 입력 2021. 12. 17. 17:14 수정 2021. 12. 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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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성진
사진=조성진
사진=조성진
2007년 스파이스걸스 투어 중 아내/아들과
2015년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 당시 가족과 함께
2019년 폴 매카트니 미국 공연 촬영에 여념없는 김명중의 모습이 피아노에 비치고 있다.
IMF에 학업을 중단하고 태국식당 주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게티이미지 사진기자 시절
김명중이 찍은 스팬다우 발레 소송건을 게자한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 99년 5월 5일자
리한나
이슬이를 안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
'을지로 장인 사진전'이 있던 세종문화회관에서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 피사체와 소통하는 역량 탁월
▶ “촬영 순간만큼은 피사체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해야”
▶ 폴 매카트니 전속 및 마이클 잭슨, BTS
▶ 스파이스걸스, 리한나, 엑소, 슈퍼주니어
▶ 트와이스, 강다니엘 등 숱한 스타 촬영
▶ 가디언, PA통신, 게티이미지를 감동케 한
▶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재미는 내 원동력”
▶ 85mm f1.2는 ‘인생렌즈’
▶ “좋은 사진은 손발처럼 편안·익숙한 카메라서 나와”
▶ “BTS(방탄소년단), 역시 최고다운 매너”
▶ 영화감독으로도 역량 탁월
▶ 단편 ‘쥬시걸’ 기반한 장편 영화 준비 중
▶ 좋아하는 사진작가는 윤명심
▶ 한국 대중음악사 레전드 다룬 사진+다큐물 준비
▶ “유명 스타보다 일반인 촬영 더 어려워”
▶ LG전자 출신 아내와 1남1녀
▶ 여가부 국토부 등 여러 부처와 뜻깊은 프로젝트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좋은 사진이란, 유명 브랜드의 값비싼 카메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발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카메라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사진기자의 일은 10%는 촬영, 10%는 사진편집과 송고, 나머지 80%는 무료한 기다림의 연속. 기다림은 기자들의 일상인 것이죠.”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사진은 반사되는 빛을 기록하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빛이 피사체에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는 사진의 퀄리티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죠. 그 빛은 자연광일 수도 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조명광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빛이 더 좋은지에 대한 공식은 없어요. 단지 빛을 어떻게 이용해 사진에 기록하느냐가 중요할 뿐이죠. 빛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빛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씨름해 빛을 마스터해야 합니다.”

“매일 갖고 다니는 작은 카메라 가방엔 미러리스 카메라와 24mm, 55mm 렌즈가 들어 있어요. 24mm는 풍경사진에, 55mm는 인물사진에 많이 사용하는데 둘 다 줌렌즈에 비해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벼워 휴대하기에 편하죠. 아직 단렌즈의 아름다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풍경사진, 길거리 사진 그리고 인물사진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50mm 렌즈를 먼저 사용해보길 적극 추천합니다. 줌렌즈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로 확신합니다.”

세계 정상의 포토그래퍼 김명중(49)의 저서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222쪽, 북스톤 발행)’라는 단행본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라는 책에서 김명중은 “너무나 평범했던, 심지어 누가 ‘루저’라고 불러도 할 말 없었던 제 인생에 어떤 기적 같은 일들이 있었는지 낱낱이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부, 스펙, 예술, 사진, 금수저, 바른생활 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었고 다음 세대라는 이름으로 걷고 있을 인생 여행자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지도 같은 책을 남기고 싶었습니다”라고 책을 집필한 의도를 말하고 있다.

형편없는 영어 실력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우연히 알게 된 게 사진. 그에겐 혼자 사진을 찍고 암실에서 현상/인화하는 순간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천국 같은 시간이었다.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라는 책은, 영국 유학 시절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 주문하기도 어려울 만큼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음에도 일단 도전을 시작한 좌충우돌 그의 유학기에서 사진기자, 그리고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 담겨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김명중만의 사진철학과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팁까지 접할 수 있다.

폴 매카트니 전속 포토그래퍼로도 유명한 김명중은 마이클 잭슨, 스파이스걸스, 리한나, 에드 시런, BTS, 엑소, 슈퍼주니어, 트와이스, 강다니엘 등등 숱한 국내외 스타들을 촬영한 이 분야 대표 사진작가다. 뿐만 아니라 현지 유력 언론사 사진기자로도 활약해 피사체를 보는 눈도 남다르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다고 여기던 그였지만 어떠한 걸 시작하더라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으려 했고 또한 재미있어야만 그걸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즐겁지 않고 자신이 정체되고 있다고 여기면 과감하게 손을 털어버리는, 끊임없는 도전과 호기심으로 고무된 진정한 ‘철부지 정신’의 표본, 그가 바로 김명중이다. ‘재미’는 곧 김명중의 원동력인 것이다.

미국과 영국 한국을 오가는 글로벌 포토그래퍼 김명중의 한국 작업실이 있는 성수동을 찾아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분야에서 눈부신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정말 잘난 인물들을 찾아다니는 ‘인물플’ 코너에서도 김명중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한국 스튜디오(작업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폴 매카트니 대형 사진이었다. 그가 찍은 매카트니 사진을 작업실에 걸어 놓은 것이다. 파라177 및 그 외 장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김명중은 인터뷰에서건 사적인 자리에서건 항상 ‘폴 경’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물론 ‘잘 찍는’ 이란 의미가 함축하고 있는 게 너무 광범위하겠지만. 정말 잘 찍는 많은 세계 정상의 포토그래퍼들 가운데에서도 김명중이 최정상 반열로 우뚝 선 이유는 뭘까?

피사체와 소통하는 역량의 탁월함이 아닐까 한다..

사진작가마다 촬영하는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자기방식대로 명령하듯 따라오게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상대를 좀 더 잘 알고자 끊임없이 노력해가며 앵글에 담으려는 작가도 있다. 김명중은 후자 쪽이다.

그는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피사체를 깊이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하려 한다. 이러한 마음이 상대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져 소통이 더욱 잘 됐던 것이다. 피사체와의 이러한 남다른 소통 역량은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들마저 감동케 했다.

빅스타들이 김명중과 그의 사진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 또한 함께 촬영하는 가운데 상대에게 감동하곤 한다.

“BTS(방탄소년단)와 촬영 때도 기억에 남아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촬영 강행군이었는데도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최고의 매너를 보여줘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역시 BTS다라고 느낄 만큼.”

“비욘세 측에서도 러브콜이 왔었는데, 당시 폴 경(폴 매카트니)에게 집중하던 터라 정중히 고사했는데, 그 때문에 비욘세 측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간신히 스케줄이 돼 비욘세 콘서트를 찍어준 적은 있지만.”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명중은 대일외고 및 런던패션대학 대학원(석사)을 나왔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23살의 나이가 되던 95년 4월 5일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어 실력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떠난 유학길인 만큼 현지에서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매사 계획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김명중의 ‘철부지 정신’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예다.

김명중은 런던대에 입학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그러나 ‘영어가 딸려’ 강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던 그는 부전공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영어와는 상관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업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그런데 자신이 찍은 걸 암실에서 작업하며 짜릿한 전율이 일 정도로 사진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김명중의 인생을 바꾸는 출발인 셈이다.

태어나서 처음 시작한 사진공부였음에도 그의 실력은 시작하자마자 동급생들 보다 돋보였다. 지도교수조차 “너는 사진에 더 재능이 있어 보이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무렵 IMF가 터졌다. 김명중도 런던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공부를 중퇴해야 했다. 생활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태국 레스토랑의 디저트 주방 및 소호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주방 보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허드렛일을 해가며 영국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김명중은 요리에서도 숨은 재능이 발휘됐다. 주방 쉐프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명중에게 “이대로만 하면 너는 쉐프로 올라가는 건 시간 문제”라며 재능을 극찬했을 정도.

레스토랑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는 일이다 보니 피곤해서 낮엔 잠을 자야 하는 사이클이 반복되던 어느 날 김명중은 낮에 일하고 저녁엔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러한 일자리 관련 자문/상담을 받고자 런던대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포토뉴스서비스’라는 로컬뉴스매체의 수습 채용 공고를 보게 된다. ‘포토뉴스서비스’는 런던 내 법원을 중심으로 하는 법 전문 권위지였다. 지도교수는 흔쾌히 김명중을 그 매체에 추천했고 이로써 그는 포토뉴스서비스 사진기자로 일하기에 이른다. 명중은 남들보다 훨씬 일찍 출근 및 가장 늦게 퇴근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성실성을 보여줬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기자로서 김명중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999년 5월 4일 영국 대법원에선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 사건이 중요 이슈였다. 히트곡 ‘True’로 유명한 영국의 팝그룹 스팬다우 발레가 저작권료 배분 문제로 소송 중인 것이었다. 당시 법원 출입 기자였던 김명중도 스팬다우 발레의 법정 모습을 찍었는데,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이 그가 찍은 사진을 게재한 것이다. 로이터, AP 등등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세계적인 통신사 기자들의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초보 사진기자’ 김명중의 컷을 가디언 지면에 게재한 것이다. 스팬다우 발레 소송을 취재한 이 한 컷으로 김명중은 현지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런던 지하철 안에서 제가 찍은 스팬다우 발레 기사가 게재된 ‘가디언’을 읽는 현지인을 보며 너무 뿌듯했어? 사진기자로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명중이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진학한 곳이 명문인 런던패션대학 대학원이다.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는 사람들은 정말 너무 많아요. 빛은 렘브란트처럼 형태는 가우디 건축양식처럼 등 사진을 잘 찍는 기술적인 것들은 많은 사람도 아는 것이죠. 하지만 왜 이 사진을 찍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피사체에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런던패션대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 바로 이러한 것이죠.”

김명중은 ‘포토뉴스 서비스’에 이어 99년부터 2000년 하반기까지 오랜 역사의 런던 유력 매체 ‘데일리텔레그래프’ 메인 포토그래퍼로(프리랜서) 활동했다. 그리고 영국의 유력 매체인 PA(Press Association) 통신 사진기자(연예 담당)로 입사한다. PA통신에서도 그의 역량은 돋보였다.

PA통신 연예데스크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명중을 회사 정직원으로 고용해 그 역량을 더욱 살려보고자 했다. 그러나 영국 내무부가 김명중의 정직원 요청을 거절했다. 내무부로선 김명중이 아무리 탁월한 사진기자라 해도 “첫째, 영국 국적 우선 그 분야 전문가”여야 하며 “둘째, 영국 국적이 아닐 경우 EU내 전문가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명중은 PA통신 연예데스크 및 관계자들과 힘을 모아 50통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 다시 내무부에 채용 승인을 요청해 결국 2001년 10월 김명중은 PA통신 정직원으로 채용되기에 이른다.

영국의 국가 기간 통신사 사진기자 정직원으로서 그는 베니스, 칸느, 오스카 등 세계적인 각종 어워드를 찾아 취재하며 더욱 탄탄한 인맥을 구축해 갔다. 이미 이즈음 그의 존재는 현지 매체 포토씬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전 세계의 기자단이 모인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를 맨 앞줄 LA타임즈 옆자리에 배치할 정도였다. 스타들을 코앞에서 찍으니 당연히 사진도 더 잘 나오게 됐다.

이러한 유명세가 계속되자 ‘게티이미지’에서 러브콜이 왔다. 당시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게티이미지 연예부장이 김명중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 이 자리에서 함께 일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2004년 10월이었다. 이렇게 해서 김명중은 게티이미지 연예부 수석 포토그래퍼로 재직하게 된다.

사진기자로선 ‘무소불위’나 다름없는 게티이미지 생활이었음에도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안주(매너리즘)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며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2007년 여름 게티이미지에 사표를 내고 본격 프리랜서 선언을 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김명중은 별다른 계획(대안) 없이 일단 저지르는 ‘철부지 정신’으로 퇴사한 것이다. 프리랜서로 독립하며 4개월 넘게 일거리가 들어오질 않았다. 초조해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스파이스 걸스 매니지먼트 측에서 러브콜이 왔다. 2007년 12월 스파이스걸스 월드투어 포토그래퍼로 일해줄 수 있느냐는 것.

강한 개성과 연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던 스파이스걸스 멤버들과 무리 없이 소통하며 사진을 찍는 걸 본 스파이스걸스 측 홍보 담당자는 김명중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홍보 담당자는 김명중을 마이클 잭슨에게 소개해 줬다. 이어서 폴 매카트니까지 촬영하게 되면서 김명중은 현지 최고 레벨의 포토그래퍼로 우뚝 서기에 이른다.

“마이클 잭슨 투어 때의 일이었어요. 마이클 잭슨이 백스테이지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끌시끌하던 모든 스텝이 순간, 마치 적막감이 감돌 듯 조용해졌습니다. 스텝들은 마치 신을 영접하듯 했는데 이런 광경도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리곤 카메라를 든 저한테 걸어와서 악수를 청했는데 손이 엄청 커서 놀랐어요. 키도 그렇게 클 줄 몰랐죠. 손에서 느껴지는 그때의 그 따뜻한 온기와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태도 등으로 볼 때 마이클 잭슨은 절대 누구를 아프게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직감했죠. 정말 너무너무 ‘스윗’한 분이었어요.”

폴 매카트니와 처음 만난 건 린다 매카트니 회고전이 있던 2008년이다. 그리고 몇 주 후 리버풀 공연을 함께 하며 매카트니 포토그래퍼 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겨울 매카트니는 이혼 등 여러 심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컴백 투어를 펼쳤고, 김명중은 포토그래퍼로서 이 모든 걸 사진으로 담아냈다.

2010년엔 할리우드로 와서 활동하며 많은 현지 스타들과 친분을 넓혀갔다. 이후 2017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와서 2년간 체류했고 2019년 다시 미국으로 갔다. 현재 아내와 자식(1남1녀) 모두 LA 산타모니카에 살고 있다. 첫째는 고2, 둘째는 중3이다.

김명중은 지난 99년 단기 유학 일정으로 영국에 온 아내를 만나 2년간의 연애 끝에 2001년 결혼했다.

“아내를 본 첫인상은 씩씩하고 밝았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애들에게 바라는 건 없어요. 그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정도입니다. 자신의 길은 스스로 알아서 가는 것이고 부모가 넌 이걸 해야 해라고 강제할 순 없죠.”

한국에 있을 땐 경기도 덕소에 있는 어머니 집에서 생활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 반이면 기상해 성수동 인근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일이 많다 보니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기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85mm f1.2렌즈는 김명중의 소위 ‘인생렌즈’다. 인물사진에 매우 적합한 화각이며 조리개를 가장 밝은 f1.2로 세팅해서 촬영하면 피사체의 특정 부분(주로 눈)에만 날카롭고 선명하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모두 흐릿하게 표현한 아웃포커싱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 인물사진은 모두 이 85mm 단렌즈로 찍었는데 기존의 줌렌즈로 찍은 사진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죠. 이처럼 인물사진에 대한 제 관심과 사랑이 85mm 렌즈에서 시작됐고 현재 제가 촬영하는 많은 연예인 초상사진의 시발점이 됐으니 제겐 ‘인생렌즈’가 아닐 수 없는 것이죠.”

“뷰티디시는 한 사람을 촬영하기엔 효과적이지만 여러 명을 한 번에 커버하기엔 불가능해요. 그래서 멤버가 많은 촬영에는 파라177이란 조명장비를 주로 사용해요. 이 장비는 혼자서 세팅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거대한데, 그만큼 넓고 깊게 빛을 확산시켜 10명이 넘는 그룹촬영에도 충분히 소화해내고 또 많은 양의 빛을 부드럽고 선명하게 퍼트려주는 장점 덕분에 멤버 전원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윤명심 작가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윤명심 작가는 숨겨진 진정 멋진 사진작가입니다. 피사체를 담을 때의 흑백의 깊이는 물론 프레임이 탁월하죠. 너무 패션에 치우쳐 있는 국내 포토씬에 윤명심 작가는 많은 걸 깨닫게 해줍니다.”

“세상이 갈수록 쓰레기가 넘쳐나 환경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쓰레기도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제 작업만큼은 쓰레기가 되지 말자는 게 신조입니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작품 같은. 제 모토이기도 하죠.”

“한국 포토씬을 보면 장수하는 사진가가 없는 것 같아요. 사진 하면 즉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아이콘 같은 존재가 없는데, 감히 제가 그런 존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특히 왕가위 감독 작품 세계를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도 매우 인상적으로 봤다. 물론 김명중은 이제 영화감독으로서도 활약 중이다.

2019년 싱가포르에서 호주 출신의 영화제작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호텔 뭄바이’를 제작한 마크 몽고메리였다. 김명중은 그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이걸 읽은 ‘호텔뭄바이’ 영화제작자는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접한 카이뷔 리만은 감동한 나머지 김명중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당시 마크 몽고메리는 영화를 제작하는 자신만의 3가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첫째,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둘째, 동서양이 어우러진 것. 셋째, 신인 감독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명중과 그의 시나리오는 이 모든 걸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단편영화 ‘쥬시걸’이다. 김명중의 영화감독 데뷔작 ‘쥬시걸’은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며 주목받았고 현재 김명중은 이를 토대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현지에서 사진 재능을 발휘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는 영화 쪽에도 역량이 남달랐다. 런던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재학 당시 동문이던 토미는 현재까지 김명중의 절친이다. 토미는 현재 일본의 유명 영화사 제작자다. 그런데 토미는 이미 런던대 재학 시 김명중에게 “너는 언젠간 꼭 영화감독이 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김명중의 영화적 재능을 처음 발견한 인물인 것이다.

김명중은 세계 최초로 사진을 통한 ‘포토클리닉’도 해오고 있다. 마치 병원에서 ‘정신과 세션’ 하듯 소통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화합이 생겨나고 있다.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에 이어 사진과 삶을 다룬 두 번째 저서도 준비 중이다.

또한, 전인권 조용필 등 한국 대중음악사의 레전드를 10부작으로 다룬 사진과 다큐 접목의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김명중에게 2021년은 한국에서 활동한 시간이 유독 많았던 해다. 배달의민족 100여 명에서 그 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진 작업도 그러한 일환 중 하나다.

“2021년은 저에게 매우 감사한 한 해였어요. 여성가족부(여가부) 프로젝트 ‘가족’을 비롯해 의미가 큰 많은 작업을 했으니까요. 국토부와 용산기지 반환 관련 프로젝트도 ‘그녀를 회상하고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바라본다’라는 제하에 내년 1월 24일부터 전시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일반인을 사진으로 담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스타들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 촬영을 하죠. 따라서 각각의 주문사항을 지켜주며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중에게 의도된 모습만 보여야 하기 때?訣?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깊게 들어갈 수가 없어요. 반면 일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을 카메라로 담는 작업이 더 어려운 겁니다. 평범 속의 비범함을 발견해내는 작업이라고 할까? 한 번도 삶의 주인공이 돼 본 적이 없는 그들을 사진에 담아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바쁜 나날임에도 그는 “좋은 사람들과 술잔 기울이는 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취미생활로 꼽을 정도다. 주류 중에선 소주, 와인을 선호한다.

기자에게 준 김명중의 명함엔 포토그래퍼 대신 ‘드리머(Dreamer)’로 기재돼 있었다. 1년 전부터 명함에 자신을 ‘드리머’로 표기하고 있는 것. 드리머는 각종 공상, 꿈을 꾸고 실현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김명중에게 사진이 어떤 의미냐고 짧게 축약해 달라고 하자 그는 “행복한 선물”이라고 답했다. 이제 그의 존재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멋진 꿈을 꾸고 그걸 실현케 하는 드리머로서 슬로모션처럼 잔잔하지만 아름답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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