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동성애 스캔들' 주인공의 반전 서사

이정희 입력 2021. 12. 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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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그녀들

[이정희 기자]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기초를 만든 정도전이 구상한 나라는 이상주의적 유교국가였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흔히 등장하듯 왕은 유교적 군주가 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되었다. 또한 왕의 결정은 의정부와 6조, 그리고 홍문관, 사간원 등을 통해 견제되고 조정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이들의 중심에는 고려 말에 형성된 사대부라는 유교적 이념으로 무장한 관리들이 있었다. 이러한 유교 중심적인 국가관은 중앙의 정치 제도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념으로 왕실은 물론, 가족 관계마저도 지배하고자 하였다. 역사적 스캔들(동성애)로 알려진 세종조의 세자빈 봉씨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지탄받을 일로 기록됐는데, 당시 분위기 속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3일 방영된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 그녀들'은 세자빈 봉씨의 사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했다.
 
 <kbs드라마 스페셜 2021- 그녀들>
ⓒ kbs2
 

궐 밖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소쌍의 선택

드라마의 시작은 소쌍이라는 나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동생은 있지만 집을 나가 생사를 알 수 없고, 4살 때 부모와 떨어져 궁에 들어온 소쌍은 가장이 되어 병든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신세이다. 그녀의 말대로, 소쌍은 궁궐 밖보다는 두 배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지금껏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궁궐 안에 있는 여성들은 모두 '왕의 여자'라는 규율을 어기고 나인 소쌍은 군관과 밀애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밀애의 장면을 세자의 후궁인 승휘에게 들켰다. 

당연히 곤장을 맞고 궐밖으로 쫓겨날 상황, 하지만 집안을 책임지는 소쌍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들은 승휘의 비밀(세자빈의 임신을 막기 위해 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자신이 승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승휘의 사람이 되어 임신한 세자빈을 유산시킬 임무를 가지고 세자빈 처소에 들어간 소쌍. 그런데 따귀를 때리며 난폭하게 구는 세자빈의 횡포까지 견뎌낸다(시험을 통화했다는 의미가 더 정확할 듯 싶다). 

봉씨가 된 세자빈 스캔들의 재해석 
 
 <kbs드라마 스페셜 2021- 그녀들>
ⓒ kbs2
 
'조선왕조실록'은 세자빈 봉씨를 술 마시기를 즐기며, 때로는 술에 취해 시중드는 나인의 등에 업혀 궐안을 돌아다녔다고 묘사했다. 그래서 시아버지인 세종은 그녀의 '괄한' 성정을 다스리고자 열녀문까지 내렸다고. 

하지만 드라마는 세자빈 봉씨의 '정숙하지 못한 여인'이라는 프레임을 과감하게 벗겨낸다. 도리어 자유로운 성정으로 궁궐이라는 공간에서 상처받은 여성으로 재해석해낸다. 그리고 그런 봉씨와 함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나인 소쌍 역시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간자'가 된 이로 그려낸다.  

세자빈 봉씨의 파렴치한 스캔들 역시 관점을 달리 한다. 세손을 잉태해야 한다는 궐 속 여성들의 권력 싸움으로 초점을 달리한 사건은 세자빈의 패륜이 아니라, 세자빈이 되려는 승휘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그 조작의 중심에는 소쌍이 있다. 소쌍은 승휘의 계략에 맞춰 세자가 세자빈을 찾은 날, 옷고름을 풀어헤치며 세자빈이 자신을 범했음을 만천하에 알린다. 당연히 세자빈은 폐서인이 되고, 소쌍 역시 곤장 70대를 맞고 궐에서 쫓겨난다. 

그런데 드라마는 반전을 선사한다. 궐에서 쫓겨나던 날 소쌍은 자신에게 사례를 한다며 쌀자루를 쥐어주는 승휘에게 외려 고맙다고 전한다. 고맙다니. 승휘의 하수인이 되어 세자빈의 동성애를 폭로한 소쌍. 하지만 알고보니 그건 스스로 궐 밖으로 나오기 위한 소쌍과 세자빈 봉씨의 선택이었다.

드라마는 봉숭아 물을 곱게 들였던 두 여인 소쌍과 봉씨가 눈 내리던 날 손을 잡고 궐을 떠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조선 초 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스캔들은 그렇게 로맨틱한 그녀들의 순애보로 각색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 속 소쌍과 세자빈 봉씨는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했다. 세자빈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친정으로 쫓겨났지만, 소쌍은 목숨을 건질 수 없었다. 신분 사회가 가진 비극적 결말이다. 정사에서 세자빈은 그저 친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끝나지만, 야사에서 전해진 세자빈의 결말 역시 친정 아버지에 의한 '명예 살인'이었다. 

궁궐 속 화초로만 살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세자빈 봉씨. 역사에선 파렴치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기록됐지만 21세기의 드라마에선 당시의 유교적 풍속과 조우할 수 없었던 자기 주도적인 한 여성으로 거듭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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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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