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에게 '그래미'는 꼭 필요할까

아이즈 ize 이여름(칼럼니스트) 2021. 11.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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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여름(칼럼니스트)

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뮤직

그룹 방탄소년단이 현재 세계를 무대로 써 내려가고 있는 역사는 전례가 없다. 이미 국내 음원 시장과 굵직한 음악 관련 시상식에서 장기간 정상을 석권한 지 오래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해외 투어를 이어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빌보드 뮤직 어워즈(BMA)' 등 미국의 굵직한 필드를 점령했다.

시장성의 척도라 여겨지는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올해 발표한 영어곡 '버터(Butter)'는 최장기간인 10주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비단 차트나 음원 성적에서만의 성과도 아니다.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 플랫폼에서의 파급력은 물론, 국내 아티스트 최초로 UN에서의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연설과 퍼포먼스를 선보인 점, 국내 아티스트 최초로 스타디움 투어를 매진시킨 점까지, 숱한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들을 달성해낸다. 지난 22일에는 아리아나 그란데, 드레이크, 올리비아 로드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등 당대 최고의 팝가수들을 제치고 '2021 AMA'에서 최고상이자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ARTIST OF THE YEAR)'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기록했다. 팝의 본고장인 미국의 3대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아시아 출신의 비영어권 아티스트의 최고상 수상이라는 마법 같은 기록. 2018년 인기상 격의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의 수상으로 처음 'AMA' 무대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현실감 없는 인기의 불씨는 도무지 꺼질 줄 모르는 모양새다. 

이 '수상'이라는 길목에서 암묵적으로 최종 종착지로 기대가 모아지는 건 단연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해외 시장을 거침없이 정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여태껏 거머쥐지 못한 단 하나의 타겟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일종의 숙제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에 매번 수상 시즌이 되면 대중과 팬덤, 언론까지 관심은 모두 수상 여부에 쏠린다. 특히 올해 'AMA'의 최고상 수상과 '버터(Butter)'와 '다이너마이트(Dynamite)'라는 메가 히트곡의 탄생으로 '그래미 어워즈'의 메인 분야의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보수적인 '그래미 어워즈'의 문턱은 역시나 높았다.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후보에 올랐다고 발표했고 '제너럴 필즈'라고 불리는 4대 본상 후보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뉴 아티스트'까지.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신이 전망했던 바와 전혀 다른 결과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나 '그래미 어워즈'를 향한 비판까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임은 틀림없다. 미국의 3대 시상식 중 인기나 대중성에 기반을 둔 다른 두 시상식과는 달리 '그래미 어워즈'는 음악적 성취에 오로지 중점을 두며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곡의 성적과 음악성은 물론 북미의 대중음악사에 어떤 '임팩트'를 선보였느냐의 여부가 고루 평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 수상자 및 작곡가, 프로듀서 등 실제 미국 음악시장 내 굵직한 현업 종사자들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하는 '찐' 필드에서 2년 연속으로 후보에 오른 것은 미국 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다. 특히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시상식 말미에 단독으로 무대를 펼치는 점이나 시상식 생중계에서 'COMING UP BTS'와 같은 문구로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점 또한 같은 맥락. 이는 '그래미 어워즈'가 요즘의 주요 시청자층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K팝'과 '방탄소년단'이라는 키워드를 무시할 수 없는 시장 흐름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해도 좋은 사례다. 작년 '그래미 어워즈' 직후 실시간 라이브를 통해 "기사가 (수상) '불발'이라고 쓰였지만 사실 불발이라기보단 단독 무대를 하고 노미네이트가 된 거다. 우리가 해냈다. 충분하다. 아쉽지 않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지만 진짜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리더 RM의 성숙한 태도에서도 그 맥락을 엿볼 수 있듯 말이다.  

사진제공=빅히트뮤직

'그래미 어워즈' 수상이 음악적 영향력의 척도로 인정받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수상 자체를 꼭 '숙원 사업'처럼 여겨야 할지는 이제 의문이 든다. 현재 음악 시장의 흐름은 변화하고 있다. 비단 메인 음원 차트뿐 아니라 SNS와 숏폼, 영상 콘텐츠의 형태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과 아티스트가 소비되는 세상에서 반드시 음악성과 음악 신 내부 종사자들의 인정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가운데 음악성과 퍼포먼스 실력은 물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행동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대 규모의 팬덤을 지닌 방탄소년단의 존재감은 '그래미'의 수상 여부에 기대지 않아도 모두가 인정하는 성과다. 높은 벽을 두드리며 그 영향력을 '증명' 받는 것에 지나치게 과몰입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특히 '그래미 어워즈'는 공정성에 관한 의심과 타 인종에게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기존 선정위원 중 아시아계 비중이 현저히 낮고,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잇따른다. 지난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년간 머무른 엄청난 기록을 지닌 위켄드조차 수상 후보에서 제외된 탓에, 그는 "그래미는 썩었다"는 파격적인 말과 함께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2년전 드레이크 또한 그래미 무대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당신의 공연 티켓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은 그래미 트로피가 필요없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 국제적 음악적 권위의 상징이라기보단 미국의 '지역 축제'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올해 메인 부문의 후보에서 제외된 일종의 '사건'은 오랜 기간 '그래미'에 제기된 의혹들에 불을 더욱 거세게 지피는, 그야말로 기존의 관습을 뒤흔드는 판의 중심에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굉장히 의미있고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메인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방탄소년단의 이번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의 수상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수상한다면 그 의미는 더없이 크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 그들은 오히려 수상이나 차트 기록에 더 이상 목맬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상 유무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그저 자신들의 앞에 놓인 편견이나 어떤 '벽'들을 깨부수고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차츰차츰 성장해온 방탄소년단이 또 하나의 벽을 부수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그저 또 하나의 짜릿한 '도전'의 일부쯤으로 여기면 그뿐일 듯하다. '2021 AMA'에서 대상 수상 직후 "이 대상 수상이 방탄소년단의 제2의 챕터가 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한 멤버 정국의 말처럼, 이제는 글로벌 무대에서 제2막에 들어선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힘겹게 올라온 정상, K팝이 거대한 현상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단지 '신선한 흐름', 혹은 '놀랄 만한 현상'과 같은 존재 이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장 구조가 규정해 놓은 어떤 기준점을 목표치로 삼기보다는, 내실을 더욱 탄탄히 다지는 모습이 기대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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