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BTS가 빌보드 1위 했을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최상진 기자 2021. 9. 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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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사진=넷플릭스
[서울경제]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이렇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 있었던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서바이벌 데스 게임’의 관례 깨고 쉬운 설정과 인간적인 스토리를 입힌 특이한 작품이다. 2008년부터 작품을 준비했다는 황동혁 감독은 “BTS가 빌보드 1위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라며 얼떨떨해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7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황 감독의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단순하고 화려한 게임장 세트에 대한 것이었다. ‘게임을 설계한 일남(오영수)의 시각으로 과거 아이 시절의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게임장을 만들었다. 결코 어둡고 우울한 식의 게임장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은 플레이어들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던 시각이 얼마나 단순했던 것인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충격적인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장르적으로는 ‘서바이벌 데스 게임’이죠. 가장 심플하고 유치한 게임을 이용한. 어느 문화의 사람이 봐도 30초 안에 놀이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게임 자체가 심플하기에 감정이입하기 좋은 작품이고, 휴먼드라마처럼 볼 수 있는 부분이 인종과 문화를 넘어 인기를 얻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차별점은 주인공이 보통의 서바이벌 게임처럼 멋지고, 천재적인 머리를 갖고, 초인적인 의지로 벽을 돌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조차 별다른 능력이 없어요. 오히려 남의 도움과 운으로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쳐가요. 한명의 승자를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루저를 중점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한국 스트리밍 1위를 했을 때, 미국 1위를 했을 때, 세계 1위를 했을 때 한번씩 홀로 술을 마셨다며 “뭐가 한꺼번에 됐으면 좋겠는데 계속 이어지니 얼떨떨하다”고 했다. 잘 될거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정도까지 잘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드라마의 재미는 당연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더 힘들어지고 일확천금을 노리게 된 세상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부는 ‘신파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많이 봐온 캐릭터일수도 있죠. 글로벌하게 준비하면서 한명 한명이 대표성을 띄는 계층과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선정했습니다. 인물설명을 자세히 하는 것도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신파에 대한 제 기준은 스토리의 자연스러움을 해치며 과장되게 감정을 앞서가는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에는 적어도 제 기준의 신파는 없어요.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하는게 맞죠. 신파보다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딱 보면 딱 아는 쉬운 게임이 계속된다. 물론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기에 종목의 유치함과 별개로 참가자들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배틀로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게임을 선정할 때 가장 심플한 원칙은 쉬워야 한다는 것이였어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수백명이 하면 뭔가 기이하고 묘할 것 같았죠. 충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오징어게임도 어렸을 때 많이 했는데 격렬하고 투쟁적인 놀이잖아요. 검투사처럼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본 게임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려워야 한다고 하실 수도 있어요. 배틀로얄이나 라이어게임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맞지만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게임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징어게임’은 아이들의 게임으로 진행되기에 이해하기 쉽고, 덕분에 사람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데스게임이 강제로 끌려와 하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은 투표로 과반수가 넘으면 나갈 수 있어요. 공정한 세상이라는 원리를 내세워서요. 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게 하고, 마지막까지도 그 기회가 유지되는. 그래서 신선하다는 해외 반응이 많아요.”

주인공 기훈(이정재)은 회사의 파업, 친구의 죽음, 사업실패 등으로 밑바닥에 몰려 있다. 파업 과정에서 죽어가는 친구 때문에 아내가 출산하는 현장에도 가지 못했다. 빚은 늘어나고, 돈은 없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인물이지만 딱 하나 인간성만큼은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기훈은 처음부터 휴머니티를 가진 인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래 갖고 있던 것이지 변해가는 것은 아니라고 봤어요. 정의의 사도는 아니고, 일남과의 일화에서 보듯 인간을 배신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우리 모두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언제든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죠. 그런 그가 왜 망가졌는지 보여주면서 그 안의 인간성이 빛처럼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마지막에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은 시스템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고 왜 그런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주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도 등장했다. 약자나 여성, 젠더 감수성부터 번호유출까지 여러건의 의심을 받고 있다. 황 감독은 하나하나 해명하며 결코 그럴 뜻은 없었다고 이해를 구했다.

“한미녀(김주령)의 경우 몸을 재화로 삼는다기 보다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비하나 혐오가 아닌 최악의 상황에 몰린 인간의 모습에 착안했어요. 보디 프린팅한 사람들의 경우 VIP가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설정했습니다. VIP별로 한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가 서 있는데, 인간을 도구화 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휴대폰 번호 노출은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 안전한 번호라고 해서 썼는데 제작진이 010이 자동으로 걸리는 것을 예측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끝까지 체크 못한 부분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작진 쪽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던 기훈의 변심으로 인해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늘고 있다. 풀어내야 할 숙제도 많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여할지, 프론트맨 황인호(이병헌)의 정체는 무엇인지, 빨간 옷을 입은 관리자들은 어떤 인물들인지 할 말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다.

“시즌2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기훈이 비행기를 타려다 돌아서는 장면은 시즌2를 염두한 것이기는 합니다. 더 이상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경쟁으로 내몬 시스템과 권력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 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관리자들은 동전의 양면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관리자로 왔을까. 그들 중 누군가는 같은 곤경에 처람 사람 아닐까요. 그중에서도 계급을 하나씩 밟아 위로 올라가면 신임을 얻고 승진하는 피라미드 구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구상해 처음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한게 2009년, 당시 투자가 원활하지 않았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은 넷플릭스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세상의 변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OTT가 영화와 TV시장을 흡수해버린 콘텐츠 공급구조의 변화가 컸다.

“2009년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당시는 이런 작품을 내놓기에 사회적 문화적으로 낯설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투자를 거절당하고 아직 시기상조라고 느꼈죠. 10년이 지나 OTT가 나타났고, 세상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분위기도 많아졌잖아요. 이들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켜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넷플릭스의 장점은 형식, 소재, 수위, 길이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케이블이나 지상파에 내놓기도 어렵고 두 시간으로 압축하기도 어렵기에 오직 넷플릭스만 가능한 작품이었죠. 시장 확보가 충분한 상태에서 예산을 터치하지 않는, 로컬 마켓에서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번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너무 빨리 반응이 와서 아직도 얼떨떨하네요.”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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