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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전도연은 딱인데 류준열은 헐거워 보이는 이유

박생강 칼럼니스트 입력 2021. 09. 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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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누가 해도 쉽지 않은 남자주인공 캐릭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주말드라마 <인간실격>은 삶의 밑바닥까지 슬픔이 들어찬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청자들에게 신파적으로 슬프다 하소연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저 두 사람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며 마음의 화선지에서 슬픔이 번져나가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의 우울을 견디는 것이 과연 쉬운가?

<인간실격>의 두 주인공 부정(전도연)과 강재(류준열)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견디며 살아가려는 중이다. 시청자들이 그 길에 동참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언젠가부터 시청자들은 '웃픈'이야기에는 쉽게 마음을 열지만 '우울'한 이야기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에 스며들기에 삶이 너무 우울해서 차라리 유쾌한 유튜버의 수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실격>의 주인공 부정 같은 경험이 있다면 이 드라마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극중 가사도우미 부정은 원래 좋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대필작가로 살아왔다. 하지만 부정은 배우이자 작가로까지 활동하는 아란(박지영) 때문에 그녀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부정이 쓴 원고 그대로 출간된 아란의 인생수첩이란 책 덕에 아란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반대로 부정은 그녀의 삶이 통째로 짓밟힌 아픔에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시청자는 쉽게 부정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다. 대필 작가가 아니라도 나의 성과를 나의 보람을 빼앗긴 경험은 생각보다 흔하다. 더구나 한번 무너졌다 일어나기란 평범한 드라마에서 보여주듯 그렇게 쉽지 않다. 그리고 <인간실격>은 그 무너진 사람의 고요한 붕괴의 순간들을 부정을 통해 집요하리만큼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실격>이 보여주는 진실한 통찰의 순간이기도하다.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데 인생이 찢어진 상처의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런 장면들 말이다.

전도연이 부정을 통해 보여주는 연기는 짓밟힌 자의 먹먹한 슬픔을 드러낸다. 그 때문에 배우 전도연의 눈물과 독백들은 <인간실격>의 감정선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부정의 삶과 상처가 드러나는 이야기는 꽤 몰입감이 있다. 또한 부정이 아버지 창숙(박인환)과 나누는 소박하고 따스한 대화 역시 이 드라마의 백미다.

반면 시청자들은 부정의 아버지 창숙이나 부정의 남편이자 마마보이인 정수(박병은)보다 남자주인공 강재에게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무너진 감정을 보여주는 부정과 달리 밑바닥의 호스트 출신 사내 강재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창숙처럼 위로의 인물도 정수처럼 현실에서 있을 법한 순한데 아내를 화나게 만드는 전형적인 남편상도 아니다.

강재는 얼핏 보면 양아치 같은 놈이지만 묘하게 인생의 슬픔이 담긴 찌그러진 철학자 같기도 하다. 당연히 연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은근히 멋있어 보이기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주인공의 찌그러진 모습에서 매력이 느껴질 테니까.

배우 류준열이 강재에 어울리는 조합인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영화 <돈>에서처럼 류준열은 풋풋하고 순박한데, 무뚝뚝할 때 본인의 연기가 선명해진다. 강재는 뻔뻔하고 밑바닥인데, 은근히 인간적인 순정이 드러날 때 어색해서 무뚝뚝하다. 이 미묘한 결이 달라 류준열의 연기는 <인간실격>에서 1970년대 통기타 든 대학생 같은 그의 장발처럼 좀 어색한 느낌이 있다. 몸으로 느끼는 연기보다 캐릭터를 단조롭게 읽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류준열이 이 드라마에서 빼어나게 소화해 낸 장면들이 몇 군데 있다. 특히 그중 백미는 자기 생일날 엄마의 집에 찾아와 이런저런 대화를 무뚝뚝하게 나누는 장면이다. 딱 20대 중반의 무뚝뚝한 아들 같은 생활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강재는 사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캐릭터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이 강재 역할로 쉽게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얼굴만 미끈하게 팽팽한 꽃미남은 강재의 아름다운 분위기는 연출해 주겠지만, 이 캐릭터의 퍽퍽한 삶을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좀 무너진 느낌의 퇴폐적인 미남 배우가 나았을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사연 있어 보이니까.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소화할 배우를 상상하기가 이상하게 쉽지가 않다.

여러 모로 <인간실격>의 강재는 배우가 구체화하기 힘든 캐릭터다. 아마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독자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좀 더 확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인간실격>은 한편의 소설 같은 느낌도 준다. 인물들의 독백, 상황, 모든 것들을 곱씹고 생각하게 만든다. 꽉 들어찬 문장처럼 한 장면의 시간도 굉장히 길다. 하지만 소설책을 손에 쥔 독자와 리모컨을 손에 쥔 시청자가 원하는 재미의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실격>은 그 지점을 놓쳤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더 가라앉은 길로 내려간 것 같은 이야기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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