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동거', 혜리를 보며 생긴 엄마 미소가 냉소로 바뀌는 순간들

박생강 칼럼니스트 입력 2021. 6. 16. 15:20 수정 2021. 6. 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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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동거', 혜리가 혜리를 만났을 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 혜리의 몫은 상당하다. 22세 삼시 다섯 끼를 먹고, 할 말 다하면서도 귀여움을 잃지 않는 주인공 이담 역할에 혜리만큼 적역은 없을 것 같다. 로맨틱코미디라는 가벼운 무대에서 혜리는 본인의 배우 체급에 어울리는 연기를 한다. 귀여운 장면이나 망가지는 장면을 오글거리게 만들지 않는 것. 일단은 로맨틱코미디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합격점은 받을 수 있다.

물론 <간 떨어지는 동거>는 원작 인기 웹툰의 장점을 드라마로 옮기는 데 이미 성공한 작품이다. 특별히 복잡한 서사는 없다. 어르신 남자 구미호 신우여(장기용)와 이담의 이야기에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꽤 잘 꾸려간다. 또한 구미호 양혜선(강한나), 이담의 베프 도재진(김도완) 등의 조연 캐릭터도 생동감이 있다. 특히 양혜선과 도재진이 만들어가는 여왕님과 찐따남의 연애 코드 역시 이 드라마의 재미 중 한 축을 차지한다.

이담의 대학생활 장면 역시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의 진지함이 있다. 특히 남자 선배들의 외모평가 에피소드나 학생들 사이의 은밀한 따돌림 문화 등이 은근히 구체적이다.

이처럼 <간동거>는 일단 드라마 자체가 술술 흘러가는 재미도 있고, 생각할 문제도 던져준다. 그럼에도 역시 흥미로움의 팔할은 신우여와 이담의 에피소드다. 키다리아저씨 같은 구미호 신우여와 이담 사이에 조심스럽고도 코믹한 연애담이 이 드라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단 <간동거>에서 두 커플의 유머 감각은 나쁘지 않다. 비대면데이트 최준을 패러디한 것 같은 배우 장기용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코믹하다. 아무리 무뚝뚝하게 대사를 던져도 그 자체가 이미 웃음기를 머금고 들어간다.

하지만 <간동거>에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어가는 인물은 역시 신우여보다는 대학생 이담이다. 다만 시청자들은 이담이란 인물을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tvN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혹은 혜리의 캐릭터로 이 주인공을 볼 수밖에 없다.

<간동거>는 로맨틱코미디에서 혜리가 혜리를 만났을 때 유쾌한 시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구미호를 사랑하는 본인의 마음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혜리는 그 자체로 그 나이 또래에 짝사랑하는 대학생 같은 현실감이 있다. 이후 신우여와 술을 마시면서 귀엽게 망가지는 모습은 어쩌면 혜리 밖에 할 수 없는 연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간동거>에서 혜리가 지닌 주인공으로서의 힘은 여기까지다. <응팔>이후 몇 개의 영화와 드라마를 거쳐 왔지만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뭉개지는 발음은 여전하다. 감정 표현이 사랑스러울 때가 있지만, 연기의 깊이가 얕아 텐션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다른 구미호로 등장하는 강한나의 코믹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면 연기 스펙트럼의 기본기까지 비교된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간동거>의 진지한 장면들이 주인공들을 통해 스킵하듯 지나갈 때다. <간동거>는 가벼운 로맨틱코미디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진지한 감정들을 다루는 짧은 장면들이 한 회당 몇 차례 이어진다. 아쉽게도 혜리와 장기용은 그 진지한 장면들을 코믹 장면 중간의 지루한 장면으로 넘기고 만다.

어차피 장기용은 드라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대부분 무표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혜리는 발랄하고 투덜거릴 때의 표정은 다채롭지만, 진지하고 무거운 장면에서는 백지처럼 표정 없이 변해 버린다.

물론 그 나이 또래의 대학생이 위기의 상황이나 심각한 상황에서 결국 멍한 표정 밖에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시청자라면 그것 역시 진지한 장면에서 혜리가 보여준 생활연기라고 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를 책임지는 주인공이라면, 감정의 깊이가 무거워지는 장면에서 그 무게를 책임지는 '무엇'이 필요하다. 같은 아이돌 출신의 배우 윤아나 수지 등은 무거운 장면에서 감동까지 끌어내지는 못해도 최소한 표정과 분위기로 그 장면의 메시지는 전달한다. 하지만 혜리는 무표정으로 <간동거> 속 진지하거나 무거운, 혹은 깊은 감정이 필요한 장면들을 공허하게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간동거>에서 혜리는 혜리를 만나 오랜만에 유쾌한 장면들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배우는 유쾌한 장면과 무거운 장면 사이의 진폭이 너무 크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을 볼 때 지어지던 엄마 미소가 결국 냉소나 실소로 바뀌는 순간들이 왕왕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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