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박하선을 보며 시청자들이 "무섭다"고 말하는 까닭

김종성 입력 2021. 1. 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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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카카오 TV <며느라기>

[김종성 기자]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 카카오TV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며느라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무섭다'는 것이다. 공포물도 아닌 이 잔잔한 드라마를 보며 사람들이 겁에 질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현실을 100% 리얼하게 고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수많은 '며느라기'들의 생생한 비명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시월드의 가장 큼직한 이슈, 명절의 후폭풍은 거셌다. 민사린(박하선)의 시댁은 여느 가부장제 하의 명절 풍경을 '복붙'한 것 같았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힘들게 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했다. 차례를 지낸 후 뒷정리도 온전히 여자들의 몫이었다. 사린은 여자들에게만 노동이 전가되는 불합리한 상황에도 꾹 참고 '며느라기(期)'를 감내했다. 

남편 무구영(권율)은 오후 늦게서야 사린의 친정댁에 가겠다고 나섰고, 엄마 박기동(문희경)은 이렇게 일찍 갈 거면 명절 한 주 전에 다녀 오라고 핀잔을 줬다. 그 말을 들은 사린은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딸 가진) 엄마'가 '(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머니'일 때 이토록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린은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이게 뭔가 싶었다. 

잠시 쉬었을까. 눈치 없는 구영은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요구를 눈치껏 커트하지 못하고 '멍청하게도' 사린의 의사를 물었다. 곤란한 입장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시댁에 있는 매순간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불편한지 정말 모르는 걸까. 사린은 울컥했다. 구영에게 자신이 정말 밥을 안 하도 되는 거냐고 따졌고, 구영은 그렇게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며 혼자 시댁으로 떠났다.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 카카오TV
 
지난 22일 공개된 <며느라기> 10회('딸 가진 죄인')에서는 구영의 자기반성(물론 제대로 된 성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이 이어졌다. 홀로 시댁으로 돌아간 구영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버지 무남천(김종구)과 그로 인해 마음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사린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됐다. 또, 시댁 스트레스로 힘겨워 하는 여동생 무미영(최윤라)을 보며 아내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 

구영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구영은 사린이 틀어둔 결혼식 영상을 보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만 믿고 따라가겠다던 사린을 어떻게 대했는지 깨달은 것일까. 그 시각, 사린은 잠시 바람을 쐬다가 친정 엄마(강애심)가 경비실에 반찬을 맡기고 돌아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위가 불편할까봐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엄마를 보고 사린은 더 속상해졌다. 

"'며느라기'는 있었어. 내 옆에, 곳곳에, 매순간마다. 나 이제 어떡하지?" 

사린은 홀로 카페를 찾았다. 주문한 음료를 들고 자리로 이동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그런 게 어딨냐고 반문했던 '며느라기'는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린의 옆에 있었다.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자라왔다. 잘못된 성역할 고정관념이 옥죄었지만, 당시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걸까. 체감으로 얻은 깨달음은 더욱 날카롭기 마련이다. 

<며느리기>는 '딸 가진 죄'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건 '여자로 태어난 죄'와 다르지 않았다. 여자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조신하게 다리를 모은 채 앉아야 했고, 여자로 태어났기에 드세지 않고 착하게 굴어야 했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일은 물론 명절 노동까지 전담해야 했다. 또, 평생에 걸쳐 감내해야 할 '며느라기'라는 굴레는 어떠한가. 그걸 벗어던지면 '나쁜X'라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사린의 깨달음은 이 문제가 일부 여자들의 일이 아니라는 연대 의식의 회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잘못된 성 고정관념, 세대를 타고 내려온 성차별적 언어와 교육이 결국 '며느라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살아남는 방법은 적응하고 참아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큰며느리 정혜린(백은혜)처럼 부당한 희생을 거부하는 예도 늘어나고 있다. 

홀로 여행을 떠난 사린은 과연 어떤 해답을 찾을까. 각성한 사린의 변화가 기대된다. 또, 구영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중간자'라는 헛된 포지션에서 벗어나 당사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게 될까. 그리고 우리들은 <며느라기>가 던진 질문에 얼마나 화답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시월드', '며느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무서워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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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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