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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욕심 부린 걸까, '나의 판타집' 보며 느낀 배신감의 실체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1. 01. 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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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판타집', 집도 판타지도 사람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의 새해 첫 예능 <나의 판타집>의 정규 편성은 예정된 결과다. 지난여름 방영한 2부작 파일럿 시청률은 4% 언저리로 초대박은 아니지만 나름 쏠쏠했고, 특히나 평이 좋았다. 팬데믹 이후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간에 애착과 관심을 갖게 된 시대적 흐름과 맞닿고, 방송과 유튜브를 막론해 하나의 군락을 이룬 '집방' 콘텐츠지만 새로움이 있었다. 최근 타인의 사는 모습, 멋진 공간에 관한 볼거리는 크게 늘었지만 '거주감 체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설명답게 평소 품었던 판타지를 구현해놓은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살아본다는 점은 기존의 집방이나 랜선 집들이에서 한발 더 들어간 색다른 기획이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던 로망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즐거움을 따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집 구경을 한다. 정말 특이한 집부터 상상도 못한 형태와 구조의 집까지 집 구경의 재미를 중심으로 건축에 담겨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지향을 어떻게 기술공학적으로, 정서적으로 구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그러면서 얻는 영감과 새로이 싹트는 로망이란 '집방' 본연의 재미와 함께 삶의 태도를 품고 있는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더 나아가자면 건축가 유현준이 말한 "집을 알아가는 프로라기보다 사람을 알아가는 프로"로 확장될 가능성이 보였다. 각기 다른 판타지에서 출발하다보니 집에 투영하는 가치가 제각각이고,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 또한 육아예능, 일상 관찰예능, 힐링 토크 등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꿈꾸던 로망을 미리 일찍 실행하고 현실화한 집주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 알아가는 장치가 의외로 큰 흥미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누군가의 로망을 현실 세계로 갖고 온 사람과 로망을 체험하는 사람이 연결되면서 진일보한 집방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막상 정규 편성된 1,2회 방송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품어보았을 보편적 판타지, 자연 속 힐링과 같은 대중적인 판타지를 풀어낸 파일럿과 달리 정규 편성된 <나의 판타집>의 초점은 판타지도, 집도 아닌 연예인 게스트에게 맞춰져 있다. 쿡방, 먹방, 잘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선보이고, 속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고, 연예인 친구도 등장한다. 물론 집을 통해 사람을 이해한다는 점이 프로그램의 본질이긴 하다만, 실제 사는 집도 아닌 일회성 이벤트에서 인간적 면모의 발산은 이질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파일럿 <나의 판타집>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판타지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접근이란 끈을 놓지 않는 데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부러운 로망의 공간을 보여주는 게 아닌 판타지의 발원부터 구현, 판단까지 현실을 딛고 있었기에 공간을 통해 교감할 수 있어서 신선했다. 다둥이 아빠인 양동근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너른 공간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주방을 바라는 아내의 로망을, 평범한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다보니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이승윤은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 저택과 같은 화려한 집을, 허영지는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되살아날 법한 고즈넉한 공간을 원했다. 체험뿐 아니라 대지, 건축, 자재 가격부터 관리 측면까지 비용을 공개하고,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단열, 난방, 주변 환경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한 언급도 비교적 상세히 해서 판타지를 목표로 삼을 수도 있도록 현실적인 접근성을 고려했다.

최고 명장면은 실제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양동근이 집주인과 동네 주민들에게 관리비와 매물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승윤은 막상 190평이나 되는 집이 주는 장엄함이나 개인 풀장이 따로 있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관리해야 할 일도 많고 집 안에서조차 오가기 힘들다며 판타지와 현실의 괴리를 밝히는 대목이었다. 판타지에서 바라보고 출발하는 기획이다 보니 자칫 위화감이나 괴리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일 텐데 이처럼 현실적 논리를 통해 제어를 하니 집방 본연의 즐거움을 키워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정규 편성으로 돌아온 <나의 판타집>에는 바로 이 현실성이 가장 먼저 그리고 깔끔하게 사라졌다. 집방의 재미란 대리만족과 함께, '우리 집이라면' '내가 살아본다면'과 같은 대입에 있다. 그런데 낚시광인 KCM을 위한 여수 바닷가 집이나 에이핑크의 박초롱과 윤보미가 함께 머문 크고 세련된 집에 황토방까지 붙은 '판타집'을 보고 있자면, 공간은 주인공에서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판타지 자체가 앞선 파일럿과 달리 결이 너무 다른 데다 공간 또한 '대입'과 '대리만족'보다는 전시로 옮겨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규 편성된 <나의 판타집>은 '집방'이라기보다 연예인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도록 하는 일상 관찰 예능에 오히려 가까워졌다. 공간을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했겠지만, 지금은 사람을 이야기하는데 공간이 잠깐 거드는 형국이다. 공간과 사람과 예능을 꿰고자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나의 판타집>은 집과 판타지를 내세웠지만 공교롭게도 두 가지 모두 보이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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