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차 예능 '라스', 언제까지 가늘고 길게만 외칠 건가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0. 12. 24. 16: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00회 맞은 '라스', 과거를 그리워하는 시청자 위한 혁신 절실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라디오 스타>가 대망의 700회를 맞았다. 2000년대 초중반 예능 대변혁의 시대를 이끈 주역에서 장수 예능의 반열에 오른 지금까지 무려 14년간 한 자리에서 방송했다. 축하를 보내고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에 감사함을 표한다. 이런 뜻깊은 시간을 맞아 <라스>의 MC 자리를 거쳐 간 개국공신 윤종신과 김구라의 빈자리를 메워준 유세윤,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 예능인으로 자리매김한 규현이 게스트로 출연해 추억 토크와 간만에 입담의 합을 맞췄다.

<라스>를 언급할 때면 늘 아저씨들이 군대 이야기처럼 늘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김구라의 신선함과 비례하는 초장기 <라스>의 유니크함에 대한 그리움, 신정환을 필두로 하는 과거 MC진의 케미스트리, 극히 평범한 토크쇼로 전락한 모습에 대한 비판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모두 더 이상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머쓱한 유통기한이 지난 화제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며 규현이 촉촉한 눈으로 말했듯이 <라스> 역사의 절반 이상 이런 이야기들은 계속됐다.

채널A 예능 <개뼈다귀>에서 김구라는 "사실 <라디오스타>에 나가면 어떤 분들이 옛날 거 보면 너무 재밌는데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며 "서른일곱 살 때 하던 방송하고 환경도 많이 바뀌고 시청자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같은 방송에서 연신 "상투적인 걸 하면 안 돼"라고 말하며 나이에 걸맞은 색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김구라는 <정치를 한다면>, <썰전>, <투페이스> 같은 정치와 시사, <돌벌래> 같은 실물 경제 소재를 본격 다룰 수 있는 유일한 A급 MC이면서, 방송 MC 중 유튜브 플랫폼에 가장 본격적으로 먼저 들어간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문제는 존 덴버의 덴버처럼 김구라의 정체성을 만든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라스>는 오늘날 시청자가 원하는 변화, 즉 어디서 어떤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 찾지 못했다. 자축의 자리가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내부자들이 <라스>의 '리즈 시절'과 그 정수에 대해 정확히 짚으면서, 현재 <라스>에 부족한 지점을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윤종신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라스> 레전드 시절을 <무릎팍도사>에 더부살이 하던 시절이라고 꼽고 그 원인을 위태함에서 찾았다. 지금은 작가에게 안정감에서 오는 여유가 있지만 지켜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오는 에너지가 높았다는 것을 짚었다. 유세윤도 삶이 안정되면 웃음의 강도가 떨어진다며 불안정한 시기 가장 많이 웃음을 줄 수 있는 무대였다고 했다. 그 시절의 <라스>가 오늘날 유튜브의 원형이라고까지 치켜세운 김구라도 예술가의 근원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동의했다.

요즘 레트로 무드에 맞게 과거 후일담을 나누며 추억을 되짚어봤지만, 미래를 기약할 거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었던 '도발적 질문'과 MC진의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흡과 에너지가 오래 전에 고갈됐는데, 이를 대신할 장치나 가치 또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랜만에 조우한 윤종신과 김구라는 옆이 아니라 마주보고 앉아 있음에도 여전한 티키타카를 선보였지만, 함께 나란히 앉은 세 MC의 합은 김구라와 안영미의 합동 무대 이외에 없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이런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화살은 안영미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

가늘고 길게 간다. 늘 하던 이 말로 700회를 마무리하며 다짐했다. <라스>와 같은 스튜디오 토크쇼는 방송 제작과 운용의 효율 측면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볼만한 가치, 재미라는 측면에서 가늘고 길게 갈만한 무언가를 찾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안정에서 오는 여유가 정리된 질문과 준비된 에피소드를 묻고 답하는 뻔한 토크쇼라면, 권태, 혹은 관성과 여유의 경계가 모호하다. 또한, 수년간 반복되어온 원형에 맞추려는 시도와 비교는 아무리 가늘게 가려고 해도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가늘고 길게'가 지금 이대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에게 지금 <라스>만의 가치와 재미를 어필할 수 있는 변화와 새로운 특색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