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먹방 콘셉트 똑같은데, 재밌어진 '도시어부'의 힘

이준목 2020. 12. 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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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채널A 예능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와> , '덕업일치'가 주는 재미

[이준목 기자]

'덕업일치'라는 신조어가 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것을 파고드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것이 곧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연결될 때 '덕업일치'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채널A 예능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와>(아래 도시어부)는 덕업일치 형 방송의 대표주자라고 할 만하다.

출연자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낚시광들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현재 그 장대한 연기 경력보다도 낚시하는 데 바친 시간이 더 길다는 '큰 형님' 이덕화나, 자신이 주연하는 드라마의 리딩도 미루고 낚시를 위하여 달려왔다는 이태곤, 장시간 촬영을 극도로 싫어하기로 유명한 이경규가 유일하게 연장 촬영도 마다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도시어부>라는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엄연히 본업이 따로 있는 연예인들임에도 방송 내내 낚시에 진심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그 진정성은 어떤 프로그램과도 비교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진심, 물 오른 <도시어부>
 
 채널A 예능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와> 한 장면.
ⓒ 채널A
 
최근 <도시어부>의 물이 올랐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껏 외출하기도 힘든 요즘,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탁 트인 대자연의 바다나 여유로운 분위기의 민물 낚시터에서 낚시-만담-먹방 등을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조황이 좋은 날은 마치 한 편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 역동적인 화면과 긴장감있는 연출도 볼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빅원'이나 '총무게 대결' '배지 뺏기' 등 기본적인 미션은 존재하지만 성공이냐 아니냐는 프로그램의 재미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난달 완도편처럼 방어만으로 도합 400kg을 넘기는 역대 최고 조황을 올리는 날도 있지만, 역대 에피소드의 절반 이상은 허탕치는 게 다반사였다. 시즌2에 접어들며 <도시어부>가 좀더 안정되어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고기를 잡으면 잡는 대로,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나이 지긋한 '아재'들이 격식이나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낚시라는 매개로 하나가 되어 그 시간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행복해하는 모습, 아이처럼 유치한 신경전과 밑도 끝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도시어부>는 시즌 1과 2 사이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한동안 주춤하던 시기가 있었다. 3인 체제였던 시즌1에서는 고정출연자였던 마이크로닷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중도 하차했고, 후임자인 장도연은 <도시어부>의 콘셉트와는 다소 맞지 않아 연착륙에 실패했다. 시즌2 초기에는 '대항해시대'라는 부재를 달고 전세계의 낚시 명소를 찾아간다는 프로젝트를 내세웠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출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히 이 설정은 폐기됐다.
 
 채널A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와> 한 장면.
ⓒ 채널A
 
위기를 기회로 삼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도시어부2>는 이미 시즌1부터 '반고정'으로 자주 등장해오던 박진철 프로, 배우 이태곤에 코미디언 지상렬, 김준현, 이수근 등을 차례로 보강하며 실험 기간을 거쳐 7인 고정 체제로 재정비됐다. 낚시 경쟁보다 캐릭터간의 상호 서사가 강조되는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연속성에 집중했다. 유일한 전문 낚시인으로 <도시어부> 조과의 상당분량을 책임지던 박진철 프로가 최근 개인사정으로 일시 하차했지만, 팀의 케미는 이제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이경규만 홀로 악역을 전담하며 고군분투하거나 제작진의 자막-CG 센스에 의존해야했던 단조로운 구성은, 스스로 방송분량을 만들어낼 줄아는 노련한 '예능인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이야기가 한결 풍성해졌다. 이제는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리액션과 상황극으로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됐다.

지상렬은 <도시어부>에서 '샌드백'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추자도 돌돔낚시 편에서 섣부른 제모 공약을 내걸었다가 실패하고 결국 대국민사과와 함께 엽기적인 '모나리자' 분장으로 벌칙을 대신하는 등 어딘지 모르게 웃픈 에피소드들을 쏟아낸다. 

막내 김준현은 인턴 시절에는 우등생이었으나 정식 멤버로 영입된 이후로는 연일 조과가 바닥을 치며 형님들에게 '배지 거지'로 구박당하는 자학형 캐릭터가 됐다. 김준현이 가세하면서 먹방과 요리 장면의 비중이 늘어나기도 했다. 끊임없는 말장난과 '아재개그'에 최적화된 이수근은 <도시어부> 시즌2에서 독설가 역할을 담당한다. 특유의 허세가 심한(?) 낚시꾼들 사이에서 종종 촌철살인의 사이다 발언으로 시청자를 대신하여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이태곤은 시즌1에서의 우직하고 카리스마있는 '낚시 사이보그' 캐릭터를 버리고 시즌2에서는 게스트에게 낚시 대결 패배로 굴욕을 당하거나 가끔 뜻밖의 몸개그로 웃음을 유발하는 등 반전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이덕화와 이경규, 두 베테랑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 사이에서 '철없는 형님' 역할 포지션으로 프로그램 흐름이 지루해질 만하면 한 번씩 의외의 활약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아예 PD와 카메라맨, 작가 등 제작진은 물론이고 출조지에서 만난 낚싯배 선장 등 일반인 출연자까지도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도시어부>의 성공은 이른바 '마니아 성향'이 강한 소재를 예능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모범을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 마음이 잘맞는 사람들, 같은 목표와 공감대를 지닌 이들이 함께 어울려 논다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은 힐링이 되고 추억이 된다. 매주 낚시 80%-먹방 20% 정도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성의 반복, 고령화된 중장년 아저씨들만 가득한 출연자 구성 속에서도 <도시어부>는 어느덧 방영 3년에 이르며 성공한 장수 프로그램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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