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노이로제 걸리겠어요!" 시청자 피로도 급증

아이즈 ize 글 신윤재(칼럼니스트) 입력 2020. 12. 10. 11:41 수정 2020. 12. 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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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신윤재(칼럼니스트)



처음에는 ‘트로트 돌풍’이라고 했고 ‘트로트 천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트로트 홍수’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트로트가 방송 콘텐츠로서 처음으로 그 파괴력을 증명했던 것이 TV조선 ‘미스트롯’이 나오고,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산슬’이 등장한 지난해 하반기 정도라고 본다면 1년이 넘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미 다양한 트로트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스타들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예능계와 광고계를 휩쓸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로트와 관련된 프로그램은 더욱 많이 편성되고 있다. 규모도 커졌다. 주로 오디션의 형태다. 올해 이미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와 SBS ‘트롯신이 떴다’ 그리고 MBC ‘최애엔터테인먼트’ ‘트로트의 민족’이 전파를 탔으며 KBS는 대국민 오디션 스타일의 ‘트롯 전국체전’을, MBN도 비슷한 형식의 ‘보이스트롯’, SBS Plus의 ‘내게 ON 트롯’ 등이 방송됐다. 이러한 열기는 내년 1월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가 방송되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기존 프로그램 역시 트로트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원래 각종 맞선을 중계했던 MBC ‘편애중계’는 트로트 오디션을 열었고, JTBC ‘아는 형님’ 역시 3주 연속으로 트로트 특집을 방송했다. 트로트의 요소만 받아들이면 시청률은 아주 손쉽게 뛰어올랐기에 늘 새로운 아이템으로 고민하는 방송가에서는 가뭄의 단비처럼 여겨졌다.

듣기 좋은 이야기도 자주 들으면 잔소리가 되는 것처럼, 트로트의 미덕은 1년 이상 열기가 지속되자 이제 피로감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포털사이트나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그리고 열혈시청자들이 모여 있다는 맘카페 등에서는 ‘트로트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여기를 틀어도, 저기를 틀어도 TV에서 계속 트로트가 나오는 탓이다. 


사실 이러한 피로감은 트로트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소재의 대중성을 과하게 이용하고 있는 지금 방송가 기획자들의 아이디어 탓이 크다. 하나의 소재가 잘 될 경우 여러 아류 프로그램들이 지속되는 일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봐왔다. 2000년대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자 봇물처럼 오디션 프로그램 광풍이 일었다. 이 모습은 한 때는 육아, 한 때는 요리와 먹방 등으로 모습을 바꿔 계속 시청자들의 곁을 스쳐갔다. 지금은 그 소재가 트로트인 셈이다.

2020년 방송가를 지배했던 키워드였던 ‘코로나19’ 그리고 ‘10~20대 시청자들의 이탈’ 역시 트로트의 유행을 가속화했다. 

‘미스트롯’의 등장은 한때 문화의 수요자로서의 위치에서 물러나있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첫 번째 사례였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많은 트로트 스타들이 탄생했다. 원래 같았으면 프로그램 후에 활발하게 행사를 다니면서 수익을 냈어야 하는 가수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방송에 집중하면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대거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열광하는 10대와 20대, 30대를 아우르는 시청자들의 TV 이탈은 더욱 더 기존의 방송사들이 중장년층에 집중하게 하는 동기가 됐다. 실질적인 시청층과 부합하는 이들의 열광은 수치로 증명된다. 오히려 최근에는 10% 시청률을 넘는 드라마를 찾기 쉽지 않은 대신에 10% 시청률을 넘는 트로트 예능을 찾는 일은 쉬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큰 유행이 피로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곤란한 일이다. 하나의 장르가 유행하다 용도가 폐기될 경우, 장르로서의 예능은 다른 소재를 찾으면 되지만 놀 멍석이 사라지는 가수들에게는 생계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넓어진 파이에서 배출한 가수들을 받아들일 만한 시장이 없으면 결국 많은 트로트 지망생들은 카메라 안에서 느꼈던 환희를 카메라 밖의 절망으로 되돌려 받고 말 것이다.

트로트의 인기를 묻는 질문은 사실 무의미하다. 일제시대부터 우리민족의 마음속에는 트로트 장르가 언제나 함께 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장르가 최근 젊은 층의 이해와 공감, 열광을 통해 메인스트림에 등장했다는 차이다. 트로트는 열기가 식더라도 다시 지금껏 그래왔듯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장년층의 지치지 않는 지지와 응원이 깔려있다. 

문화는 땅속에 펌프를 대 쉼 없이 퍼 올리는 지하수와는 다르다. 지금껏 많은 프로그램의 형식이 그러했듯 양질의 문화는 계속 발굴과 추출만을 거듭할 경우 고갈되고 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의미없는 눈물과 경쟁, 긴장감만이 들어와 자리를 채우고 만다. 조금만 더 우리 방송가를 생각하는 기획자라면 ‘트로트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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