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당연한 건 없어요".. 주류 코드된 '성차별'

박민지 2020. 11.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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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명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평범한 며느리가 겪는 일상 속 성차별을 소재로 한 이 웹툰은 더 이상 마니아 사이에서만 통하는 작품이 아니다.

최근 일상의 성차별이 주류 문화 코드로 급부상했다.

주류 매체에서 일상 속 성차별은 늘 부수적인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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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카카오TV서 영상화.. 기형적 사회에 통렬한 일침
tvN '산후조리원'도 호평.. "제일 중요한 건 결국 나예요"
카카오TV '며느라기' 중 한 장면. 카카오TV 화면 캡처

어느 명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옹기종기 모인 가족 사이에 긴장한 민사린이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며느리로, 시댁에 잘 보이고 싶은 ‘며느라기’ 시기를 겪고 있다. 그 빼고 모두 한 가족인 이 집이 사린은 여전히 낯설다. 집안 어르신이 사린의 시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형수님, 떡국 좀 더 있습니까?” 눈치를 보던 사린은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한다. 복작이는 거실과 달리 주방엔 적막이 흐른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인 사린은 홀로 떡국을 퍼담는데, 이런 말이 들려온다. “남녀평등이 다 뭐예요? 여성 상위 시대지. 하하”

어느 날, 사린의 남편 무구영이 말했다. “내가 (제사상 차리는 거) 도와줄게.” 사린이 답했다. “난 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남녀평등 시대라면서도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인 현실과 그마저도 여성 상위시대라는 비꼼이 가득한 사회에 통렬한 일침을 날리는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다.

평범한 며느리가 겪는 일상 속 성차별을 소재로 한 이 웹툰은 더 이상 마니아 사이에서만 통하는 작품이 아니다. 카카오TV는 ‘며느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지난주부터 매주 한 편씩 공개하고 있다. 지난 21일 첫 방송에는 사린이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시어머니의 생일 에피소드가 담겼는데, 반응은 폭발적이다. 반나절 만에 조회수가 50만회를 넘어서더니 이틀 만에 100만회에 육박했다. 이광영 PD는 “이건 나의 이야기이면서 즐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tvN 화면 캡처

최근 일상의 성차별이 주류 문화 코드로 급부상했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산후조리원’은 최연소 여성 임원이 돼서야 최고령 산모가 된 현진(엄지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산후조리원에 모인 산모들은 아이 태명이 곧 자신의 이름이 되는 삶을 산다. 모유에 목숨을 걸고, 분유는 금기어인 산후조리원에서 맛보는 좌절감과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현진의 삶이 대비될 때는 마치 이중생활을 보는 듯하다.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한 이 사이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의 메시지는 마지막화에서 은정(박하선)이 현진에게 전하는 대사에 묻어난다. “제일 중요한 건 결국 나예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 해요. 포기하지 말고.” 꼭 아이를 위한 ‘완벽한’ 엄마로 살아야 할까. 현진은 ‘행복한’ 엄마를 택했다. 그는 육아휴직을 보류하고 회사로 향했다.

주류 매체에서 일상 속 성차별은 늘 부수적인 소재였다. 줄기가 되는 전개 곳곳에 분노나 유머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녹여졌다. 그만큼 당연했고, 뿌리 깊었다. 하지만 주류 매체에서 잇따라 살림부터 육아까지 여성만이 느끼는 기형적인 고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상의 성차별이 문화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담기기 시작한 건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책 ‘82년생 김지영’부터다. 이전까지 페미니즘을 앞세운 작품 대다수가 강력한 여성 영웅의 리더십으로 실현되는 ‘걸크러쉬’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 작품은 일상에 만연한, 사소하지만 매우 고질적인 현실감을 무기로 공론장을 펼쳐놨다. 미국의 타임지는 이 작품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젊은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된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라며 “김지영이 겪은 고통은 너무나 크고, 슬프지만 매우 흔해서 더욱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불균형한 관습을 떠안고 산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신상 차리는 게 당연하지 뭘” 같은 불평등을 향해 수신지 작가는 이렇게 외친다. “에이, 당연한 게 어디 있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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