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 나오는 예능.. 못 할 게 뭐 있나요"[인터뷰]

박민지 2020. 11. 24. 16: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채널 '노는 언니' 만드는 방현영 CP 인터뷰
방현영 CP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마포구 E채널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 CP는 JTBC 개국 멤버로 일하다 올 초 E채널로 이적했다. ‘노는 언니’는 E채널에서 책임 프로듀서 직함을 단 그의 첫 작품이다. 윤성호 기자

‘아, 망했다.’ 첫 방송 전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은커녕 프로 방송인 한 명 없이, 그것도 제작진부터 출연진까지 모두 여성끼리만 꾸리는 예능이라니. ‘이게 웃길까? 이걸 봐줄까?’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늘 ‘못 할 게 뭐 있냐’로 귀결됐다. E채널 ‘노는 언니’의 주역 방현영 CP 이야기다.

방 CP는 최근 서울 마포구 E채널 스튜디오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그저 여성들이 노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첫 방송한 ‘노는 언니’는 여성 운동 선수들이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도전하며 놀아보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박세리(골프)를 중심으로 이재영·이다영(배구), 남현희(펜싱), 곽민정(피겨), 정유인(수영) 등이 출연한다.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됐으나 폭발적인 인기에 정규 편성 기회를 얻었다. 넷플릭스로 범위를 넓혀 인기 예능 10위권에도 안착했다. 방 CP는 JTBC ‘한끼줍쇼’를 만들다 올 초 E채널로 이적했다. ‘노는 언니’는 그가 책임 프로듀서 직함을 단 후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해본 첫 작품이다.

방현영 CP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마포구 E채널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 CP는 JTBC 개국 멤버로 일하다 올 초 E채널로 이적했다. ‘노는 언니’는 E채널에서 책임 프로듀서 직함을 단 그의 첫 작품이다. 윤성호 기자

방 CP는 “여성 예능은 암묵적으로 한계가 많다고 여겨졌다”며 “공격하고 망가지는 코미디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기에는 남성이 편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예능 속 여성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거나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무한걸스’ 같은 시도가 있긴 했지만, 아류작 그 어디쯤이었다. “부담이요? 많았죠.(웃음) 이직하면서 결정권이 생기니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첫 녹화 날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모인 ‘언니들’ 모두 초면이었다. 방 CP는 그날의 어색함이 기억났는지 손사래 치며 웃었다. 그는 “첫 촬영 전 미리 자리를 마련해 낯섦을 없애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평생 운동을 해도 분야가 다른 선수와 교류가 없다는 점 역시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구나, 그정도로 못 놀아봤구나’라는 상징적인 요소로 가져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는 언니’는 진정한 야생이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비방용 멘트가 나오면 어떡하지?’ 온갖 고민이 머리를 휘저었지만 그냥 관찰하기로 했다. 출연자 대부분이 첫 예능이다 보니 녹화만 시작되면 경직됐다. “이제 뭐 하면 돼요?”라고 묻기 일쑤였다. 방 CP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하세요.”

실제와 촬영을 구분하지 않으려 ‘큐’ 사인도 안 했다. 그랬더니 진짜 아무렇게나 했다. 어떤 날에는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포도를 사야겠다”며 단체로 마트에 들어갔다. 방 CP는 속으로 ‘아, 이거 마지막 장면인데 지금 꼭 사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참 웃겼다. 프로 방송인은 하지 않는 돌발행동이었다.

방현영 CP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마포구 E채널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 CP는 JTBC 개국 멤버로 일하다 올 초 E채널로 이적했다. ‘노는 언니’는 E채널에서 책임 프로듀서 직함을 단 그의 첫 작품이다. 윤성호 기자

딱 원하던 그림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지극히 평범한 여성들. 그는 “매체는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곤 했지만 언니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목을 ‘노는 언니’로 정한 이유도 이런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는 논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잖아요. 여성이라면 더더욱요. 여성스러움을 벗어던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막 놀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운동선수로 범위를 좁힐 때는 JTBC 개국 당시를 떠올렸다. 방 CP는 “신생 채널의 경우 주목받지 못했던 직업군을 예능에 담았을 때 반향을 불러왔다”며 “예를 들어 외국인 예능, 셰프 예능, 트로트 예능이다. 블루오션을 찾다가 운동선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여러 직군 중 운동선수들에게서 흥미로운 답변이 쏟아졌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고, 하물며 하교 후 떡볶이를 사 먹은 기억도 없었다. 포맷 결정은 수월했다. 운동선수를 모아놨으니 대결을 예상했겠지만, 휴식을 택했다. 곳곳에 대결이 존재하긴 하지만 결국은 연대다. “목표를 설정하고 우승자를 가리는 등 체계적으로 포맷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안 그랬어요. 언니들에게 일이 아닌 놀이가 되길 바랐죠. 예능의 문법을 포기하더라도 진솔함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노는 언니’의 가장 큰 특징은 외모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열렬히 운동만 하던 언니들이 주인공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방 CP는 “평가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그게 뭐 독특한가요”라며 웃었다.

“지금까지 예능은 어떤 식으로든 여성을 평가했어요. 다른 프로그램을 할 때는 여성 출연자의 피부가 안 좋게 나오면 보정을 했고, 살이 쪄 보이면 장면을 대체하기도 했죠. 여기서는 여성스러움을 강조하지 않아요. 언니들은 팔에 살이 많든 말든 민소매를 입어요.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고, 건장한 몸매는 오히려 오랜 운동으로 성취한 자산인걸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