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런닝맨'을 초등학생 예능으로 폄하할 건가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0. 11. 16. 15: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런닝맨', 유재석이 가장 즐기는 모습을 접한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출연진의 호흡이 빛나는 리얼 버라이어티식 재미를 계승한 예능이 늘고 있다. 길고 긴 관찰예능의 시대, 지속되는 트로트 열풍 속에서 전통적인 버라이어티의 재미 또한 즐길 수 있어 예능 시청자 입장에서 꽤나 고무적이다. 캐스팅에 변화를 주며 완벽히 새로운 예능으로 탄생한 채널A <도시어부2>, 유재석을 중심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의 문법을 다시 펼치는 MBC <놀면 뭐하니?>, 맥 빠졌던 지난 시즌의 분위기를 완벽히 쇄신한 tvN <신서유기8>, 절친한 배우들의 케미스트리가 반가운 <바닷길 선발대> 등 멤버간의 호흡에서 재미가 비롯되는 예능들이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멤버들이 보여주는 티키타카와 캐릭터쇼가 여전히 돋보이는 예능이 바로 전통의 장수 주말 예능 SBS <런닝맨>이다.

한때 초등학생들이 보는 예능, 내수를 포기한 예능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이 모두 오늘날 <런닝맨>에 대한 평가로는 부적절한 게으른 고정관념이다. 2017년 양세찬과 전소민의 투입 이후 반등을 넘어서 전성기를 새롭게 쓰더니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호흡을 선보이며 순도 높은 웃음을 생산 중이다.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재밌겠지만 <런닝맨>의 가장 큰 매력은 각자 개성과 능력을 갖춘 멤버들의 끈끈한 조직력에 있다. 진행자를 중심으로 샌드백과 공격수가 좌우에 나란히 하고, 그 외 멤버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확실한 캐릭터를 구축한 동시에 윤활유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그 결과 가장 오랫동안 단일멤버로 진행되어온 캐릭터쇼임에도, 캐릭터 관계의 고착화와 같은 에이징커브를 실제 친분과 서로의 끈끈한 우정으로 극복하고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요즘 어디서나 '행복 예능'을 펼치는 유재석이지만, 가장 편안하게 웃고 즐기는 모습을 접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런닝맨>이다. 그가 진행하는 다른 예능에 비해 작은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행복 예능을 구가할 수 있는 건 지난 9월 훌라댄스 교습 때나, 제주도 특집에서 저주파 치료기를 차고 젠가 게임을 할 때처럼 매번 기대를 넘어서는 웃음을 창조하는 이광수의 꾸준한 활약과 함께 지석진이 온갖 타박을 받는 찰진 샌드백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덕분이다.

이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멤버들과 함께하다보니 유재석 코미디의 원소라 할 수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진행, 깐족임과 타박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간다. 덕분에 출연진의 '현실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 꽤나 높은 빈도로 발생한다. 이런 관계로 <런닝맨>은 게스트를 늘 초대하지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게스트가 없이 진행한 '제주도 패키지여행'을 비롯해 지난주 6명의 게스트가 합류한 방송을 비교해보면 게스트 유무와 상관없이 웃음의 밀도가 일정함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캐릭터의 고착화로 힘을 잃은 것과 달리 기존 멤버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게스트들은 양념을 더하는 수준이다.

이는 실제로 깊은 멤버들의 사적 친분과 함께 <런닝맨> 특유의 작법에 기인한 바가 크다. 매번 새로운 설정 하에 작은 빈틈도 허용치 않고 게임을 촘촘하게 집어넣어 쉴 틈 없이 상황을 만든다. 매주 새로운 상황을 부여하는 세계관, '반쪽짜리 속담 퀴즈', '층간소음 아파트', '뇌파게임' 등 매번 다양한 게임을 선보이며 예능 선수들이 빛을 발할 상황을 만들어 '게임 예능' 특유의 재미를 이어간다. 방송용 캐릭터에 함몰되지 않는 리얼함은 명연기, 능청, 뻔뻔함이 혼재한 예능인들의 파티로 이어진다. 그 결과 매번 게임을 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상황극에 돌입하고, 뜬금없는 개그를 던져도 기가 막히게 캐치해 웃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뒤안길로 사라진 이유는 함께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성장 스토리 다음에 '억지로' 그 에너지와 관계를 유지하려다 지치고 탈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런닝맨>은 출연자들의 실제 친밀도가 캐릭터쇼에 반영되니 억지스런 요소나 고착화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게다가 출연자들 사이의 원활한 호흡은 물론, 다양한 게임과 룰을 빡빡하게 설계하는 제작진과의 신뢰 속에서 호흡을 맞춰가면서 멤버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성장 스토리를 그리는 대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친한 친구들이 왁자지껄 기분 좋게 놀고 웃는 상황과 분위기에 집중한다. <런닝맨>은 시간이 흐를수록 식상해지는 게 아니라 유재석도 즐거워할 만큼 멤버들의 찰기, 버라이어티의 재미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점점 예능인의 자리가 사라지는 예능에서 예능 선수들의 재능으로 빚어내는 웃음과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독보적인 예능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