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살아있다', 뭐가 두려워 리얼리티 포기했나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0. 11. 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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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다'가 살아남은,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어쨌든 살아남았다. tvN <나는 살아있다>는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사라진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의 흔적이 담겨 있는 기획이다. 군대식 훈련 설정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교관으로 특전사 출신이면서 구독자 5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박은하(은하캠핑)가 등장해 유튜브의 한 장르를 형성하는 특수부대 콘텐츠를 이어받는다.

아무런 정보 없이 한 차에 타서 외딴 장소로 훈련을 위해 떠나는 소집 장면이나 50대부터 20대까지 골고루 배치하고 아이돌, 펜싱 금메달리스트, 운동능력을 보여준 바 있는 배우, 아나운서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한 캐스팅도 닮은 구석이 있다. 즉, 여성으로 성을 바꾼 것 이외에 대부분의 골격을 유튜브에서 차용했다. 가장 기대되는 김민경도 <맛있는 녀석들> 스핀오프 콘텐츠로 유튜브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인물이다.

<가짜사나이>는 한국어 유튜브의 생태계를 넘어 방송 제작과 시청 문화, 플랫폼의 패러다임 변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뻔했다. 기존 바이럴 마케팅이나 방송 파급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열광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고, 안티와 부작용은 물론 숱한 패러디와 스타를 배출하며 활화산처럼 들끓었다. 자체제작 콘텐츠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와중에 카카오TV가 콘텐츠로 구매할 정도로 2020년 최고의 흥행 상품이라 꼽힐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원래 없던 일처럼 한 순간에 사라졌다.

<가짜사나이>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기존 방송 콘텐츠에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수위의 리얼리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MBC 병영체험 예능인 <진짜사나이>의 설정과 제목을 제작 여건과 노하우상 열화된 버전으로 패러디했음에도 새로운 시대의 콘텐츠로 떠오른 것은 기획의 참신함이나 어떤 기법 때문이 아니라 리얼한 상황을 그대로 담았다는 단 하나의 차이에 있었다. 지원자를 최대한 탈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해군 씰팀의 훈련 방식 그대로를 적용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큰 포부를 품고 온 지원자 대부분이 기절 직전의 극한 훈련을 받다가 중도 탈락됐다. <가짜사나이>는 다른 차원을 보여준 셈이다. 미래지향적이라거나 훌륭하단 뜻이 아니라 기존 방송에서 보지 못한 리얼리티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런데 <나는 살아있다>는 많은 부분 이 콘텐츠와 유튜브 생태계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핵심인 리얼리티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전사, 교관, 생존 훈련, 극한 이런 키워드와 상황들을 가져왔지만 훈련 대신 생존 기술을 배우는 캠프로 전환해 <진짜사나이> 여군 편보다도 소프트하고 기존에 TV에서 볼 수 있던 수위보다도 후퇴한 콘텐츠로 나타났다.

몸으로 하는 여러 훈련을 걷어내고 교관이 교육하는 생존 기술 익히기에 방점을 두면서 리얼리티가 딱히 발휘할 여지를 애초에 막아버렸다. 교관들의 적극적인 서포트 하에 순서대로 체험하고, 서로 박수로 격려하고 응원한다. 자막으로는 생존은 예능이 아니다 라고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극한 상황이나 훈련보다는 방송 콘텐츠 차원의 체험에 가깝다. 텍티컬 유니폼을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야전 천막에서 함께 잠을 자고, 가벼운 얼차려 맛 뵈기로 분위기를 내는 정도다. 완강기를 타면서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침수차량 탈출 훈련, 물 공포증 이겨내기 등의 체험을 하고 토마호크 바비큐를 함께 나눠 먹는다. 특수부대, 생존 등등 홍보했던 키워드나 <가짜사나이>, <은하캠핑> 등으로 기대했던 콘텐츠 수준과 한참 동떨어진 전형적인 방송 기획이다.

그러면서 이 여성 예능은 <가짜사나이>가 MBC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했음에도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 이유에서 멀어진다. 다시 말해 유튜브의 영향으로 기획됐지만, 정작 본 프로그램은 유명 유튜버 한 명이 참여하는 것 외에 철저하게 기존 방송의 작법과 한계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퇴보했다. 파이어스틱 사용법이나 건전지로 불 피우는 방법이나 '포기할 것인가 생존할 것인가' 등 긴장을 주조하는 방식은 10년 동안 SBS <정글의 법칙>에서 숱하게 봐온 장면들이다.

<가짜사나이>에 출연하는 유튜버들은 험한 꼴을 보여주게 될지라도 출연함으로써 유튜브 생태계 내에서 얻게 되는 반대급부가 명확했고, 이들이 끝까지 수료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의 출연진은 딱히 얻을 것이 없지만 최선을 다 할 거고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 협력해 극복해낼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예측가능한 '방송적'이라 기대를 저하시킨다. 극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본성과 본능은 고사하고, 연예인이란 명함을 놓고 군복을 입은 분위기조차 아니다.

이들이 영향을 받은 <가짜사나이>가 남긴 임팩트, 그리고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기존 방송보다도 한발 더 물러서서 조심스런 생존 체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는 것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기존 여성 예능 한계 극복 차원으로 봐도 별다른 이해나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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