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의 대표적 모범 사례, '비밀의 숲 2' [윤지혜의 슬로우톡]

윤지혜 칼럼 2020. 10. 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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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tvN ‘비밀의 숲 2’(연출 박현석, 극본 이수연)가 적지 않은 마니아들 및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검사와 경찰이 나와 그저 검사의 일을 하고 경찰의 일을 했을 뿐인데, 시즌 1에 이어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휘어 잡으며 시리즈물로서의 안정적인 위상마저 뽐내고 있다. 여러 성공 요인이 있겠다만, 여기서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시즌 1과 구별되는 시즌 2만의 특징으로, 탄탄한 여성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여성 서사다.

먼저 ‘비밀의 숲 2’에서 새로이 등장한 인물, 최빛(전혜진)을 살펴보자. 경찰서장에서 본청 정보부로 고속 승진을 이룬 최빛은 동기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나, 자리마다 그에 따르는 업무들을 해내는 능력이 상당하고 통찰력은 물론이고 맞닥뜨린 상황에 대처하는 힘 또한 좋아서 위아래로 많은 이들의 신임과 존경, 충성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건 최빛은 우리에게 굳이 ‘그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악착같이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야망을 가진 하나의 사람으로서 비추어진다. 어떤 일에도 쉽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최빛 특유의 단단한 표정과 주어진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모습 등이 그동안 우리에게 잘못 주입된 드마라 속 여성상을 깨끗하게 지우는 까닭이다.

최빛이 한여진(배두나)과 맞닥뜨리며 만들어내는 서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빛을 ‘그녀’로 만들기 때문이다. 홍일점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이 잘해주냐, 는 등의 질문만 받아온 여진에게,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 없이(실은 그렇지 않지만 여진이 보기에는) 그 자체로서 빛을 발하는 최빛의 존재는 오래 그 곁을 사수하며 닮아가고 싶은, 존경할 만한 상관이었다.

하지만 여진은 알지 못했다. 최빛에게 주어져 온 상황이나 조건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최빛으로 하여금 매번 ‘그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끌어들여져야 했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관과 신념에 위배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어쩌면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인 줄 알면서도 끌어주겠다며 내민 검은 손에 손을 잡혀야 했다.

“왜 스스로를 후려치세요. 그딴 손 안 잡았어도 단장님은 좋은 자리 가셨어요. 원하는 만큼 되셨을 거에요.”최빛도 몰랐을 테다. 수면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로서의 두 발은 보지 못한 채 마냥 우러러 보아주던 후배 여진과 맺게 된 혹은 맺고 만 유대감이, 애써 잃어버린 것이라 여겨온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결국 검은 손에 의해 생성된 욕심을 저지시키는 장치가 될 줄이야.


이 ‘유대감’이라 설명되는 최빛과 여진의 서사는, ‘비밀의 숲 2’가 지닌 현실 감각이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최빛이 실은 그러했고 차별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 같던 여진은 정작 끝까지 받아들이며 존경을 표할 대상으로 같은 여성인 최빛을 선택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였으나 실상은 그러했다는 데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여성이 겪어온 차별의 역사가 아직까지 사회 곳곳에 은근하게 묻어 있어, 아무리 어떤 젠더 갈등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지는 서사라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여전히 ‘열라 유치해’라는 한 마디 일갈을 내뱉으며 버틸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상황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하여 이들 사이엔 유대감이 형성되는데 이 위에 세워진 서사가 바로 한여진과 최빛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의 유대감이 서로를 밀접하게 연결시키긴 하나 ‘우리 편’이란 의미를 담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같은 여성이란 맥락을 넘어 어떤 신념과 가치관이 서로 통했다는 점에서 기인한 감정인 까닭에, 어느 한 쪽이 이 유대감을 흐트러뜨릴 만한 행동을 하거나 상황을 만들면 다른 한 쪽은 가차없이 바로미터로서의 역할을 한다. 덕분에 ‘비밀의 숲 2’의 여성 서사는 더욱 완성도 높은 모양새로 온전히 이야기에 스며 들 수 있었고.

공권력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이토록 잘 만들어진 여성 서사, 여성 캐릭터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 속에서 여성이 가지기 마련인, 상대 남성 캐릭터와 어떻게든 로맨스로 엮인다는 숙명도 피해 갔으며, 억지로 소리를 높여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주장하며 왜곡된 위화감을 형성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장르에서 처음으로 젠더에 국한되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서만 오롯이 존재한 경우로,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이 발휘되었다는 점에서 ‘비밀의 숲 2’가 이룩한 성과 중의 성과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tvN '비밀의 숲 2']

배두나 | 비밀의 숲2 | 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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