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자막 어긋한 '신서유기8' 통해 본 한글 파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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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빵빵 터졌다.
그런데 tvN 예능 <신서유기8> 이 보여준 이른바 '훈민정음 윷놀이'는 영어를 쓸 때마다 판 위에 놓은 말을 모두 뺀다는 그 설정 하나만으로 큰 웃음과 동시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보여줬다. 신서유기8>
<신서유기8> 이 '훈민정음 윷놀이'라는 어찌 보면 한글을 잘 쓰자는 취지가 담긴 놀이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다양한 신조어들이나 '말 줄이기'가 웃음을 주는 자막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 이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신서유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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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정덕현] 한 마디로 빵빵 터졌다. 평범한 윷놀이에 '훈민정음'이라는 콘셉트 하나를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tvN 예능 <신서유기8>이 보여준 이른바 '훈민정음 윷놀이'는 영어를 쓸 때마다 판 위에 놓은 말을 모두 뺀다는 그 설정 하나만으로 큰 웃음과 동시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연거푸 영어를 써서 애써 세운 말을 원점으로 돌린 이수근이 점점 말을 할 때마다 또박또박 끊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내뱉는 대목은 '훈민정음'이라는 장치가 만든 이 놀이의 우스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윷을 던지는 강호동에게 "우리의 모오든 운명은 열두살 너에게 달려있어. 만약 네가 도를 하잖아? 너 다 먹어."라고 말하는 이수근의 말이나, 잔뜩 부담을 안게 된 강호동이 "안 절거워"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툭 던진 말은 큰 웃음을 줬다.
결과도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다. 세 개의 말을 갖고 한 윷놀이에서 두 개의 말을 모두 내고 단 한 개의 말만 남겨둔 은지원, 송민호, 규현팀은 세 개의 말을 하나도 판 위에 올려놓지 못했던 강호동, 이수근, 피오팀의 맹추격에 결국 패했다. 마지막 순간 연거푸 모가 나오는 등 운이 좋았던 피오팀과 정반대로 규현팀은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빵빵 터진 '훈민정음 윷놀이'는 우리가 얼마나 일상 속에서 영어를 섞어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강호동과 이수근은 습관적으로 '오케이'를 연발했고 '팀', '백', 'MC', '파이팅' 등등 저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영어로 연달아 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영어 말고도 <신서유기8>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을 주기 위해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있는 '말 줄이기'나 신조어 만들기를 끊임없이 자막으로 보여줬다. 강호동이 했던 "안 절거워" 같은 말의 자막이야 경상도 어투를 웃음의 포인트로 잡아넣으려 한 것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강호동이 던지기만 하면 개가 나오는 걸 줄여서 '강던개'라고 쓰거나, 뒷도를 백도라고 얘기했다고 '강백도'라고 자막을 쓰며, 은지원이 "I'll sue you'라고 한 말을 강호동이 못 알아듣는다고 하자 이수근이 "수육"이라고 하자 윷을 던질 때 "할 수육 있다"라고 자막을 붙이는 방식들은 현 예능의 웃음 코드와 한글 파괴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줬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정체불명 신조어와 저속한 표현, 불필요한 외국어 혼용 표현 등을 남발해 한글 파괴에 앞장섰던 7개 방송사에 대해 '주의'를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거기서 거론된 프로그램들은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MBC <놀면 뭐하니?>, SBS <박장대소>, 채널A <도시어부2>, JTBC <장르만 코미디>, tvN <놀라운 토요일> 등이다.
하지만 방심위의 이런 결정이 나올 때마다 이것을 그저 예능의 웃음을 주기 위한 한 코드로 봐야할지 아니면 한글 파괴로 봐야할 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신서유기8>이 '훈민정음 윷놀이'라는 어찌 보면 한글을 잘 쓰자는 취지가 담긴 놀이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다양한 신조어들이나 '말 줄이기'가 웃음을 주는 자막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 이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그저 한 번 웃고 넘어가는 정도의 예능 코드로 봐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일상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한글 파괴로 봐야할까. 취지와 결과가 딜레마를 보인 '훈민정음 윷놀이'는 빵빵 터졌으면서도 우리가 한번 고민해봐야 할 화두를 던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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