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말을 하는..우리가 아는 (줄 아는) 유아인

안진용 기자 2020. 10. 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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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를 가능하게 한 현실이 대박이죠.”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의 개봉을 앞두고 나눈 인터뷰에서 주연 배우 유아인은 이 같은 소감을 전했다. 대사도 없이, 무겁고 불편하기까지 한 메시지를 가진 이 영화가 제작된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된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소리도 없이’의 순 제작비는 13억 원, 손익분기점은 70만 명이다.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리 작은 영화로 보이지 않는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닷새 만에 24만 관객을 모은 것도 저예산 영화가 누리긴 힘든 호사다. 이미 제작비 3분의 1을 회수했고, 향후 인터넷TV(IPTV) 매출까지 고려하면 손익분기점 도달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렇다면 이를 현실에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단연 유아인이다. 그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선택하면서 투자와 배급이 가능해졌고,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전형적으로 다크(dark)하고 무거운 작품이죠. 감독님을 만나 뵙고,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 범상치 않은 스타일을 느꼈어요. 아주 진지하고, 독특한 지점이 있었죠. 시나리오로 접했을 때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왔어요. 신인 감독님이지만 아주 노련하고 현명하게 영화를 마무리지은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초점은 유아인의 ‘몸’으로 향했다. 그가 체중 15kg을 늘렸다는 점에서 ‘연기 투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소리도 없이’를 본 후 깨닫게 된다. 그의 증량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지, 본질이 아니었음을.

진짜는 그의 연기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온몸으로 감정을 웅변하는 그의 솜씨는 빼어났다. 그 옛날, 무성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배우가 잘 표현한다면, 대사는 없어도 무방했다.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를 통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왜 그가 이 영화를 택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도전장’이라 칭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도전장’으로 느껴졌어요. 대사가 없지만 이를 표현할 때 내 몸이 어떻게 보여질까? 저는 새로운 움직임이 느껴질 때 반갑고 재미있어요. 원래 영화는 빛과 소리를 다루는데, 소리라는 개념을 없앤다는 것이 상당히 도발적이었죠. 게다가 신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선언적’이라고 느꼈어요.”

그에게 이 영화를 맞닥뜨리며 느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태인은 말을 못할까?” 영화를 보더라도 태인이 날 때부터 말을 못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잘 듣는다. 들을 수 없어 말을 배우지 못해 언어 장애를 가진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할 말 다한다. 입이 아닌 몸으로.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말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스로 말을 안 하는 것을 선택한 거죠. 누구나 표현에 대한 의지가 사라질 때가 있어요. 상처나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심각한 수준으로 표현의 의지를 상실한 태인처럼 되지는 않아요. 감독님도 ‘말하기를 포기한 인물 아닐까요’라는 정도만 얘기하셨죠. 결국 말해도 들어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게 된 것 아닐까요?”

‘소리도 없이’ 마지막 장면은 꽤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뜻하지 않게 유괴범으로 몰리게 된 태인이 달리고 또 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그는 애지중지하던 재킷도 벗어던진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악인의 범주에 포함된 태인의 달리기는, 꽤 슬프다. 그에게 감정이 이입되게 만들기 충분하다. 오롯이 유아인의 힘이다.

“저는 태인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악인이 아니죠. 다만 반성이 부족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인물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 행위 자체는 악행일 수 있지만 악의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려 노력했죠. 기대 없이 살아오던 인물이 기대를 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금 그 기대를 상실하면서 느끼는 현실의 막막함을 입고 있던 옷을 던지는 것으로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요. 물론 클리셰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걱정했는데, 영화 전체로 봤을 때는 효과적으로 만들어진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 쓰여있지는 않았고, 현장에서 만들어갔죠.”

영화 산업을 취재하며, 인터뷰 자리에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여러 번 만나 말을 섞었다. 13년 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가 처음이었다. 당시에도 유아인은 도발적이었다. ‘신인다움’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 그는 ‘신인’이 아니라 당당한 ‘주연배우’였다. 하지만 그 당당함의 끝에는 적잖은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불안감이 지난 13년 동안 유아인은 한시도 고여있지 않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대중이, 언론이 그를 하나로 규정하려 할 때면 그는 번번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개구리 습성이라기보다는, ‘변화’를 강요받는 배우의 숙명을 아주 잘 체득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읽혔다. 그래서일까? 대중과 언론이 기억하는 그의 작품과 정작 유아인이 무게를 싣고 싶었던 작품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제 작품들 중에서 주목받았던 역할, 박수와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게 제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방향성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베테랑’도 저는 ‘번외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그 영화가 제 대표작이 되기도 하죠. 저는 제 젊은 날의 한계까지 저를 끌고 간 이후 다시금 제 본질로 돌아가는 것 같은 단계를 밟고 있어요. 하나가 전체가 되는 것 같지만, 그 수많은 퍼즐이 모여서 하나를 만든다는 큰 계획보다는, 순간 순간 반응하며 나아가고 있죠. 그게 제가 성장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죠.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함께 나아가고 싶은 의지도 있고요. 하지만 요즘은 어지간한 변화는 변화로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서 괴리가 존재해요.”

유아인은 또래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결이 다르다. 아무리 멋진 수식어일지언정, 그는 그 하나로 규정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선뜻 그에게 칭찬을 던졌다가 의외의 반응에 부딪혀 머쓱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유아인의 멋이자 틀이다. 하지만 그 역시 주변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는 어려워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스타일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 삶이 불편하다고 느끼곤 해요. 사람들이 불편한 걸 느끼며 제가 편해지려 하는 반면,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제가 불편해지기도 하죠. 그래도 그런 고민 속에서 대등한 관계망을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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