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연주'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런 사망

윤태호 2020. 10. 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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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역사에 길이 남을 기타리스트로 거물 밴드 반 헤일런(Van Halen)을 이끈 에디 반 헤일런이 10월 6일 향년 65세로 사망했다.

2004년 밴드로 복귀한 새미를 앞세워 세 개의 신곡을 수록한 베스트 앨범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고 투어를 펼쳤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에디는 극도로 불안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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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65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윤태호 기자]

록 역사에 길이 남을 기타리스트로 거물 밴드 반 헤일런(Van Halen)을 이끈 에디 반 헤일런이 10월 6일 향년 65세로 사망했다.

에디의 아들 볼프강 반 헤일런은 "믿기지 않지만, 기나긴 암 투병으로 고생한 아버지를 잃었다"며 깊은 상실감을 드러냈다. 밴드의 두 번째 보컬리스트로 활약한 새미 헤이거(Sammy Hagar)는 "가슴이 아프고 말문이 막힌다"며 애도를 표했다. 새미는 지난 5월 인터뷰에서 "에디나 알렉스가 죽지 않는 한 밴드는 끝나지 않는다"며 재회를 희망했었다.
 
 에디 반 헤일런
ⓒ Wolfgang Van Halen
 
40여 년간 열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반 헤일런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6천만 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했고, 200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에디의 양손 해머링 주법은 많은 연주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82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히트곡 'Beat It' 기타 솔로로 더 널리 이름을 알린 에디는 밴드의 여섯 번째 앨범 < 1984 >로 전성기를 맞았다.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Jump'와 함께 밴드의 인기는 수직상승했고, 지난 앨범들의 판매량도 급증했다. 에디의 스튜디오 '5150'에서 작업한 이 앨범은 16트랙 콘솔 하나로 녹음과 믹싱을 마쳤다.

이후 밴드는 두 번의 보컬리스트 교체를 겪었지만, 명성을 이어갔다. 두 번째 보컬리스트 새미와 함께 발표한 네 장의 앨범은 모두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1998년 세 번째 보컬리스트 게리 셰론(Gary Cherone)을 영입해 발표한 < Van Halen III >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앨범이었으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밴드는 이듬해부터 신곡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소속사와의 문제가 있었으나 더 심각한 건 40대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나빠진 에디의 건강이었다. 99년 고관절 교체 수술을 받은 에디는 2000년부터 설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2살부터 시작한 음주와 흡연은 그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에디는 담배 한 보루를 하루 만에 다 피우기도 했던 유명한 골초였다.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은 결국 에디를 무너뜨렸다. 2004년 밴드로 복귀한 새미를 앞세워 세 개의 신곡을 수록한 베스트 앨범 < The Best Of Both Worlds >를 발표하고 투어를 펼쳤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에디는 극도로 불안정했다. 결국 새미는 다시 개인 활동을 시작하며 밴드와 결별했다.

2007년 밴드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을 때 에디는 재활원에 있었다. 에디는 어렵게 술을 끊었고 밴드는 원년 보컬리스트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와 재결합해 2008년까지 투어를 이어갔다. 건강 문제로 계속 늦어졌던 신곡 작업은 2010년부터 재개했다.

2012년에 발표한 < A Different Kind Of Truth >는 무려 14년만의 새 앨범이었다. 무리한 시도 없이 80년대 사운드를 지향했으며 거의 모든 곡이 활기찼다. 이후 또 다른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던 에디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에디와 절친했던 퀸의 브라이언 메이(Brian May)는 순수한 소년 같았던 오랜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는 에디를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눈부신 기타리스트'라고 회상하며 "함께 했던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고 밝혔다.

1980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에디는 "나는 음계나 음악 이론을 잘 모르며 희로애락을 담아 연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늘 밝은 웃음과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연주는 큰 행복과 즐거움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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