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숲2' 마지막에 등장한 이창준의 독백이 준 울림

이준석 입력 2020. 10. 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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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비밀의 숲2> 종영이 남긴 <죄와 벌> 의 담론

[이준석 기자]

▲ 드라마 '비밀의숲2'의 엔딩 씬 춘천지검 원주 지청으로 복귀한 황시목 검사의 미소 장면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 tvN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2> 최종회(16회, 4일 방송)가 9.4%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을 기록하며 6.6%(시즌1 16회)로 종영한 전편의 인기를 넘어섰다.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숨 막히는 연기, 박진감을 더하는 연출이 높은 시청률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빛나게 한 숨은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그것은 드라마 전반에 숨어 있었던 정의, 진리, 선, 법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통찰이다.

통영익사사고를 시작으로 검경수사권 조정과 세곡지구대 경찰 사망 사건을 넘어 박광수 변호사 사망사건, 서동재 검사 실종사건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비밀의 숲2> 8회에서 인용된 한 러시아 고전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드라마 전체를 흐르는 이런 통찰의 맥을 살펴볼 수 있다.

8회에서 황시목(조승우) 검사는 부하 경찰 살해와 서동재(이준혁) 검사 납치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백중기(정승길) 경사를 심문한다. 심문 중에 황 검사는  법철학의 고전으로 자주 인용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언급한다.

소설에서 가난한 대학생 라스꼴리니코프는 고집 세고 평판이 좋지 않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그는 노파를 죽이고 훔친 돈으로 본인의 학비를 보태고, 아름답고 젊은 누이 두냐가 가난 때문에 45세의 늙은 공무원에게 돈에 팔려 시집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쓸모없고 평판 나쁜 노파 한 명을 살해하는 악의 크기보다 그의 죽음으로 얻게 될 선의 크기가 더 크다고 라스꼴리니코프는 생각했다.
 
▲ 백중기 심문 중인 황시목 백중기 경사의 심문 중에 황시목 검사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거론한다.
ⓒ tvN
 
이런 범행 동기는 선을 크기로 환산하는 공리주의 철학을 배경으로 한다. 어떤 선택으로 저질러지는 악보다 취하는 이익과 쾌락이 크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곧 선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백중기를 범인으로 본 황시목은 그의 범행 동기에 이런 가치 판단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드라마는 선과 정의에 관해 <죄와 벌>이 다룬 이 주제를 전반에 배치한다. 15회에서 우태하(최무성) 부장 검사와 황시목의 대화에서도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우 부장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한 거대 로펌이 제공하는 부적절한 접대 자리에 참석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접대 주최자 박광수 변호사가 지병으로 급사한다. 우 부장은 자신이 부적절한 접대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박 변호사의 사체를 유기한다.

이런 자신의 범행을 집요하게 밝혀내는 황시목을 향해 우 부장은 여러 이해타산의 실례를 들어가며 황시목을 회유한다. 그러나 정의를 양적 계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황시목은 우 부장의 회유에 화답하지 않는다. 분노와 절망에 싸인 우 부장은 황시목을 향해 "그 상황에서는 백이면 백 다 그렇게 해. 누구나 그런다고!"라며 고함친다.
 
▲ 우태하와 논쟁 중인 황시목 우태하 부장 검사의 범행을 파헤치는 황시목과 우 부장의 갈등 장면.
ⓒ tvN
 
이에 황시목 검사는 "아니요. 부장님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뒤에 숨어서는 안 되는"이라며 차분히 자신의 신념을 유지한다. 정의가 양적 계산의 문제로 둔갑하고 이윤과 실리로 윤색될 때, 인간은 원칙적 기준에서 어긋난 선택을 하게 되며 자신의 본분마저 망각한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비밀의 숲> 작가가 경이로운 이유는 검찰과 경찰의 조직문화에 관한 세밀한 묘사와 사건 간 개연성의 치밀한 배열 때문만은 아니다. 정의라는 가치를 놓고 드라마의 전편을 도도하게 흐르는 철학적 대결의 흐름이 가볍지 않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는 이해타산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계산되지 않는 보편적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의와 진리에 더 가깝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보편적 정의를 찾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최종회를 마무리하며 울리는 <비밀의 숲> 시즌1 이창준(유재명)의 독백은 이런 생각의 흐름을 크게 울린다.

"진리를 찾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그러나 드라마 전개 중 한 가지 현실과 괴리되는 바가 있다. 드라마 중에서 이처럼 부분적인 정의나마 구현될 수 있는 것은 드라마 속 언론이 그나마 제 기능을 수행하는 건강한 집단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과 사건에 우리 사회 현실 언론을 배치한다면 이 드라마는 최종회를 방영할 수 없거나, 6화 이내로 매우 찝찝한 결말을 남긴 채 종영되지는 않았을까?
 
▲ 한여진 경사와 황시목 사건이 일단락된 후 각자의 자리로 복귀전 송별의 만남을 갖는 한여진과 황시목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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