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최적화' 2020판 뮬란이 잃어버린 것들

2020. 9.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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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뮬란>
유역비의 홍콩 시위 비난 논란 속
'충-용-진-효' 앞세운 이야기 구조
동양사상 설교 넘치고 유머 사라져
몰입 방해하는 영화적 허술함 연속
풍광, 미술, 의상이 그나마 볼거리
정체성은 뮬란 아닌 디즈니의 숙제
2010년 제작 선언 뒤 10년 만에 탄생한 실사판 <뮬란>. 1998년 애니메이션 <뮬란> 상영 당시 논란이 됐던 캐릭터를 재조정하고, ‘젠더 감수성’이라는 시대적 트렌드를 이야기에 입혔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주연배우 유역비(류이페이)의 홍콩 시위 관련 발언, 소수민족 박해의 현장인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촬영과 그 지역 당국에 대한 촬영협조 감사 코멘트 등으로 공개 전부터 영화 외적 구설에 올랐던 디즈니의 새 라이브액션 영화 <뮬란>. 하지만 언제나처럼 취급 영화의 관람성에 대한 감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 칼럼의 주요 관심사는, 1998년 애니메이션 <뮬란>과 2020년 라이브액션 <뮬란>의 차이점, 그리고 그것이 관람성에 미치는 영향이겠다.

차이가 있는가? 있다. 큰가? 크다.

________________ 1998 <뮬란> 대 2020 <뮬란>

<라이온 킹>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 꼭 라이브액션이라 하여 애니메이션과 자동적으로 다른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겠다만, 2020년의 라이브액션 <뮬란>은 거의 별개의 영화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달라져 있다. 이 차이점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사라진 캐릭터들과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이다.

일단 사라진 캐릭터. 뮤지컬 콘셉트를 포기한 것을 뺀다면, 2020 <뮬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나 적색 미니 용(龍) ‘무슈’ 캐릭터의 탈락이겠다. 잘 아시다시피 무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알게 모르게 장구하고도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 보좌형 개그 전담 캐릭터인데, 2020 <뮬란>은 과감하게도 이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무슈를 대신할 새로운 개그 전담 캐릭터가 제공되고 있는가, 하면 놀랍게도 그렇지 않아, 2020 <뮬란>에서는 주인공을 보필하면서 개그와 인간미의 주력을 이루는 캐릭터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아, 물론 ‘주인공 보필’이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새로이 등장한 ‘봉황’이 그 역할을 넘겨받았다. 무슈가 맡았던 조상님 직무대행 역할을 승계한 이 봉황은, 하지만, 유사시마다 주인공의 주위에 출몰 및 배회하며 ‘운명의 지피에스(GPS)’나 ‘각성 상태 인디케이터’ 같은 추상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일종의 동물형 자막에 가까운 존재다. 또한 ‘개그 전담’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애니 버전에도 등장하는 ‘중매쟁이’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이 역할에는 <와호장룡>에서 ‘파란여우’ 역으로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정패패(정페이페이)가 캐스팅되어 있다), 그녀의 개그 및 출연 빈도는 거의 ‘눈 씻고’의 수준으로 주의 기울여 봐야만 파악되는 약소한 것이다. 즉 2020 <뮬란>은 디즈니 라이브액션(및 애니메이션)이 보유한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하고도 검증된 절대병기 중 하나인 유머라는 무기를 포기하고 있다시피 하다.

주목할 만한 인물은 유연족 보리 칸 옆에 등장하는 마녀 셴냥(공리)이다. 그는 세상의 차별에 가로막힌 이들의 모든 울분을 대변하겠다는 듯 결기를 뿜어낸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① 대체 무엇을 위해? 이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2020 <뮬란>에서 사라진 또 하나의 주요 캐릭터를 짚자. 그것은 뮬란의 상대 남성 캐릭터였던 부대 지휘관 ‘리샹’ 캐릭터다. 그렇다면, 뭔가? 라이브액션 <뮬란>은, 개그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한 축인 로맨스마저도 포기한 것인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로맨스는 1998 <뮬란>에서도 사실상 반쯤 포기되어 있었더랬다. 뭔가 있었다 하더라도, 뮬란이 여성임이 밝혀지는 시점은 영화 중반쯤에 이른 시점이므로 사실상 본격 로맨스로 발전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상 퀴어적 변두리를 애매하게 스리슬슬 건드리며 가는 방법 정도일 텐데, 다름도 아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곡예를 할 가능성이란 마른하늘에 쌍봉황 나타날 가능성보다 낮음은 자명하겠고, 아무튼.

리샹 캐릭터는 2020 <뮬란>에서 두 명의 남성 캐릭터로 세포분열되었다. 하나는 뮬란이 속한 부대의 지휘관으로서의 견자단(전쯔단)이 연기하고 있는 사령관 ‘텅 장군’ 캐릭터, 그리고 또 하나는 뮬란과 전우애 및 로맨스(를 닮은 듯 아닌 듯한 뭔가)를 나누는 상대남으로서의 뮬란과 동일한 병(兵)인 ‘홍후이’(요슨 안) 캐릭터다. 그런데 이 영화는 ② 대체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이 세포분열의 연장선상에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2020 <뮬란>에서 새롭게 등장했음과 동시에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가 있다. 그것은 다름도 아닌 공리가 연기하는 ‘마녀’ 캐릭터다. 백발마녀와 말레피센트를 합성해놓은 듯한 분위기에 수시로 매로 변신까지 해주고 있는 이 캐릭터는, 1998 <뮬란>에서 악의 축인 ‘훈족’의 가이드 비슷한 노릇을 했던 매 캐릭터를 전격 주연급으로 승진시킨 결과라 할 것인데, 아무튼 공리(궁리)라는 대형 배우가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이 캐릭터의 중요성은 능히 짐작 가능하다. 그런데 ③ 대체 어떠한 중요성?

________________ 캐릭터의 변화, 왜?

위 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로 요약정리해주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시장 최적화’다. 일단 무슈 캐릭터는, 별다른 변명도 없이 용에게 이구아나에 준하는 사이즈를 부여한 경솔함과 에디 머피의 입심 개그(이는 3년 뒤 디즈니의 경쟁사 드림웍스의 <슈렉>에서 결국 진가를 드러낸다)의 촐싹맞음/방정맞음/경박스러움 때문에, 1998년 <뮬란> 개봉 당시 중국 관객들의 반감을 산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받았더랬다. 하여, 무슈는 자연스럽게 탈락. 여기에, 캐릭터들의 면면이 지나치게 유에스에이적 기름기(그리고 경박함)를 머금고 있었다는 점 역시 1998년 당시 미국에 비해 상당히 저조했던 <뮬란>의 중국 내 흥행 성적의 원인으로 지적됐었다. 일본식 투구나 신사의 도리이를 연상시키는 지형지물 등을 등장시키는 등 중국과 일본을 혼동/혼합했던 고증 오류와 더불어 말이다. 바로 이것이 2020 <뮬란>에서 무슈 퇴출과 동시에 개그 및 유머를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깔끔히 제거해버리는 진지-심각화 조치가 단행된 배경이겠다.

1998년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뮬란과 동료들의 연대와 우정은 전사로 탄생할 뮬란의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 축소되고 제거됐다. 그 자리를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액션이 대신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 유머가 빠져나간 빈자리는, 충(忠), 용(勇), 진(真), 그리고 효(孝) 등 네 개의 ‘절대한자’를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와 진지하기 그지없는 동양사상 해설/설교로 대신 채워진다. 도입부부터 제시된 절대한자 네 글자 ‘충-용-진-효’를 순서대로 한 공정씩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동양사상에 대한 고증이란, 예컨대 ‘효’를 ‘가족에 대한 헌신’(devotion to family) 정도로 해석/이해/묘사하고 있는 수준인바, 이 시나리오가 한국 관객들에게 안길 감흥이 어떠할지에 대한 짐작은 독자 여러분의 상식과 추론에 기반한 짐작에 맡겨도 충분할 것이리.

한편 이 영화의 또 다른 큰 변화인 리샹 캐릭터의 세포분열 및 마녀 캐릭터 도입은, ‘중국시장에 대한 고려’와 함께 <뮬란> 리모델링의 또 하나의 핵심 키워드라 할 ‘미투 현상의 반영’이 낳은 결과이겠다. 여기에는 리샹이 뮬란 소속부대의 지휘관이기 때문에 ‘직장상사’인 그와의 로맨스는 미투적 관점에서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고려가 깔려 있는데, 애초에 <뮬란>에 딱히 로맨스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있는지부터가 헷갈린다는 점에서 이는 다소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만, 어차피 이 변화에서의 핵심은 그다지 섭섭하지조차 않은 리샹의 부재보다는 마녀 캐릭터의 새로운 도입에 있겠다.

일단 이 마녀 캐릭터가 사막의 마녀로 떠돌면서 ‘유연족’(이들은 내내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묘사된 우르크하이를 연상시킨다)을 도와 한족 왕조의 절멸을 꾀하게 된 사연은 과연, 여성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각종 부당한 편견과 차별에 가로막힌 모든 사람들의 울분을 대변할 만한 것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물론 마녀는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갑작스럽게 충 그 자체라 할 체제 사수적 결단을 선보임으로써 보는 이들을 아연하게 한다만, 나름 그 장면은 ‘분노를 이겨내는 품위’로 읽힐 여지 역시 가지고 있다 할 것이므로 통과.

________________ 이야기는 기계적, 설교는 공허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견자단은 뮬란이 속한 부대의 지휘관인 ‘텅 장군’을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문제는 그 장면을 비롯해 이 이야기의 흐름은 기계적이고, 과정은 뜬금없으며, 설교는 공허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에 앞서,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뚫린 구멍이 너무 크고도 많다는 것이다. 마녀는 황제 최측근의 몸에까지 빙의해 들어가는 능력과 수고를 보여주면서도, 그 최측근을 이용해 황제를 처치하는 간단한 조치 하나 취하지 않는다. 유연족 궁수들은 혈혈단신 서 있는 황제의 머리 위에서 그를 단체 저격할 기회를 포착하나, 기껏 밧줄 달린 화살을 날려 누에고치로 만들 뿐이다. 그렇게 밧줄 누에고치 된 채 공중에 당당당 매달린 황제를 눈앞에 둔 유연족 대장(=수석 악의 축)은 아무 영양가 없는 수다만 늘어놓을 뿐 칼끝 하나 대지 않는다, 등등, 굳이 애쓰지 않아도 물 반 고기 반 걸려 나오는 이 영화의 허술함들은 고산지대 특유의 풍광과 하늘, 눈을 포식시켜주는 미술과 의상, 채도 높은 컬러팔레트가 돋보이는 촬영, 그리고 동양인 배우들로만 구성된 캐스팅 등등의 정성과 특장점들을 모조리 무색하게 하고 있다. 물론 그 장점들 역시 <와호장룡>부터 <자객 섭은낭>까지 다른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익히 (더 높은 경지로) 본 것이지만 말이다.

아, 이것이 그곳까지 가서 그 평지풍파를 일으켜야 했던 이유란 말인가. 정작 이 영화가 그리도 의식 또 의식했던 중국의 대다수 언론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거론 자체를 피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아무래도 다수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앞에서 진실해야 할 존재는 뮬란보다는 디즈니가 아닐까 싶다.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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