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오취리 사태, 억울한 역풍? 경솔함에 대한 대가 치른 것 [DA:이슈]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입력 2020. 8.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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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이슈] 샘 오취리 사태, 억울한 역풍? 경솔함에 대한 대가 치른 것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졸업을 앞둔 소년들의 장난에 재를 뿌렸다. 머지않아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게 될 소년들을 한순간에 전 세계적인 인종 차별 주의자로 만들 뻔 했다. 이 부주의함만으로도 샘 오취리는 역풍을 맞은 것이 아니라 경솔함에 대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샘 오취리는 의정부고등학교(약칭 의정부고) 졸업 사진 중 ‘관짝소년단’ 패러디를 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 “참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퍼요. 웃기지 않습니다!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문화를 따라하는 것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라고 말해 논란을 만들었다.

이 같은 글이 게시되자 온라인상은 즉각 들끓었다. 의정부고 소년들의 패러디에 인종 차별 의도가 없어 보인다는 의견과 함께 의도가 어쨌든 블랙 페이스(Blackface, 타 인종이 흑인 분장을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를 한 것이니만큼 샘 오취리의 비판이 정당하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러나 문제는 샘 오취리가 한글로 작성한 글과 영어로 작성한 글의 내용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영어로 작성된 글에서는 educate(가르치다)과 ignorance(무지)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해시태그에도 K-POP 관련 안 좋은 이슈를 알릴 때 사용하는 ‘teakpop’을 삽입했다. 한글로는 학생들을 질타하고, 영어로는 인종 차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셈이다.

물론 샘 오취리의 말처럼 인종차별은 당연히 금기시 되어야 마땅하다. 그가 앞서 언급한 ‘흑형’이라는 단어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샘 오취리의 이 발언에 대해 ‘과민반응’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못해도 ‘인종차별’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에 의해 입을 다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관짝소년단’ 문제는 조금 다르다. 그 어떤 금기시 되어야 하는 상황도 실행한 사람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적어도 그런 의도를 조금이라도 내포하고 있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먼저다.

샘 오취리의 글은 전 세계적인 밈이 된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 한 소년들이 인종 차별의 의도를 가진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고 확정한 채로 글을 썼다.

더욱이 그는 이미 국내 여러 방송에서 인지도를 얻은 유명인이다. 그런 그가 의정부고 ‘관짝 소년단’ 패러디 멤버들의 얼굴을 여과 없이 실었다. 여기서 다시 그의 의도가 궁금하다. 과연 그는 블랙 페이스에 흥분했던 것인가 아니면 ‘관짝 소년단’ 패러디 학생들을 ‘박제’하고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역시 샘 오취리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섣불리 판단할 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의도를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을 매장 시킬 수도 있는 글을 두고 우리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라 부르고 의견이 아닌 억지라고 부른다.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비난 역시 인종차별만큼이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가운데 샘 오취리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 대체적으로 “몰랐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내용이다.

그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내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 나는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 그 부분에서 잘못했다”며 논란이 된 해시태그에 대해서도 “한국Kpop 대해서 안좋은 얘기를 하는 줄 몰랐다. 알았으면 이 해시태그를 전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고 해명했다.

샘 오취리 조차 사과문에서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표현한다. 의정부고 소년들조차 그럴 의도(인종차별)가 아니었고, 단순하게 생각(졸업사진의 추억을 남기자)했을 것이다. 샘 오취리가 맞은 역풍은 역풍이 아니다. 역풍이라는 단어는 옳은 의도와 옳은 말을 했는데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직면했을 때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현재 처한 상황을 경솔함에 따른 대가라고 불러야 한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다문화 시대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논의를 차단시킨다고 우려한다. 당연히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하고 다문화 시대를 맞아 관련 논의는 계속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 논의 과정에 졸업 사진을 찍는 소년들이 아닌 밤 중에 홍두깨를 맞아야 하는 이유가 될까.

뿐만 아니라 이번 샘 오취리를 둘러싼 논란은 ‘남의 나라에 와서 인종차별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편협적 사고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불분명한 상황을 두고 인종차별로 매도한 것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이 사태 전반을 ‘과도한 민족주의’, ‘한국인의 지나친 폐쇄성’ 탓으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다. 우리에게 앞서 언급한 그런 모습이 완전히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인종차별금지 등은 늘 이런 요소들을 부수고 제치며 진일보 해왔다. 인종차별이라는 주제가 고작 일부 누리꾼들의 배설물 같은 감정 소모에 주눅 들 정도의 이슈로 보는 것 자체가 심각한 또 다른 차별 아닐까.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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