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석이 쏜 김구라 캐릭터 '명과 암' [이슈와치]

박은해 2020. 7. 31.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엔 박은해 기자]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초대 손님이 말을 할 때 본인 입맛에 안 맞으면 등을 돌린 채 인상을 쓰고 앉아 있다. 뭐 자신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참 배려 없는 자세다. 그냥 자기 캐릭터 유지하려는 행위."

7월 29일 개그맨 남희석은 김구라의 방송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무려 2년 이상 고민하고 쓴 글이라고 했다. 7월 30일에는 "라스 나갔다 밤에 자존감 무너져 나 찾아온 후배들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심"이라고 김구라를 추가 비판했다.

남희석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김구라의 방송 태도 뿐 아니라 캐릭터성에 대한 갑론을박으로도 번졌다. '무례한 언행을 예능 캐릭터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문제 삼아야 하는가'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무례함' '속물주의' 여기다 시사 문제에 해박한 지적인 면모까지 더하면 김구라 캐릭터를 요약하는 키워드가 될까. 그는 방송에서 연예인, 일반인 가리지 않고 수익이 얼마인지, 유형·무형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집요하게 캐묻는다. 부모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집안 내 재력가나 유명인 존재 여부도 단골 질문이다.

궁금한데 속물 소리를 들을까 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을 망설임 없이 묻는 김구라를 두고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한 편으로는 지나치게 무례하고 거북하다는 평가도 꾸준하다. '호불호'라는 말을 인간화하면 김구라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온도 차는 극명하다.

타인의 역린을 아무렇지 않게 건들고, 시종일관 뚱한 태도로 방송에 임하는 김구라 캐릭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버해서 감정을 연기하지도 않고, 입에 발린 말 할 줄도 모르는 그의 모습은 솔직함과 통쾌함이라는 말로 포장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 MBC '라디오스타'가 13년째 이어지면서, 그가 명실상부 대한민국 예능 계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게 되자 김구라가 지닌 문제점은 여러 방면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못한다는 애교를 기어이 시켜 카라 강지영의 눈물을 터뜨리게 한 사건은 이미 유명하고, 김생민의 절약하는 습관에 대해 대놓고 무시한 일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까지 했다. 이 밖에도 김구라는 격투기 선수 송가연에게 정체성에 관한 민감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해 비판을 받았다. 또 남희석이 지적한 등 돌리고 앉는 자세, 게스트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삿대질을 하는 방송 태도 등은 여러 번 논란이 됐다.

그런 김구라에게 대선배 이경규는 "사적으로 나눈 대화도 방송에서 다 얘기해버려 조심해야 한다. 선후배도 없다"라고 쓴소리를 했고, 최양락 역시 "누구나 인신공격을 하면 웃는 게 당연하지만, 당하는 사람까지 웃어야 진짜 개그"라고 충고한 적 있다.

김구라는 여전히 '잘' 나간다. TV 방송이 더는 유행을 선도하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른 메인 MC들보다 앞서 발 빠르게 유튜브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의 원맨쇼인 웹예능 '구라철'은 KBS 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 독립한 후 KBS '개그콘서트' 폐지, 연예인 행사 출연료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구라철'은 무례하더라도 궁금한 건 모두 묻는 그의 캐릭터를 십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김구라 그 자체라는 평을 받는다.

그가 예능계에서 구축한 위치를 대체할 인물도 없어 보인다. 염세적이고 냉철한 태도는 얼핏 서장훈과 닮았지만 결이 다르다. 버럭하고 호통치는 캐릭터는 박명수와 강호동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들이 오버스럽게 분노의 감정을 연기하는 거라면 김구라는 '정말 화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표정을 구긴다.

박명수의 호통과 강호동의 버럭에 웃던 이들도 김구라의 차가운 눈초리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 버린다. 정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능인이 김구라 외에 흔치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구라는 지금까지 잘 나갔고 앞으로도 아마 잘나갈 거다. 이미 공고한 캐릭터를 구축한 그에게 방송 태도 논란은 작은 타격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례한 방송 태도로 비판을 받는 것보다 고유의 캐릭터를 잃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이 더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구라는 과거 인터넷방송에서 일삼았던 저질 발언을 공개 사과하고 반성한 후에야 TV 방송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막말해서 죄송하다고, 상처 줘서 미안하다 연신 고개를 숙였던 사람이 또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상처입힌다. 욕설과 성희롱급 막말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일까. 때로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육두문자보다 더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김구라는 그간 방송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노출해왔다.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빠, 공황장애에 걸리면서까지 아내 빚을 갚은 헌신적인 남편. 의도해서 만든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셀링포인트는 제법 잘 먹혔다. 괴팍하고 인간미 없다는 기존 이미지를 희석하기 충분했다.

김구라는 꽤 능력 있는 예능인이고, 여러모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꾸준한 수요도 있다. 그렇지만 막말하는 캐릭터성과 인간미를 모두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고 싶다면 적어도 좋은 사람인 척은 하면 안 된다. 누군가는 방송인 김구라와 인간 김구라를 분리해 바라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방송에서 개인사를 자주, 꾸준히 노출해온 것은 정작 김구라 자신이다. 타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정도로 독설을 날리던 사람이 좋은 아빠, 보살 남편이라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사람은 원래 입체적인 존재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방송에서 그의 극과 극 모습을 동시에 보고 싶지는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진=MBC '라디오스타' 웹예능 '구라철' 방송화면 캡처)

뉴스엔 박은해 peh@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