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신파와 후카시에 지친 이들이여 '다만 악'에게로 오라

박창영 2020. 7. 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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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개봉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리뷰
황정민·이정재 '신세계' 듀오 뭉쳐
기존 한국 액션물의 고질병이었던
허세와 감정적 과잉 들어내버리고
타격감, 스릴, 구성 등 본질에 집중
인남(황정민)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하려던 청부살인업에 발목이 잡혀 고초를 겪는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무더운 태국에서 찍은 영화에서 싸늘한 냉기가 전해진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파와 후카시로 점철됐던 한국 액션 장르계에서 드라이한 톤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그간 인기를 끌었던 '신세계', '아저씨' 등 범죄액션물처럼 긴장감 있는 격투를 선보이지만 감정적으로 절제하고, 허세는 덜어냈다. 진정 '하드보일드'란(범죄와 섹스, 폭력을 별다른 감정 묘사 없이 차갑고 건조하게 그리는 방식)수식이 딱 어울리는 영화다.

시종일관 차가운 톤 돋보여

레이(이정재)는 인남(황정민)이 자신의 형제를 죽인 것을 알고, 그를 필사적으로 추격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사람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살인청부업자 인남(황정민)의 이야기다. 그러나 '마지막'은 그의 소망일 뿐 인생은 그에게 '딱 한 번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살해한 남자가 하필 일본에서 백정으로 불리는 킬러 레이(이정재)의 형제였던 것이다. 레이에게서 도망가기만 해도 바쁜 와중에 태국에서 인남의 지인이 정체불명의 조직에 납치되면서, 인남은 사건을 해결하러 떠나고, 레이는 그런 인남의 뒤를 밟는다.
레이(이정재·왼쪽)인남(황정민)이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게 말을 극도로 아낀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시종일관 차가운 정서를 유지하는 게 '다만 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황정민, 이정재 두 배우는 '신세계'에서 선보인 뜨뜻한 브로맨스 대신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서늘하게 붙는다. 감정적 동요 없이 묵묵히 주인공을 따라오는 추격자를 그린다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오른다. 결투 장면을 미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곳곳에 건 슬로우모션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연상케 한다. 인물들이 주먹다짐을 할 때 타격감을 살린 사운드와 총격신에서의 총성도 몰입감을 높인다. 이밖에 '달콤한 인생' '내부자들' 등 느와르물 명장면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결코 단순한 오마주에 그치지 않는다.

인남과 레이, 거울을 보는 듯한 두 남자

인남은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스스로 외로워지길 선택한 남자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서사적으로 보자면 영화는 주변 상황을 핑계로 소중한 사람을 챙기지 않았던 남자가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게 되는 과정이다. 실제로 인남이 젊었을 때, 주변인을 보살피지 못한 건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 탓이 컸다. 그래서 오직 생존을 위해 범죄에 발을 담게 되고, 친한 사람 하나 없는 유령처럼 살게 됐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게 더이상 핑계가 될 수 없음을 인남은 자신을 쫓아오는 레이를 보며 깨닫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살인에 관성이 붙어 직업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됐다는 점에서 레이는 인남과 똑 닮아 있다. 그래서 인남이 레이를 '무조건 죽여야겠다'고 달려드는 건, 단순히 본인 주변인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비겁했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홍원찬 감독 '추격자' '황해'로 추격 장르 노하우 키워

인물들이 부딪힐 때 전달되는 타격음이 생생하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41)은 '오피스'(2014)로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되며 충무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다만 악'은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등 추격 장르 각색을 도맡으며 길러온 그의 노하우가 폭발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리듬감 있는 촬영은 '기생충'의 촬영감독 홍경표가 만들어냈다.

절제된 대사 속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특히, 선글라스를 벗는 동작만으로 공간을 공포감으로 사로잡는 이정재의 표현력이 돋보인다. 황정민, 박정민 등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뿐만 아니라 최희서, 박명훈 등 조연도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만, 장르 특성상 잔인한 장면을 못 견디는 관객이라면 불편할 부분이 없진 않다. 15세 관람가, 8월 5일 개봉.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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