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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다가 돌아온 엄마.. '가족입니다' 결말이 불편하다

윤일희 입력 2020.07.27. 14:21 수정 2020.07.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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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오마이뉴스 윤일희 기자]

드라마 마지막회가 끝나고 한참을 우두커니 생각했다. 그녀는 왜 돌아왔을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진숙을 꼭 회귀시켜야 했을까?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아래 가족입니다)의 지나치게 훈훈한 결말에 나는 착잡했다. 이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듯한 드라마는 막바지에 이르자,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길을 잘 찾지 못하고 무능해지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는 듯,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제 열등감에 겨워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내를 심리적으로 학대하며 고통 속에 살게 한 남편에게, 기적 같은 개과천선(이 설정이 가장 비현실적이다)이 일어났다고 즉각 면죄부를 발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남편의 개과천선으로 급선회한 드라마는 막바지로 향하면서, 깜냥껏 살아내는 보통의 자식들을 못돼먹은 자식들이라는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고, 부부가 마치 합동 전선이라도 구축한 양, '졸혼' 모드에서 '졸부모'모드로 급전환한다. 남편을 떠나려 했던 진숙은 마침내 아이들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떠난다. 

물론 진숙의 고뇌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을 지우며 산 그녀의 일생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나 공감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 "혼자 살 생각에 설레서 잠도 못"자던 진숙의 '졸혼'을 지나치게 쉽게 무력화시키고 그로 인해 빌 수밖에 없는 서사의 공간을, 나름 제 앞가림을 하느라 힘겨운 아이들에게로 옮겨 놓는다. 

그랬다면, 이랬거나 저랬거나 용감히 떠났으니 자신의 길을 담담히 가는 진숙의 모습으로 드라마를 마칠 수는 없었던 걸까? 가족을 떠난 진숙의 행보를 그리는 드라마의 방식은 휴가를 받아 떠난 여행 그 이상이 아니다. 이 정도의 쉼은 '졸부모'를 선언하지 않고라도 선선히 해낼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진숙의 삶이 이조차 쉬이 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이었다지만 그렇다고 '졸혼'에 이어 '졸부모'를 선언한 행보가 고작, 가족에게 땡강 한번 부리고 얻어낸 휴가를 즐기다 결국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드라마의 관성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장면.
ⓒ tvN
 
나는 삼남매가 밉지 않았다

<가족입니다>를 보면서 나는 내 입장이라는 것이 참 난감하다는 곤경에 자주 처했다. 부모 세대로 상정된 진숙과 상식은 나와 불과 몇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저들의 세대를 자꾸 나보다 앞선 세대로 상정하곤 했다. 저 부부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 구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는 저들처럼 부모로서만이 아닌, 자식인 입장으로써 삼 남매에 번번이 이입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 속 진숙과 상식은 자신의 부모를 돌봐야 하는 의무에서는 면해있는 단지 부모인 입장이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 여기, 저 나이대의 부모인 사람들이 처한 딜레마는, 단지 부모이기만 하지 못한, 즉 부모이면서 동시에 자식이라는 이중 돌봄의 힘겨운 처지에 있다. 

팔순이 넘은 노모를 돌봐야 하는 나는 남편과 딸을 건사해야 하는 일에서만 도망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늙고 쇠약한 채 홀로 남은 엄마를 돌보는 일은 남편과 자식을 돌보는 일보다 더한 영혼을 요구한다. 내 식구 건사하기도 힘든데,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주마다 오가며 엄마가 드실 것을 해다 나르고, 시시때때로 병원을 모시고 다니고, 이런저런 생활 전반을 불편하지 않게 돌보는 일은 너무 벅차다. 나는 사실 이미 자식 노릇에 지쳤다. 해서 나는 진숙과 상식의 '무부모'의 상태에 쉽게 이입되지 않았고, 드라마 막바지에 이들이 자식들을 향해 가지는 서운함을 넘은 시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 속 세 남매 정도라면 썩 괜찮은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소녀가장이 된 나는, 큰딸 은주(추자현)처럼, 나의 원 가족으로부터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은주처럼 가족을 끊어내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늦은 나이에 결혼했어도 혈연이라는 질긴 끈은 부모 봉양이라는 책임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또 수십 년이 흐를 동안, 가부장의 공조자로 헌신만 하느라 빈손인 엄마는 여전히 딸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는 무능한 노인이 되었다.

자식으로서의 삶에 시난고난했고 지금은 기진맥진한 나로서는, 삼 남매가 삶에 대해 지니는 태도나 노력이 애틋했다. 소녀가장으로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도 변리사가 된 은주는 그 독함을 무기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은주가 그렇게 고독하게 삶과의 전쟁을 수행할 동안 엄마는 수고한다거나 고맙다는 위로의 말을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말이 너무 쉬워 못 했어"라는 엄마의 누추했을 마음이 가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식 누군가가 희생해야 했다면,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말 한 조각이라도 건네는 게 부모와 가족의 도리다. 벌판에 홀로 남겨져 칼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듯했을 은주에게 가족이 미안함 때문에 감춘 마음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런 은주의 결혼이 실패한 건 전혀 그녀의 탓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이 시대의 이혼은 더 이상 수선 떨 일도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이혼이 아무 일도 아닐 수는 없겠지만, 당사자인 은주보다 더 고민할 수도 괴로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진숙이 더 "가슴이 미어진다"면, 진숙은 그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혹시 딸이 누릴 거라 기대했던 정상가족이라는 가정의 허상에 혼자 배신당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사려 깊은 은주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이혼을 알린 딸에게 서운함을 내보이기 앞서,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할 수는 없는 걸까? 결혼도 이혼도 자식이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너풀거리는 성격으로 가족의 갈등을 조정하며 가족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둘째 딸 은희(한예리)의 태도는 요즘 청년으로는 보기 드문 캐릭터다. 연인과의 결별 후 어렵게 독립한 은희는 비로소 제 길에 들어선 것이지만, 이조차 마치 부모에게 아픔을 준 듯 드라마는 다루고 있다. 또한 "말로 연쇄살인도 가능할" 언니에게 상처받고 외면하고 지낸 기간이 부모의 입장에서 서운할 수는 있지만, 이 갈등의 근저에 은주의 희생을 매개한 자매간의 부채감이 존재한다는 걸 부모는 간과하고 있다. 그 부채감에서 부모 또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다 큰 자식들에게는 그 자식들 간의 미묘한 사연도 존재하는 것이며, 이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막내라는 무기로 가족 모두에게 금전적으로 삥을 뜯으며 염치없이 사는 막내아들 지우(신재하)조차도 가족관계가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모찬스'를 기대할 수 없는 지우에게 '헬조선'의 구조는 '넘사벽'이고,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발로라기 보다, 그렇게 '노오력'하는 아버지의 삶이 결국 행복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우가 가족 모두에게 일언반구 없이 떠나는 처사가 가족의 일원으로 마땅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부모의 밑에서 눈치 보며 주눅 들어 사느라 시든 자식들의 마음 또한 헤아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장면.
ⓒ tvN
 
드라마의 결말이 불편한 이유

상식의 수술 이후 자식들에게 복잡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니들한테 가족은 뭐니"라고 묻는 진숙의 질문은 비단 삼 남매에게만 향해서는 안 된다. 폭력적인 결혼을 유지한 것이 아이들을 위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헌신이 될 수 없다.

"엄마가 자식이 미우면 어떻게 해"라는 진숙의 고백 또한 되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진숙의 이 말이 바로 그녀가 '졸혼'과 '졸부모'를 선언하게 한 저변일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신이 보낸 천사가 아니다. 자식이 미운 짓을 하면 그 자식이 미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식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미워서는 안 된다고 강요한 것은 사회가 주조한 모성일 뿐, 진숙은 이 주술에 오래 걸려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식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식과 부모가 서로에게 우선이 되는 삶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졸혼'과 '졸부모' 이전에 보다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너희들하고 그만 둘거야"라고 결연히 집을 나선 이가 여행을 다녀온 듯 다시 집으로 회귀한 것도, 이 유구한 정상가족성과 모성의 자장 안에 진숙이 여전히 영향받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진숙과 상식이 노트에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쓴 버킷 리스트, 너무나 소소한 나머지 눈물 나게 쓸쓸한 그 인생의 계획을, 꼭 집으로 회귀 시켜 '가족과 함께'라는 삶으로 구겨 넣어야 했을까.

드라마는 부부나 가족이 반드시 집이라는 공동의 울타리를 안전벨트처럼 매야 안전하다고 잘못된 신호를 주고 말았다. 따로 또 같이, 각자의 미션을 성취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격려와 지지자가 되어, 남은 생을 독자적으로 살아내는 부모 그리고 가족의 모습은 이 시대에 유효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가족입니다>의 결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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