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다녀왔습니다’ 주말 드라마의 공식과 변주 사이 [이윤영 작가의 어제는 뭐봤니] (8)

황계식 입력 2020. 7. 13. 12:41 수정 2023. 12. 2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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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애청자다. 드라마는 한편 보기 시작하면 도통 끝을 내기 힘들어하는 성격(?) 탓에 가능하면 시청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인류의 평화’와 ‘심신의 안녕’을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이지만 매번 그 원칙은 첫회를 보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특히 평일 드라마는 여차저차해서 놓칠 때가 많지만 주말 드라마는 사정이 다르다. 한 주간 열심히 달려 온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의 의미가 있기도 하고, 온 가족이 저녁식사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뇌를 살짝 놓고’ 편안히 보기 딱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 식후 간단한 디저트 타임에 ‘스몰 토크’용으로도 좋은 소재들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지난 3월부터 방영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전통시장에서 통닭집을 경영하고 있는 송영달(천호진 분·맨 위 사진 왼쪽)과 옥분(차화현 분·〃 〃 〃 오른쪽) 부부의 네 자녀가 차례대로 이혼과 파혼을 겪으면서 시작되었다. 1명도 아니고 4명의 자식이 연이어 이혼과 파혼의 아픔의 겪게 된 영달 부부는 아픔을 겪는 자식들을 위로해야 하지만 이 시대의 평범한 부모처럼 말 많은 시장 사람들의 시선과 눈초리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딸 나희(이민정 분·사진 오른쪽)와 사위 윤규진(이상엽 분·〃 오른쪽)의 ‘이혼 커밍아웃’은 부부에게 큰 충격이었다. 의사 딸, 의사 사위로 인해 한껏 올라갔던 어깨가 일순간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말 드라마에는 약간의 공식이 존재한다. 온 가족이 보는 시간대임을 감안해 대부분 가족 드라마의 형태를 취한다. 대부분 6개월 이상 방영하는 특징상 대가족을 구성하고, 그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다. 더불어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간다. 전체 이야기의 구조가 대가족을 큰 축으로 하는데, 가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관계, 사랑과 이별, 고민과 갈등 등이 주소재로 등장한다. 그런 탓에 주말 드라마는 매번 제목만 달라질 뿐 같은 드라마의 되풀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주말 드라마의 이 같은 공식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약간의 다른 변주를 선보인다. 특히 인물 설정 면에서 그간 주말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유흥업소를 운영했다가 돌연 김밥집 사장으로 변신한 강초연(이정은 분·사진)을 통해 시장이라는 다소 뻔한 공간이 갖는 이야기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초연을 통해 중년의 사랑, 새로운 공간에서 적응하기 위한 과정과 텃세, 이전 직업에 대한 선입견 등의 소재를 무리 없이 다루고 있고, 초연의 김밥집을 매개로 다양한 이전 친구들이 시장에 유입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이 극에 활기를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영달의 첫째 아들 준선(오대환 역)을 통해서는 이혼한 부부들이 겪게 되는 육아 문제와 자녀와의 갈등, 경제적인 문제, 전직 스튜어디스 출신의 딸 가희(오윤아 분)를 통해서는 경력단절여성의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미덕은 주말 드라마의 뻔함에서도 ‘코믹’과 ‘유머’의 변주를 꾸준히 지켜나고 있다는 점이다. ‘레전드’ 시트콤으로 평가받는 MBC ‘남자 셋 여자 셋’, SBS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 등을 집필한 양희승 작가 특유의 ‘진지한’ 유머와 엉뚱한 인물의 매력이 다소 지지부진해보일 수 있는 영달과 초연의 ‘잃어버린 동생 알아보기’ 미션을 깜빡깜빡 잊게 한다. ‘남자 셋 여자 셋’의 이의정 머리를 연상시키는 초연의 ‘뽕머리’ 설정, 이모역의 장옥자(백지원 분)의 사랑을 향한 ‘돌진’ 등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한편에 인생의 큰 의미와 무게를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주말 한번이라도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지만 다소 코믹하게 다룬 이야기를 보면서 가족과 그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면 그것은 드라마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임무이자 미션 하나쯤은 ‘완료’한 것은 아닐까 한다.
 
작가 이윤영 
사진=KBS 2TV ‘한 번 다녀왔습니다’ 캡처

*책, 영화, 방송 등 대중문화를 읽고, 그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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