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다 이렇게 잘할 줄 '수발놈' 광희

김지혜 기자 2020. 7. 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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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놀면 뭐하니?'에서 신선한 존재감으로 주역만큼 빛나는 황광희

[경향신문]

이효리·비·유재석 사이에서
“수발 잘 드는” 수발놈 자처
서열 최하위를 당당히 인정
자기 자리 스스로 만들어내

“우리 광희 잘한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여름×댄스×혼성그룹’ 프로젝트를 보노라면, 이효리가 내지른 탄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데뷔 30년차 유재석과 23년차 이효리·비가 모여 26년 전 발매된 듀스의 ‘여름 안에서’에 맞춰 춤을 추는, 마치 ‘시간이 박제된’ 듯한 화면을 부지런히 ‘현재’로 길어 올리는 주역이 바로 황광희이기 때문이다.

오디션으로 멤버를 뽑겠다더니 결국엔 이효리·비·유재석 ‘레전드’급 연예인으로만 꽉 채운 혼성그룹 ‘싹쓰리(SSAK3)’에서 ‘싹’도 ‘쓰리’도 아닌 ‘수발놈’을 자처하며 제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광희의 투지로 <놀면 뭐하니?>는 비로소 유쾌해진다. <무한도전> 시절부터 ‘1인자’ 유재석에 대한 한결같은 숭배를 드러내온 김태호 PD의 태도에서 나타나듯, 성공과 재능을 척도 삼아 출연자 간 서열을 조장해온 ‘구식’ 예능과 싸워가는 ‘신식’ 예능인의 도전이야말로 새 시대의 ‘무한도전’처럼 보인다.

“만약에 (광희를 포함한) 이 멤버로 팀을 짜면 매치가 좀 안 되지 않아요?”(비) “광희가 하는 음악 스타일이 있나?”(래퍼 쌈디)

예능판에서 광희는 줄곧 무시당한다. 멤버를 모집하던 ‘여름×댄스×혼성그룹’ 프로젝트 초반부에도 그랬다. 출연자들은 마치 그에 대한 무시가 곧 ‘재미’라는 듯이 행세한다. 연예인으로서 그가 지금껏 이룬 성취가 뚜렷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그가 예능에서 주로 선보인 캐릭터가 마르고 약한 이미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예능은 그를 ‘서열상 아래’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무시는 당연하며 웃기는 것으로 연출한다. 만약 광희가 이 문법에 수긍하고 주눅들어 있었다면 <놀면 뭐하니?>의 이번 프로젝트는 그저 그런 구식 예능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저는 정 안되면 수발 잘 드니까, ‘수발놈’ 할게요.” 그러나 광희는 자신이 서열 최하위임을 유쾌하게, 짐짓 당당하게 인정하며 그야말로 꾸역꾸역 제자리를 만든다. ‘구태야 어찌 됐든 나는 이 판에서 생존할 것이고 생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기까지 느껴진다. 그러자 곁에 있던 지코가 ‘수발놈’을 두고 “좀 생각해 오셨냐”고 비웃듯 딴지를 건다. 예의 ‘무시’를 시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받아치는 광희의 말이 발군이다. “네가 나한테 무슨 예능 지적질이야. 가서 챌린지나 해, 아무 노래 만들고.”

MBC 예능 <놀면 뭐하니?>를 ‘요즘 예능’으로 만드는 것은 유재석·이효리·비가 뭉친 ‘레전드’ 그룹 ‘싹쓰리(SSAK3)’가 아니라 그들 곁에서 ‘당당한 수발놈’을 자처하는 황광희의 재치와 결기이다. MBC 캡처

비웃거나 딴지 거는 출연자엔
으름장 놓고 받아치는 ‘결기’

서열 조장하는 ‘구식 예능’을
‘요즘 예능’ 만드는 재치 보여

결국 ‘수발놈’의 이름으로 <놀면 뭐하니?>에 합류한 뒤에도 광희는 이 신선한 태도를 이어간다. ‘네가 거길 왜 끼냐’는 등의 악플 세례에 “나도 고소장 날린다. 가만 안 있어. 법원에서 등기 날려”라고 응수하고, 싹쓰리 멤버들의 수발을 들다 괴롭힘을 당하면 “여기요, 이효리·비가 나 지금 조지는데?”라고 언론사에 제보할 것이라며 으름장도 놓는다. 1990년대 데뷔했지만 여전히 ‘레전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들의 등쌀에 밀려, 맡을 수 있는 역할이라곤 ‘수발’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주눅드는 법이 없다. 미래는 어둡고 가진 것은 없어도, 권위 대신 다양성을 좇는 소신을 지키고자 하는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통칭하는 말·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태도다.

<놀면 뭐하니?>를 MZ세대도 호응할 수 있는 ‘요즘 예능’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광희다. 비의 ‘깡’에 담긴 구시대적인 권위 의식을 비꼬며 개그 ‘밈’으로 만들어버린 MZ세대의 풍자를 그는 온몸으로 재현해낸다. 프로젝트 초반부, <놀면 뭐하니?>는 명성이 높으면 일단 칭송하고 보는 구식 예능 문법에 따라 그저 ‘레전드의 귀환’쯤으로 비와 ‘깡’을 소비할 뻔했다. 이 프로그램이 비와 ‘깡’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시작한 것은, 변화에 예민한 이효리의 지원사격 아래, 비에게 시종 ‘버릇없이’ 소리지르는 광희의 존재감이 살아나면서부터다.

광희는 자신에게 연락을 강요하는 비를 두고 “생긴 거랑 다르게 꽤나 질척대. 이럼 매력 없다” “난 절대로 형 차에 안 타”라며 받아친다. 서열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처음엔 화를 내는 듯하다 점점 익숙해지는 비의 변화를 보며 시청자들은 <놀면 뭐하니?>를 비로소 ‘요즘 예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광희라고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최근 MBC 유튜브에 출연한 광희는 “형은 남자 어른들에게 되게 말 잘한다”는 김정현 아나운서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방송에 같이 계약이 돼서 해야 되니까 카메라 돌아가고 있고 한데 어떻게 안 해? 어쩔 수 없어! 부딪쳐야 돼.” 구시대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것, 그 속에서도 재치와 발랄함을 피어내는 광희의 ‘무한도전’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 예능의 새 얼굴로서의 광희를 재발견한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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