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헐뜯고 싸우는 여성 래퍼 없어도.. '굿걸'만은 달랐다

김민준 입력 2020. 7. 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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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웹예능 <힙합걸z> , Mnet <굿 걸> .. 여성 힙합 예능 편견 깼다

[오마이뉴스 김민준 기자]

힙합을 즐겨듣는 리스너 입장에서, Mnet 예능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다. 한국 힙합은 <쇼미더머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에 힙합 리스너 대다수는 동의할 것이다. 어떤 래퍼가 이 방송에 출연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논쟁도 자주 벌어질 만큼 당시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 와중에 <쇼미더머니>는 남성 래퍼들 천지였다. 아니, 남성 래퍼들만을 위한 판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가사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이를 오히려 칭송하는 구도에서 여성 래퍼가 살아남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쇼미더머니>는 방송의 재미를 위해 상황을 자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많은 래퍼들이 실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그렇다보니 여성 래퍼가 출연할 수 있는 빈도도 절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여성 우승자도 없었다. 

<쇼미더머니> 그리고 <언프리티 랩스타>... 그 이후
 
 Mnet <굿 걸> 방송화면 갈무리.
ⓒ MNet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방송된 Mnet <언프리티 랩스타>는 시즌3까지 이어지며 여성 래퍼들에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프리티 랩스타>은 한국 힙합계가 여성 래퍼를,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왜곡해서 바라보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방송이기도 했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성은 다른 여성을 적대시 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식으로 방송을 구성했다. 실제로 촬영현장의 관계가 어떠했든, 방송에서는 찰나의 어두운 표정이나 째려보는 듯한 시선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갈등을 조장했다. 주요 출연자들의 대립 관계로 스토리를 풀어나갔고, 출연자들 역시 서로의 능력을 깎아내리며 질투하는 콘셉트를 이어나갔다. 그러다보니 랩 실력이나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갈등 관계가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지난 5월 첫 방송된 Mnet의 새 힙합 예능 <굿 걸>은 확연히 다른 프로그램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굿 걸>은 '여성 힙합, R&B 뮤지션들이 방송국을 털기 위해 한 팀으로 뭉친' 콘셉트다. 인위적으로 보이는 갈등 상황은 없다.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감탄하기 바쁘다. 효연, 에일리, 치타 등 이미 잘 알려진 가수들은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면을 보여주고 슬릭, 전지우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들은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계기로 만든다.

특히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래퍼 슬릭이 출연을 한 것도 한동안 꽤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에서 슬릭은 스스로 어떻게 기량을 드러낼지에 더욱 집중한 것으로 보였다. 음악적으로도 다른 부분이 있는 그가 다른 출연자들과 어떻게 녹아들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이 방송의 주요한 포인트였다.

신예 래퍼 퀸 와사비는 자신의 자작곡 '안녕, 쟈기?'를 첫 방송에서 부르면서 주목받았다. 당시에는 '1일 1깡'을 잇는 '1일 1쟈기'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하루에 '안녕 자기' 영상을 한번씩 본다는 의미). 방송에서는 처음에 엉덩이를 격렬하게 흔드는 춤 '트월킹'을 선보이며 랩을 하는 퀸 와사비를 불편한 듯한 눈으로 지켜보는 슬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을 천천히 담아낸 <굿 걸>은 힙합 예능이 (당연히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여성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방송이었다.

MBC가 자체 제작한 웹 예능 <힙합걸Z> 역시 새로운 형식의 힙합 예능이다. <힙합걸Z>는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 래퍼 하선호와 이영지, 브린이 모여서 '여성 래퍼 불모지'인 대한민국 힙합계를 접수한다는 콘셉트다. 이 방송 역시 <굿 걸>처럼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더욱 집중한다.

'도장깨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방송 내내 한국 힙합을 주름잡고 있는 선배 아티스트들에 대한 세 래퍼의 존경심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굳이 선후배 관계를 강조하진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동료라는 인식 아래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가 하면, 선배의 곡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불러보기도 한다.

<힙합걸Z>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조합들을 보여주니, 리스너 입장에서는 눈과 귀가 모두 호강할 수밖에. 힙합 유튜브 채널인 <딩고 프리스타일>에 나가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는 것에서 시작해서, 팔로알토와 다이나믹 듀오, 루피와 나플라 등 여러 선배 뮤지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7회 차로 막을 내렸지만, 셋의 '케미스트리'는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더 많은 여성 래퍼들을 드러낼 수 있길 
 
 MBC <힙합걸Z> 방송 화면 갈무리.
ⓒ MBC
 
<쇼미더머니>가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 일등공신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전까지 음원차트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힙합 음악은 <쇼미더머니> 존재 이후 차트 상위권을 휩쓰는 대중적인 장르가 됐다. 대학 축제에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기를 끈 래퍼가 자주 섭외된다. 이제 힙합은 더이상 비주류문화가 아니다. 

<굿 걸>과 <힙합걸z>는 힙합을 대중화시킨 <쇼미더머니>의 유산에서 벗어나, 래퍼 각자의 매력과 관계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힙합 예능은 서로 '디스'하고 갈등을 조장해야만 성공한다." <쇼미더머니>의 메가 히트 이후 힙합 예능 제작진들은 오랜 기간 이런 생각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에게 최근 종영한 <굿 걸>과 <힙합걸z>가 하나의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인위적인 갈등 없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힙합 예능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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