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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예습하기] 예능 PD들에게 보내는 시무 5조

이은호 입력 2020.06.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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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예습하기] 예능 PD들에게 보내는 시무 5조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가수 이효리가 지난 18일 에스팀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MBC ‘놀면 뭐하니?’의 혼성 그룹 프로젝트가 가동할 즈음의 일이다. 그가 새 기획사를 찾았다는 건 본격적인 활동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효리 섭외를 욕심내고 있을 예능 프로그램 PD 선생님을 위한 다섯 가지 직언. 이 기사는 가수 비의 ‘깡 신드롬’에 불을 지핀 ‘시무 20조’를 패러디한 것으로, 다음 조항은 이효리뿐 아니라 다른 어떤 연예인을 초대할 때도 적용 가능하다.

제1조 외모 평가 금지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의 허리와 잇몸은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놀림은 주로 어린 여성 연예인이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 유재석을 필두로 한 남성 출연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효리가 이를 두고 MBC ‘무한도전’의 ‘죄와 길’ 특집에서 “유재석이 여 아이돌 멤버들이 왔을 때 (나를) 비교해서 깎아내렸다”, “허리가 길다, 늙었다, 무겁다(고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당시 유재석은 “웃을 때 잇몸이 훤히 드러나는 게 예쁘다고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효리는 지난해 출연한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과거 당했던 놀림을 다시 한번 언급했고 결국 유재석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웃겨야 한다’는 유재석의 사명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게 다른 이의 신체와 외모를 웃음거리로 삼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이효리는 유재석의 사과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다. 비하를 웃음의 동력으로 삼던 이들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할 시청각 자료다.

제2조 나이 얘기 금지

이효리의 나이는 만인의 관심사였다. 12년 전 미디어는 당대의 섹시 아이콘 이효리가 30세가 된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었다. SBS ‘일요일이 좋다-체인지’에선 분장을 한 이효리가 시민에게 “나이가 많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그려졌고, ‘패밀리가 떴다’에선 아이돌 춤을 따라 추는 이효리에게 김수로가 “너 30세 넘었어”라고 면박을 줬으며, 이효리 자신 역시 Mnet ‘오프 더 레코드’에서 엄정화에게 30대를 앞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엄정화가 방송에서도 말했듯 서른 살은 인생의 끝이 아니고, 여성의 나이 듦은 흠도 벌도 아니다. 그런데도 박명수는 2017년 MBC ‘무한도전’에서 이효리와의 만남을 앞두고 “이효리를 만나자마자 3년 정도 늙었다고 말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실제로 이효리와 첫 대면에서도 “늙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3년이 지났으니 3년 정도 늙은 것은 당연하고, 이효리만큼이나 박명수 자신도 3년 정도 늙었을 텐데 저 발언이 왜 치명적인 공격이 될 것으로 생각했을까? 방송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제3조 막말 금지

“이상순 걸리면 가만 안 둬.” “늙었다, 늙었어, 조금 늙었어. 눈이(눈가가) 약간 자글자글해.” “이효리 씨하면 섹시한 느낌이 강해서 향수 냄새가 확 나야 하는데 밭 냄새가 확 나네요.” 3년 전 ‘효리와 함께 춤을’ 특집으로 꾸며진 ‘무한도전’에서 이효리를 만나기 직전 혹은 만난 직후 멤버들이 한 말이다. 이날 이효리는 요가를 통해 정신을 수련하고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런 이효리에게 맥락 없는 말장난을 던졌고 그가 화를 내면 ‘이효리가 돌아왔다’며 기뻐했다. 이효리가 요가를 가르쳐 줄 때는 그에게 발가락으로 이마를 짚게 하거나 얼굴에 밀가루를 묻히게 하는 등 슬랩스틱 코미디를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효리는 날카롭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웃음을 주는 데 일가견이 있고, 그 능력을 끌어내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마땅한 소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막말에 가까운 ‘아무 말’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해 과거와 달라진 삶의 태도를 갖게 됐다고 말한 이에게는 더더욱 부적절한 처사였다. 

제4조 ‘여적여’ 금지

망가짐을 불사하는 태도 때문일까. 한때 이효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배 여성 연예인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비교 대상 취급을 당하곤 했다. 이효리는 주로 ‘놀림에 발끈하며 다른 (주로 어린) 여성 연예인을 질투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SBS ‘맨발의 친구들’에 유이와 함께 출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정 출연자들은 ‘이효리 VS 유이’ 구도를 만든 뒤, 이효리를 깎아내림으로써 둘 사이의 경쟁심에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이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서로의 이마를 미는 게임을 할 땐 “예민한 女선후배들끼리의 대결” “무섭다…여자들이 독기 품으면” 같은 자막으로 유독 두 사람의 성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는 후배 여성 가수인 아이유·윤아와 자신들만 아는 고민을 나누며 연대했고, JTBC ‘캠핑클럽’에선 핑클 해체 이후 십수년간 가져왔던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놓고 오랜 숙제처럼 느껴졌던 그들과의 관계를 풀어내기도 했다.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장면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제5조 현재 2020년 직시하기

이효리는 ‘옛날 스타일’을 싫어한다. 2017년 JTBC ‘한끼줍쇼’에 그룹 S.E.S. 멤버 슈와 이효리가 함께 출연했을 당시, “핑클과 S.E.S.가 한 화면에 잡히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감탄하는 강호동에게 이효리는 “다 옛날 거”라고 호통을 쳤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도 유재석이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며 과장된 몸짓으로 호소하자 “옛날 예능 스타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방송한 MBC ‘놀면 뭐하니?’에서 광희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웃음을 안기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모든 출연자가 자신의 인기를 권위 삼아 ‘광희 몰이’에 동참할 때, 그를 감싸준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효리였다. 광희는 이효리에게 “시원하게 (멘트) 쳐요. 쳐줘야 내가 살아”라고 했다. ‘놀려도 되는 사람’을 정해놓고 그에게 집단으로 무안을 주는 것은 어쩌면 지금도 주효한 예능 문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효리처럼 광희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수도 나아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웃음이 진정 건강한 웃음인지, 적어도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던 ‘놀면 뭐하니?’가 ‘옛날 스타일’의 예능으로 낡아지지 않길 바란다면 말이다.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SBS ‘맨발의 친구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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