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존경받던 가톨릭 사제의 동성 성추행, 뒤늦게 밝혀진 비밀(종합)

뉴스엔 2020. 5. 1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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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민지 기자]

존경 받던 가톨릭 사제의 비밀이 공개됐다.

5월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젊은 사제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한 의혹을 파헤쳤다.

오래 전 녹화 된 비디오 테이프. 길고 긴 신학생 시절을 마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의식인 서품식. 교구장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다짐하고 이후 땅에 엎드리는 구복을 하면 세속에서의 나는 죽고 주님의 사람으로 태어난다. 7년 전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던 다니엘 신부도 그곳에 있었다. 기대와 신뢰를 한몸에 받던 젊은 사제. 신부의 삶은 길지 않았다. 한 기자는 "교구청 안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니엘 신부는 몇년 전 사제관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신자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온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교구 측은 다니엘 신부의 사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른 죽음이 있었다. 다니엘 신부와 같은 날 신부가 된 서품 동기는 12명. 그 중 토마스 신부와 요셉 신부가 세상을 떠났다. 모두 30대 젊은 나이였다. 세간의 의혹처럼 이들의 죽음에는 비밀이 있는 것일까. 신학교 입학부터 신부가 되는 서품식까지 통상 10년 가까이 함께 지낸다는 동기들, 세사람은 지금도 성직자 묘지에 함께 잠들어있다. 천주교에서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을 무엇보다 금기시한다. 이들이 성직자 묘지에 묻혀있다. 기자는 "교구 측은 심장마비로 기록돼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부검 없이 어떻게 사인을 안 것일까.

한날 한시 신부의 삶을 약속했던 12명 중 3명은 사망했고 2명은 세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 휴식을 반복해온 일도 있다. 이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이와 관련된 진실을 밝혀달라는 제보가 수차례 들어왔다. 조심스레 죽음의 이유를 묻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 동료 신부는 취재의 의도부터 되물었다. 첫번째로 사망한 다니엘 신부와 사망 전날 술자리를 가졌던 선배 사제는 "왜 취조하듯 물어보냐. 가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여다.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다니엘 신부의 부고 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반면 토마스 신부는 부고 기사에 사인이 심근염이라 설명돼 있다. 요셉 신부 기사는 있지만 사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요셉 신부는 병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경우 변사사건으로 분류돼 사망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고 절차상 사인도 확인한다. 한 기자는 요셉 신부가 친구에게 보낸 '말로 표현 못할 만큼 힘들었다', '유서는 남겨놨다' 등 문자를 알려줬다. 이 기자는 "경찰에서 변사로 자살했다는 것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요셉 신부는 사제관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에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과 유족을 위한 배려로 요셉 신부의 사인을 숨겼을 수도 있다.

교구는 다니엘 신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동료 신부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들었다. 교구청에서 일을 했다. 교구청에서 죽임을 당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니엘 신부는 요셉 신부와 달리 그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숨진 사제들의 동기는 12명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그들 중 휴양을 거듭하다 얼마 전 한 성당에 배치된 이 모 신부를 찾아갔다. 성당을 찾아 숨진 동기 신부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어디선가 여러명의 남성들이 나타나 "나가달라"고 말했다. 동료 신부가 "당신 입장에서 10년 이상 같이 지낸 신부가 의문사로 죽었다고 쳐라"라고 말하자 신도들의 행동은 거칠어졌다. 이들은 신부의 입을 서둘러 막으려는 듯 제작진을 성당 밖으로 밀어냈다.

얼마 전까지 수녀회에 몸담았던 전직 수녀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연락했다. 인천 가톨릭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전직 수녀들은 "성추행을 당한 수치심이라는건. 사제가 그것도 자기가 존경하는 교수 신부님한테...한국 안에서 동성 사건은 흔한게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대 말 인천 가톨릭 대학교에서 벌어졌다는 동성 성추행 사건. 가해자는 교수 신부, 피해자는 신학교 학생들이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20년 넘게 묻혀있었을까.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분위기였을 것이라는게 제보를 한 전직 수녀들의 이야기였다. 인천 가톨릭대학교는 1996년부터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사망한 신부들은 1997년부터 1999년 사이 인천 가톨릭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인천 가톨릭대학 이사장은 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나길모 주교였고 총장과 교수들은 인천 교구 신부들로 채워졌다. 1대 총장인 최 신부는 나길모 교구장의 뜻을 받들어 인천 가톨릭대학교를 주도적으로 설립했던 인물이다. 최 신부는 은퇴 후 박물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외부 활동으로 바빴던 최신부를 대신해 그 시절 학교와 학생들을 챙겼다는 이 신부는 2대 총장이 됐다. 이 신부는 유난히 따르는 신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이 신부는 사건에 대한 '그알' 제작진의 질문에 "직접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들었다. 외국 신부님하고 학생들하고 무슨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학교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신부가 있었다는 것. 이 신부는 '오 신부'라 불렸던 이 외국인 신부가 해당 사건을 알렸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조심스럽게 동성 성추행 사건에 대해 묻자 오 신부는 "오래 전 일이고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그알' 제작진이 오 신부를 찾아 갔지만 오 신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20여년전 비밀을 알렸다는 그는 왜 침묵을 택한 것일까. 동료 신부는 "당시 오신부님 때문에 학교가 시끄러웠다고 알고 있다. 오 신부가 한 학생의 고해성사 내용을 가지고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더라. 신부가 고해성사 내용을 발설하는 일은 금기다. 그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그 직후 학교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신부가 사제의 양심으로 또다시 금기를 깰 수 없었을 터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취재 중 당시 동성 성추행 피해자 신부를 찾았다. 그는 "내가 느꼈던 그때의 모든 기억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다. 교회는 보수적인 곳이다. 바뀌기 싫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곳이다. 지금 이야기를 꺼냈을 때 교회가 받을 상처라든지. 이런 것이 바람직할까"라며 고민을 드러냈다. 이어 "면담하고 들어오는 친구들의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있냐, 혼났나 하면 다들 이야기를 거부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면담이 이뤄졌던 교수 신부의 방. 동기들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그 방에 들어가고서야 알았다. 피해자 신부는 "1대1 면담이었다. 구체적으로 만지더라. 진짜 중요부위를 그렇게 한다던가, 키스를 시도한다든가. 나는 싫다고 이야기 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 신부는 얼마 뒤 동기와 함께 교수 신부와 건설자금 모금을 위해 1박2일로 출장을 갔다. 피해자 신부는 "친구가 씻는 동안 그런 행동들을 하더라. 수고했다면서 볼에다 키스하고 감싸면서. 쓰다듬고 엉덩이를 만졌다. 그때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경험은 진짜 끔찍했다. 제발 더 하지 말기를"이라고 폭로했다. 때마침 동기가 화장실에서 나와 피했다는 피해자. 씻고 나온 그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아기를 안듯이 얼굴을 이렇게 키스하고 있는 장면. 너무 화가났다. 너무 화가 나서 데리고 나와서 이 친구를 달래고 다음날 모금하고 저녁에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뒤에서 그 짓을 하고 있더라. 기사도 있는데. 신학교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최XX라는 사람이 아직도 교회에 있는게 짜증난다. 이런 인간이 아직도 교회의 신부라는 이름으로 있는게 싫다"고 분노했다.

22년 전 인천 가톨릭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동성 성추행 사건이었다. 그 가해자는 1대 총장 최 신부였다. '그알' 제작진과의 만남 당시 그는 "외부로 돈 모금하고 다니느라 바빴다. 지도는 다른 신부님들께 맡겨서 잘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그에게 피해를 입은 신학생의 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제보자는 "우리 반에 열명 안 쪽이었다. 호리호리하고 곱상한 친구였다. 자꾸 방으로 부르고 학교 밖으로 일 보러 나갈 때 비서처럼 데리고 나간다고 들었다. 최신부가 신학생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사실상 학교 설립자였고 신학생이 신부가 되는 일에 가장 큰 결정권을 가졌던 최 신부. 최 신부는 '그알' 제작진과의 만남에서 "나야 말로 영적 장애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끊임없는 회개의 연속. 죄인이라는 고백. 감사가 나오는거다. 나같은 죄인을 이렇게 사랑하시니"라고 말한 바 있다. 신학생 불모지에 대학을 세우고 은퇴 후에도 지적장애인을 돌보는 그가 동성 성추행 가해자였다는 것은 충격적인 내용이다.

최 신부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총장 자리에 있었다. 신학교 특성상 학생들은 방학 외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무른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최 신부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바람 속에 신부로 자라왔다. 종종 언론에서 주목할 만큼 검소하고 훌륭한 인품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섣부른 단정보다 차분한 확인이 필요하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성직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묘지 옆 꽃집 주인은 30년간 만난 많은 성직자 중 으뜸은 최 신부라고 말했다. 후배 사제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 역시 흠잡을데 없다. 검소하고 배려하고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무엇이 진짜 최 신부의 모습일까.

피해자 신부는 "같이 갔던 친구를 데리고 나갈 때 이 사람은 가만히 있었다. 차 안에서도 차 세워달라고 하고 미친놈처럼 그랬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단 한마디 말도 안했다"고 말했다. 강하게 거부하고 항의해도 반응이 없었다는 것. 피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다는 그는 "학생처장이라고 하는 신부를 찾아갔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더라. 이XX 신부한테 가서 다시 이야기 했더니 자기가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이야기가 없더라"고 밝혔다. 이XX 신부는 인천가톨릭대학교 2대 총장인 그였다. 앞서 그는 '그알' 제작진에 피해 사실을 직접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알' 제작진이 다시 연락해 묻자 "성추행이라는거다. 몇번 그런게 있었겠죠. 난 거기 있었던 신부 중의 한 사람이니까 내가 거기 관여했다는 걸 빼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외국 신부님은 외국인이니까 생각이 달랐다. 우리는 그 할머니나 어른들이 꼬맹이 성기 만지면서 '귀엽게 생겼네' 그런 스타일의 접촉이지 않았겠는가 생각한거다"고 말했다. 외국인인 오 신부가 나길모 1대 교구장을 만나고 얼마 뒤 최신부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게 이 신부의 설명이다. 교구장이 그를 곧장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는건 사안이 심각했다는 것인데 최 신부는 왜 여전히 인천교구 소속 신부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고 나길모 교구장의 곁을 항상 지켰던 당시 인천교구 총대리를 찾아갔다. 제대로 질문하기도 전에 화를 낸 후 문을 닫았다. 인천교구에서 신부들에게 보낸 문자 때문으로 보낸다.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가해자로 지목된 최 신부를 다시 찾았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총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성추행 피해 진술에 대해 묻자 최 신부는 "그쪽에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어떻게 보면 그렇게 사랑을 저기 하는데. 껴안아주고 그런거는 했지만 그 이상의 그거는..."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의 표현을 했었다' 쉽게 말하면 허그다. 그랬는데 볼을 맞추고 이랬는데 키스로 상대방은 그럴 수도 있다. 상대방이 그렇다면 그거에 부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맞겠죠. 나는 사랑의 표현으로, 정말 아들 같아서 했는데"라며 신체접촉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어 거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신부의 말을 들은 이수정 교수는 "아동성애자들 중에, 특히 근친상간 하는 아버지들이 교도소에서 면담할 대 거의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말한다"고 지적했다. 김태경 교수는 "상대방을 길들이기 전에 보통 자신을 먼저 길들인다. 어쩌면 아이들이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설명했다.

정리해 보면 나길모 교구장은 피해 사실을 수집하고 검토한 뒤 인사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제직에는 머물러 있지마 공적 활동은 금지 됐다. 사안을 공론화 하지 않은 탓에 최 신부는 사제 신분을 유지했고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최 신부는 자신을 포용해준 인천교구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사제로서 신부로서 은퇴한 것에 감사하다. 그렇게 배려해주는게 쉽지 않다. 교구에서 내 개인적으로 은퇴 사제한테 생활비 주는건 받는다. 그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박물관과 장애인 수도회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을 못하고 의미가 별로 없다고 본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렇게 해주신 것 같다. 과거는 이미 전생이다. 죄송하다. 나 때문에 물의를 끼치고 여기까지 두번이나 걸쳐 오시고"라고 입장을 밝혔다.

오 신부로 불리던 외국인 신부는 고해신부를 발설하면서까지 최신부 문제를 학교에 알렸다. 같이 있던 교수 신부들은 분개하기 보다 오 신부를 설득했다. 나길모 주교는 그에게 인천 교구를 떠나 속죄하며 살라고 했다. 면직 수준의 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천교구 내에서만 아는 처벌이고 그는 대외적으로 사제 신분이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교구에서 수도회를 운영 중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만난 인천교구 관계자는 "이 방송이 나가면 일파만파 아니냐", "대부분 신부들은 이 내용을 모른다. 이게 보도될 경우 한국 가톨릭교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많은 신자들에게 미치는 파급 영향이 너무 크다"고 걱정을 드러냈다. 이후 인천교구는 사건에 대한 조사 후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공식 인터뷰를 약속했다.

그 사이 제작진은 최 신부가 설립한 지적 장애인 수도회에 대해 알아봤다. 전문가들은 이 조합이 위태롭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수도사라는 미명하에 지적 장애인들이 있다. 지적장애인들은 신학대 학생들보다 통제하기 쉽고 폭로 가능성도 적다. 과거의 일들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수도회 거주자들은 연못 공사를 하고 있었다. 청렴한 삶을 지향하는 수도회인 만큼 노동의 대가는 지불되지 않는다. 가파른 경사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이들이 만들고 있는 인공연못의 규모는 방대했다. 전문가는 "한 명 이상의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다면 복지시설이라 명한다. 미신고시설임이 분명하다 생각한다. 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는거다"고 지적했다. 수도회 측은 지적장애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 6시부터 기상해 기도와 노동을 이어가는 지적 장애인들. 이들은 성직자가 되는게 꿈이라고 밝혔다. 신체적 장애와 달리 지적장애는 신부가 될 수 없다. 문제가 있던 최 신부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수원교구회 측은 "거기는 공적으로 인준된 수도회가 아니고 수도회를 지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교구가 관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놀랄 수 밖에 없다. 문제 상황은 인지했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과 함께 해야 하는 부분들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의 만남을 앞두고 인천교구는 최 신부를 면직처리 했다. 인천교구회 측은 일주일간 조사 끝에 사건 진상을 확인했다며 "위계에 의한 성추행으로 볼 수 있다. 원로사제지만 인사명령을 통해 면직 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수도회 역시 정리하겠다는 것이 최 신부의 입장이다. 인천교구는 최 신부의 행위를 교구만의 비밀로 남겨두지 않고 바티칸 교황청에도 보고했다고 밝혔다. 최 신부 사건은 동기 신부들의 연이은 죽음을 취재하던 중 알게 된 것이다. 인천교구는 "98년 5월 18일자로 사건이 밝혀지고 주교님이 신학교를 떠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두 신부는 99년에 입학해서 연관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인 역시 22년 전 최신부의 사건과 결이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교구 측은 "유족들의 원의가 제일 중요하고 그 뜻을 따라주는게 최우선이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할 경우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나 신자들에게 줄 수 있는 충격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죽음 뒤 책임을 통감했다고도 말했다.

비극은 침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침묵은 고인의 고민도 남은자들의 침묵도 제대로 알아볼 기회를 잃게 한다. 문제의 원인을 선명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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