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엔 왜 페미니즘 없나.. 형편없는 '김은숙 문법'

박민지 기자 2020. 5. 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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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표 신데렐라식 작법, 이미 '상속자들'에서 끝났다"

자기세계에서는 나서서 범인을 때려잡던 여성 형사가 평행세계로 넘어가니 어리바리하다. 대한제국이라는 공간적 낯섦 탓이라지만,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에 불쑥 떨어진 남성 황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곤(이민호)은 자신도 모르게 세계를 건넜고, 정태을(김고은)은 자발적으로 경계를 넘었는데도 그렇다. 위기 대처 능력은 완벽히 대조됐다. 곤이 단추를 팔아 스스로 돈을 구하는 반면 태을은 차비가 없어 곤에게 부재중 17통을 남기며 발만 동동 굴렀다. 클리셰의 창의성을 굳이 꼽자면 ‘백마 탄 왕자님’에서 ‘헬기 탄 황제폐하’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곤은 대한민국이라는 다른 세계에서도 존엄한 대우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왜 대한제국에 떨어진 여성 형사는 절대적 보호자에 의지하는 나약한 서민이 돼야하는 걸까.

드라마 '더킹' 포스터. SBS 제공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의 주역인 명실공히 대한민국 톱클래스 김은숙 작가가 2년 만에 내놓은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가 연일 하락세다. 지금까지의 ‘김은숙표 신데렐라 문법’을 답습했다는 이유로 평행세계라는 특수 소재에도 시청률과 화제성은 답보 상태다. 2회에서 11.6%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6회에서 8.5%까지 추락했다. 전작 tvN ‘미스터 션샤인’과는 정반대다. 당시 1회에서 8.9%였던 시청률은 6회 들어 11.6%로 껑충 올랐다. 마지막 회에는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도 그렇다.

‘더 킹’은 ‘시크릿 가든’과 ‘도깨비’에 이은 김 작가의 세 번째 판타지 로맨틱 드라마이고, 그의 주특기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 반응은 사뭇 다르다. 김 작가는 2020년의 시청자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과 눈높이를 전혀 모르는 듯 보인다. 여성을 철저한 ‘을’로 그리는 그의 문법은 구태의연함을 넘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시청자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문제는 여성혐오다. 곤은 모든 것을 갖춘 제국의 황제이고, 태을은 평범하지만 남자 주인공을 단숨에 사로잡아 2회 만에 청혼을 받는 인물이다. 태을은 신분과 이름을 안 지 채 몇 시간 되지 않은, 사실상 모르는 남자 곤의 일방적인 키스를 받고도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구서령(정은채) 캐릭터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책으로 지지를 얻어 최초이자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서령 캐릭터를 만들어놓고도 굳이 황제와의 스캔들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얄팍한 설정을 추가했다. 서령은 곤에게 연인이 생긴 것 아닌지 의심하는 비서에게 “어려? 예뻐?”라며“(나는) 왼쪽이 더 예쁘네”라고 말했다. ‘어리고 예쁜’ 여성을 돋보이게 하고 이를 샘내는 설정은 김 작가 특유의 구시대적 여성혐오다. 전작인 ‘하이에나’가 기존 여성 캐릭터의 관습적인 나약함을 부수어 놨는데, 그 자리에 ‘더 킹’이 자리했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김 작가의 드라마는 신분상승 스토리가 기본이었지만 그 문법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 계기는 2013년 ‘상속자들’부터다. 그때부터 이미 여성들은 더 이상 신데렐라식 전복을 원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2016년 ‘태양의 후예’에 여자 주인공은 전문직으로 그리면서 반전을 도모했지만 적극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기본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강점인 주인공 간 밀고 당기는 쫄깃한 애정심리전을 큰 궤로 두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섬세했어야 한다. 남자 주인공은 언제나 능동적이고 저돌적인데, 여자 주인공은 한결같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동어 반복을 2020년에 적용했으면 안 됐다. 로맨스도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얽혔다. 유독 남자 주인공에게만 무례하고도 곧 그의 애정공세를 받아들이는 태을이 그렇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앞뒤 좌우 가리지 않는데 심지어 돈과 명예 모든 것 갖춘 남자 곤이 그렇다.

이 평론가는 “진취적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1900년대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며 지금의 변화를 만들어냈다”며 “지금의 여성 시청자는 다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여성이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부한데 개연성은 터무니없다. 자기세계에서 능동적이었던 태을을 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 캐릭터로 퇴행하도록 만드는 극단적 설정이 평행세계다. 이마저도 설명이 불친절하다. 드라마는 1994년과 2019년의 대한제국·대한민국이 번갈아 보여주지만 편집점을 구분하는 연결고리가 미약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런 판타지적 소재는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몰입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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