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놀랍도록 뻔하고 허술한 '김은숙 월드'

TV삼분지계 2020. 4. 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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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깊이도 성의도 없는 남성 숭배 욕망의 세계라니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첫 주 시청률이 11%를 넘겼음에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온다. 동시대 최고의 히트작가인 김은숙의 신작인 탓이다. SBS 새 금토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출발 전만 하더라도 JTBC <부부의 세계> 독주를 막을 대항마로 여겨졌지만, 뚜껑을 열어본 뒤의 반응은 “글쎄올시다”에 가깝다. KBS <태양의 후예>에서부터 tvN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와 서사를 시도하며 ‘김은숙 드라마는 뻔하다’는 고정관념을 벗으려 노력했던 전작들과 달리,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다시 익숙한 김은숙 월드의 문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님의 마이페이스에 휘둘리는 강단 있는 여자 주인공의 로맨틱 코미디. 아, 이번엔 백마를 탔다는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은 만장일치로 불만족스럽다는 평을 남겼다. 정석희 평론가는 난해하고 번잡한 스토리텔링 구조와 초반부터 과도한 PPL, 말장난 투성이인 대사를 지적하며 그나마 정이 가는 인물도 하나 없다는 점을 한탄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닌 젊은 황제의 멜로를 보고 싶다는 욕망 위에 건설된 세계”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계관이 엉성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두 평론가가 아직 첫 주니까 앞으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남겨뒀다면, 이승한 평론가는 김은숙 작가의 본질이 여성혐오와 백마 탄 왕자님 판타지이며 이번 작품이 그 욕망을 가장 앙상하게 드러냈다고 잘라 말한다.

◆ 난해한데 깊이는 물론 정이 가는 인물조차 없다니

난해하면 깊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가볍기 그지없다.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 첫 주 한 줄 요약이다.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과거와 현재를 뒤죽박죽 섞어 놓은 통에 집중이 쉽지 않다. 요즘 추세가 희비극의 공존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심할 수 있나. 아이를 무참히 살해하는 등 폭력적이었다가 느닷없이 광고 같은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말장난들이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입헌군주제 설정의 몇몇 드라마가 겹쳐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거에서 온 주인공 이곤(이민호)이 광화문 한 복판에 말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이라든지 도서관에서 현실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같은 건 tvN <인현왕후의 남자>의 김봉두(지현우)를 베낀 양 흡사하다.

이곤이 며칠간 공부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곤이 본래 있던 세계와 정태을(김고은) 경위와 만난 지금의 세계의 차이는 과거 소현 세자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소현 세자가 죽지 않고 영종으로 역사에 남아 호란을 막아냈고 그 이후로 두 세계가 달라져 지금에 이르렀다는 설정이다. 어이없는 건 그렇게 흐름이 바뀌었음에도 태어날 사람들은 다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 이곤의 가족과 황실 근위대장 조영(우도환)의 가족이 같은 구성으로 존재하지 않았나. 물론 드라마 속 평행 세계나 타임 슬립에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어차피 작가 마음이니까. 하지만 이리 꼬아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와 같은 오리무중 속에 정이 가는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을 가장 큰 흠으로 꼽으련다. 아직 첫 주, 앞으로 달라질까?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남성 숭배 욕망 위에 건설된 평행세계

김은숙 월드의 장르는 대개 남주인공에 의해 결정된다. 공동체를 구하는 액션 히어로가 보고 싶으면 휴먼멜로재난블록버스터가 되고(<태양의 후예>), 초월적 힘을 지닌 신화적 미남을 보고 싶으면 판타지가 되고(<도깨비>),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비장미 넘치는 영웅을 보고 싶으면 시대극이 된다(<미스터 션샤인>).

그러다 드디어 SF까지 왔다. <더 킹 : 영원의 군주>까지, 3연속 남주인공 캐릭터를 작품 제목으로 삼은 김은숙 월드는 이번엔 평행우주 소재를 내세웠다. 한쪽은 소현 세자가 호란을 막아내고 오늘에 이른 입헌군주제의 대한제국, 또 한쪽은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인 평행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다. 얼핏 거창해 보이는 세계관이지만, 첫 주에서 확인한 것은 역시나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닌 젊은 황제의 멜로를 보고 싶다는 욕망 위에 건설된 세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시작은 남성 숭배 판타지였다 해도,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은 그 욕망과 단순 로맨스를 뛰어넘으려는 서사적 실험을 조화시키는 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시작은 우려스럽다. 꽃미남 황제 이곤(이민호)이 멋지게 승마를 하고 조정대회에서 근육과 실력을 뽐내며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쇼케이스급 활약을 펼칠수록 세계관의 허술함은 두드러진다. 대한제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누군가 기미를 보지 않으면 밥을 못 먹고 말끝마다 참수를 외치는 황제, 그리고 ‘진보적인 정책과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 때문에 최연소 총리직에 오른 여성 정치인이 공존하는 세계라니.

대한민국의 태을(김고은)을 만난 순간, “자넨 이렇게 우주 너머에 있었군”이라고 아련한 대사를 건네는 이곤을 보고 싶었던, 그 욕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납득하기 힘든 안드로메다급 설정이 아닌지. 아직 첫 주인만큼, ‘갓은숙’의 신작인 만큼 다음 주부터는 좀 더 기대할만한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그 제국엔 예의도 성의도 재미도 없다

진보적인 정책으로 정계 진출 7년 만에 대한제국의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됐다는 구서령(정은채)은,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며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 같은 대사를 치며 첫 등장을 한다. 다음 장면은 어떤가. 아직 미혼인 젊은 입헌군주 이곤(이민호)에게 업무 보고를 하며 공보실 사진기자들을 잔뜩 대동해 스캔들을 자가발전하려 발버둥친다. 일국의 총리 자리까지 오른 여성 정치인을 이렇게 밖에 그리지 못하냐는 여성 네티즌들의 경악이 이어졌지만, 그 다음 회차엔 국무회의 직후 쓸만한 남자들이 없다고 투덜대고 이곤에게 혹시나 애인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며 아직 있지도 않은 존재에게 질투 먼저 느끼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 큰 성인여성을 함부로 “애기야”라고 부르는 게 심장이 두근거릴 만한 로맨틱한 멘트인 것처럼 포장했던 <파리의 연인>(2004)부터 지금까지 16년 간, 김은숙의 드라마는 그 정도가 다소 달랐을 뿐 단 한 번도 여성혐오 없이 작동했던 적이 없으니까. 곤란에 처한 여성 주인공을 구해주러 온 멋진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판타지로 커리어를 쌓아온 김은숙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정말 ‘황제’를 백마 ‘맥시무스’에 태워 여성 주인공 코 앞에 대령했다. 그리곤 자신에게 아무런 지위도 없는 세상에 떨어진 이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대인 정태을(김고은)에게 시종일관 다짜고짜 제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반말을 일삼는 걸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기시감이 든다면 그건 사실 이것이 김은숙 작가가 선보여 온 작품들의 본심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작들이 그나마 그 본심을 자잘한 설정 놀이로 숨겨보려 했다면,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그나마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과형’, ‘학자’, ‘군주’라는 이곤은, 만파식적으로 평행세계를 넘어온 뒤 이과형 학자라면 제일 먼저 할 법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세계와 세계를 넘나드는 규칙이 쌍방향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세계를 넘나들 때에 부작용은 없는지 테스트해보는 일 말이다.

이 지점에서 이미 ‘이과’나 ‘학자’로선 탈락인데, 자신이 대한민국에 머물러 있느라 국가원수가 공석일 대한제국에 대한 걱정도 안 하는 걸 보면 ‘군주’로서도 탈락이다. 두 세계 간의 시간이 어떤 법칙으로 흐르는지 어떻게 알고 이리 천하태평인가. 정태을은 이곤의 장광설을 들으며 “인터넷에 웹소설 연재하니?”라고 비웃었지만, 요새 어떤 웹소설이 이렇게 성의 없이 쓰고도 연재처를 구하나?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S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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