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스태프 갈아 만든 힐링 드라마라니 [ST포커스]

김나연 기자 2019. 10.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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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 사진=KBS2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시청률 14%, 화제성 1위. 그리고 힐링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장식하고 있는 수식어다. 시청자들의 쓸쓸한 마음을 따뜻한 사람 냄새로 달래주고 있다는 평을 받는 이 드라마 현장에는 실제로 '사람 냄새'가 없었다.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의 실제 촬영지는 포항 구룡, 보령 등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시청자들을 드라마를 통해 복잡한 도시생활을 잠시 잊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광의 뒤에는 하루 20시간 이상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담겨 있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이하 희망연대)는 14일 성명문을 내고 "현재 KBS2에서 방영하는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 현장에서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표준근로계약서가 아닌 업무위탁계약을 스태프들에게 강요하면서 현재 미계약 상태로 촬영을 진행 중이다"라고 고발했다.

희망연대에 따르면 제작 현장 스태프들의 미계약 상태 해결 및 노동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일 팬엔터테인먼트와 교섭을 진행했다. 1일 14시간(휴게시간 2시감 미포함), KBS 별관 출발 KBS 별관 해산, KBS 별관에서 지방(보령, 포항)으로 촬영 출발할 경우 이동시간 모두 노동시간에 포함시키는 것, 지방(보령, 포항)에서 KBS 별관으로 복귀 시 이동시간 보령은 2시간 포항은 4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는 것을 요구했다.

희망연대는 "제작사에서 촬영 스케줄을 이유로 현행 노동 조건보다 후퇴된 1일 16시간(휴게시간 2시간 제외) 촬영, 보령, 포항의 비수도권지역에 대한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에서 제외, 촬영현장의 노동자들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는 안을 제시했다"며 "'동백꽃 필 무렵' 제작현장의 스태프들을 기만하며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동조합 측은 "교섭 이후 10월 4일 촬영에서는 KBS 별관에서 오전 6시 30분 출발, 별관에 익일 3시 30분 도착, 총 21시간의 살인적인 고강도 촬영을 했으며, 다음 날인 10월 5일 오전 11시 출발하기 위해 숙소, 사우나를 스태프에게 제공했다"며 "제작사에서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사라진 20시간 촬영 및 사우나 숙박 적폐를 되살렸다. 스태프들의 노동인권을 침해하고,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하는 장시간 20시간 촬영 관행, 수면권 보장 없는 사우나를 제공한 팬엔터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동백꽃 필 무렵 / 사진=KBS2


이에 '동백꽃 필 무렵' 제작사 팬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15일 스포츠투데이에 "현재 제작사와 노조 간 긴밀하고 원만하게 협의 중"이라며 "조만간 좋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방송의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 '협의 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촬영은 끝나가는데 이제서야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협의한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스태프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임금, 소정노동시간, 휴일, 연차휴가 등 노동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17조 위반이다.

희망연대 관계자는 "드라마가 종영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서야 협의 중이다. 이런 행태를 계속 이어가니까 비판할 수밖에 없다"며 "모든 제작사가 계약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사들이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에 사인하고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도중에 계약하려고 한다"며 "안 좋은 관행을 이어가려는 행태를 보면 역겨울 정도다. 계약 지연 작전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방송제작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원인으로 팀 단위 도급 계약(턴키계약) 관행을 꼽는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팀 단위 스태프와 용역계약을 맺고, 팀장이 팀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방송사·제작사는 책임을 지지 않고, 팀장이 팀원의 사용자가 되는 기형적 구조를 낳고 있다.

앞서 방송스태프지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왜그래 풍상씨', '왼손잡이 아내', '닥터 프리즈너', '국민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등의 노동법 위반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미계약 형태로 촬영을 밀어붙여 턴키계약을 강요하는 등의 문제점이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또 드러나게 된 셈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성공 뒤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 '동백꽃 필 무렵'은 휴먼 힐링 드라마를 표방하며 스태프들의 노동력을 갈아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는 빛나지만, 스태프들은 여전히 열악하다.

관계자는 "드라마도 끝나가는 시점에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이유는 제작사와 방송사에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하루빨리 좋은 작업 현장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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