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 설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뎌 냈을까

손화신 입력 2019. 10. 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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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결코 익숙해질 수도 무덤덤해질 수도 없는 영혼의 상처

[오마이뉴스 손화신 기자]

향년 25세.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건 '25'라는 숫자였다. 설리가 정말 어렸구나,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구나 하는 사실이 거듭 놀랍게만 여겨졌다. 그리고 더 놀랍고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악플들을 감당한 이의 나이가 겨우 25살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연예계 활동을 오래 했을 뿐, 그 또래들의 평균적인 삶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이제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 그 많은 '미생'들은 바다를 처음 만난 나비처럼 사회의 잔혹함에 매일 상처 받는다.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20대 후반이 되고 30대가 되면서 조금씩 겨우 익숙해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해져 간다. 

시간이 지났다면 설리도 그 상처들에 익숙해졌을까. 단단해질 수 있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털어버리거나, 못 본 척 무시할 수 있는 날이 왔을까.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단련이 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상처가 있다. 누군가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것. 그 상처는 아무리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결코 익숙해질 수도, 무덤덤해질 수도 없는 '영혼의 상처'다.

영혼이라는 말이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정신과 영혼은 또 다른 영역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리는 우울증을 길게 앓아왔다. 우울증은 의학적으로 명명 가능한 정신의 질병이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받는 미움 섞인 말들, 시선들, 악플들이 마음에 쌓이고 쌓이면 그것은 단지 정신이 지친다거나 기분이 우울한, '우울증'이란 세 글자로 간편하게 부를 수 있는 질병에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정신의 영역을 넘어 영혼에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네가 우울증이 심했구나, 라고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실례일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의 영혼에 상처를 낼 권리는 없다
 
 설리
ⓒ JTBC2
사람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도 설리의 심정이나 기분, 정신과 영혼의 상태를 오롯이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리가 악플 때문에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조차 섣부른 추측일 수 있다. 다만, 설리를 향한 그 날카롭고 수많은 댓글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타인의 영혼에 생채기를 낼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 사람과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하더라도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물며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타인이라면 더더욱, 누군가를 비난할 1%의 권리나 지분도 없다.

개인적으로, 흔히 말하는 '멘탈'이란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성격이 그렇듯이 여린 성정이 있고, 뻔뻔한 성정도 있으며, 여리긴 하지만 남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성정도 있다.

악플을 받는 당사자에게 "네 멘탈이 약해서 그렇다"는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마치 '네가 여자로 태어나서, 최씨 성으로 태어나서,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그렇다'는 말처럼 앞뒤가 안 맞는 발상이다. 악플을 쓰는 사람들은 본인이 남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성격으로 타고났을지도 모르겠다. 남도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이 정도는 별거 아닌 말이라고 생각하고 툭툭 말을 내뱉는 것, 이것이야말로 멘탈이 갑이어서가 아닌, 멘탈이 엉망진창이어서 하는 행위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방송"

설리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사망한 가운데, 그가 MC로 고정 출연 중이던 JTBC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을 향해서도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설리는 이 프로그램에 '악플 많이 받는' 대표 연예인 자격으로 섭외됐고, 본인에게 달린 악플을 방송에서 직접 읽기도 했다. 악플들을 직접 입 밖으로 꺼내놓고서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밝힌다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였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방송"이라며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선, 상처를 입 밖으로 털어놓고 거리두기를 하는 작업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앞서 말했듯 사람은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고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설리에게도 이런 '허심탄회'가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완전히 그 반대였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희생되어야, 이 시대의 페스트 같은 악플들이 사라질까. 악플을 볼 때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여지없이 하게 된다. 악성 댓글을 쓰는 당사자들이 부디, 제발 부디 알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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