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리얼리즘, 한국영화의 길찾기
◆ 한국영화 100년 톺아보기 ③ ◆
영화 담론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리얼리즘 가운데 눈여겨 볼 것은 ‘코리안 리얼리즘’이다. 이 용어는 잡지 '영화세계' 1957년 2월호의 특집 '코리안 대 이탈리안리즘의 비교'에 등장했다. 허백년과 유두연이 주로 주장했는데, 이들은 당시 한국영화가 전후의 피폐한 현실을 담지 않고 '자유부인' 같은 서구의 풍경을 동경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네오리얼리즘을 주장했다. 전후의 피폐한 현실이라는 비슷한 환경이지만, 그들만의 철학과 미학이 담긴 영화를 만들어낸 네오리얼리즘을 본받기를 원한 것이다. 허백년과 유두연은 “일제 하의 굴종의 역사 속에서 ‘레지스탕스’ 의식을 가져야 했던 한국인의 ‘진실’을 포착하는 것이 리얼리즘의 내용”이고, 이를 “로컬 컬러 스타일”로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랑', '임자 없는 나룻배' 같은 영화를 코리안 리얼리즘의 전통으로 세우면서, 마침내 해방 후 남한의 영화 미학이 성립된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리얼리즘은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나 신파성이 다분한 멜로드라마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예술 영화이고, 이런 예술 영화는 전쟁 직후의 남한이나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고, 다시 이런 영화를 만든 주체인 작가주의의 반영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더 나아가면, 내용뿐 아니라 할리우드식 스타일을 거부한 리얼리즘 경향의 ‘스타일’을 옹호하는 인식으로 발전했는데, 이런 인식은 장르에 기반한 비틀기가 특기인 박찬욱이나 봉준호가 등장하기 직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니 영화 비평 담론에서 리얼리즘이 얼마나 질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코리안 리얼리즘을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 이전의 리얼리즘과 이후의 리얼리즘의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좌익 성향의 영화 집단 카프가 주창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1970년대에는 ‘영상시대’가 주창한 한국적 영화, 1980년대에 대대적으로 퍼진 사회적 리얼리즘 등이, 비록 접두사는 다를망정, 일정 정도 코리안 리얼리즘과 관련 있다. 이들은 모두 현실의 모순을 영화 속에 담아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경향을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각자 강조하는 곳에 다른 방점을 찍었다. 가령 1970년대의 한국적 영화는 아예 ‘한국적’이라는 접두사에 방점을 찍었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의 로칼 칼라와 연관되고, 2000년대 전후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략과도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코리안 리얼리즘은 한국의 현실을 영화 안에 담아야 한다는 당위성일 수도 있지만, 국제 시장이나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수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세계 시장의 절대적 강자인 할리우드 영화와 맞서는 독특한 영화적 특징을 찾으려는 미학적 고군분투일 수도 있다. 이처럼 리얼리즘 담론이 오랫동안 한국 영화 담론을 지배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영화가 각박한 민중의 삶이나 나라의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에 공감하면서 시기별로 그 특징을 달리한 것이다.
■ 매일경제·한국영화학회 공동 기획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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