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하고 평범했던 마을사람들 왜 '사이비 광신도'가 됐나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 OCN 드라마 <구해줘2> 포스터. |
ⓒ OCN |
마을도 수몰되고 마을 사람들도 수몰되었다. 댐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반목하던 주민들, 그들을 '통일'시킨 건 뜻밖에도 종교였다. 마을 청년 병률의 집에 나타나 법에 무지한 마을 사람들을 현혹한 최장로, 최경석(천호진 분). 그가 내세운 성철우 목사(김영민 분)는 안수 기도로 기적을 행했고, 기적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천국의 자리를 얻기 위해 수몰 예정 지구로 선정돼 받은 보상금을 모두 헌납한다.
천국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를 일굴 것이라던 그들의 기대는 최장로가 숨겨놓은 돈 가방 속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기적이 한낱 사기꾼의 협잡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폭주한 성목사는 최경석의 눈앞에서 그 '돈'을 교회와 함께 태웠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사이비에 현혹되어 죽음보다 더한 대가를 치룬 사람들
▲ OCN 드라마 <구해줘2> 스틸 컷 |
ⓒ OCN |
'사이비 종교 집단'을 전면에 내세운 <구해줘> 시즌1과 달리, 지난 5월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구해줘 2>는 신앙심을 사기에 이용하려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내세웠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한 작품. <사이비>는 이미 2014 한국 평론가협회를 비롯하여 해외 유수 영화제 초청 및 수상으로 '명작'으로 회자된 작품이다.
16부작 드라마로 돌아온 100여 분 남짓의 애니메이션. 한껏 길어진 서사의 구비를 위해 서주연 작가와 <도어락> 이권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 '월추리'를 배경으로 사이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드라마는 13~14회차까지 순진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비의 맹신도가 되어가는가를 충실하게 설득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실감 나게 그린 탓에 '고구마 전개'라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16회 초반에 이르러서야 성목사와 최장로의 실체를 알게 된다.
'신앙 공동체'를 일구자며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운 교회도, 그 교회를 만드는데 앞장선 최장로도, 성목사도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비규환에 빠진 마을 사람들. 드라마는 16부의 시간을 이끌어온 주인공들이 '사이비'에 현혹된 대가로 받은 '현실의 벌'을 보여주며 끝을 맺었다.
마을 사람들의 재산이 불에 타 사라진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파출소장(조재윤 분)이 신고를 받고 찾아간 집에서 붕어(우현 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다. 그의 장례식을 계기로 파출소장이 찾아 나선 월추리 사람들. 마을에서 대우받던 이장(임하룡 분)은 딸에게 용돈을 받아 술이나 마시는 처지가 됐다. 자신이 준 돈으로 술을 사 마시면 이젠 용돈도 주지 않겠다는 딸의 잔소리를 들으며. 그런 그를 견디지 못한 아내(김영선 분)는 집을 나갔다.
양계장(이윤희 분)은 빚을 갚기 위해 치킨 배달 오토바이를 몬다. 그 밝았던 대구댁(김미화 분)은 어두운 얼굴로 식당 일을 한다. 이들은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던 붕어의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살아있지만 사이비에 빠진 대가를 삶의 무게로 치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가 붕어와 다를 바 없다 여겨져서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이비의 결과물을 참혹하게 그려내며 시즌 2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구해줘2>는 종교라는 그릇에 담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의 사이비 같은 신념에 호도되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려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신앙이든, 혹은 또 다른 신념이든.
▲ OCN 드라마 <구해줘2> 스틸 컷 |
ⓒ OCN |
장로: "주 아버지 믿는 새끼가 살인을 하네? 와 이 새끼 완전 쓰레기네? 이거."
목사: "쓰레기는 너지. 그 자식은 심판받았거든."
15회. 드디어 서로의 정체를 알고 교회에서 마주친 최장로와 성목사. 두 사람이 서로를 쓰레기라 비아냥거리고 이기죽거리는 이 장면이야말로 <구해줘2>에서 가장 빛나는 씬이었다. 사이비에 빠져 스스로를 늪에 빠뜨린 월추리 사람들의 서사가 씨실이었다면, 그 씨실 위에 사이비의 그림을 그려낸 날실은 '사이비'의 주범 최장로와 종범 성목사였다.
점잖은 법대 교수로 등장해 대번에 사기꾼으로 얼굴을 바꾸는 최장로 최경석. 연기에 있어서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순식간에 상반된 본성을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새삼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가 연기한 최경석 캐릭터야말로 <구해줘2> 완성도에 결정적 한 방이었다.
마을 사람 모두의 지탄을 받는 동네 양아치 김민철 캐릭터를 맡은 엄태구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밀정> <택시 운전사> 등 단 몇 장면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냈던 엄태구는 <구해줘2>를 통해 16부작 극 전체를 아우르는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가족에게조차 외면받은 김민철을 향한 연민의 시선은 전적으로 엄태구 배우의 몫이었다.
어느 하나 연기 구멍 없었던 <구해줘2>지만,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를 꼽으라면 성목사 역의 김영민을 꼽는 시청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연극계에서는 내로라하는 배우인 그는 <나의 아저씨> <숨바꼭질>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기적에 함몰되어 파멸의 길을 걷는 목사 성철우 역을 맡아 그야말로 만개했다.
이들 외에도 <구해줘2>의 캐릭터들은 주연·조연할 것 없이 저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배우들은 각자 캐릭터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해냈다. 작품도 좋고, 연기는 더 좋았던 2019년의 명작. <구해줘2>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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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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