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쏙 빼놓는 '황후의 품격', 김순옥 작가 의도대로 됐다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 <황후의 품격> |
ⓒ SBS |
그도 그럴 것이 송혜교에 박보검라는 두 쟁쟁한 스타의 만남으로 화제성에서 당연 압도적이었던 <남자 친구>와 이른바 '막장의 대가' 김순옥 작가와 <리턴> 주동민 피디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 SBS <황후의 품격>이 격돌했기 때문이다. 과연 '스타캐스팅'과 '스타 작가'의 승부 결과가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불문율에서 이번 수목 대전의 승부도 벗어나지 않았다.
30분 빠른 방송 시간, 거기에 송혜교와 박보검이라는 두 스타, 그리고 쿠바의 풍광까지 얹은 <남자친구>는 첫 회(11월 28일)에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황후의 품격>을 8.8%로 너끈히 제압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는 케이블과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차이를 감안했을 때 더욱 눈길을 끄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남자친구>의 승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1월 29일 10.32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은 <남자친구>는 그 이후 시청률이 주춤하거나 조금씩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황후의 품격>은 '김순옥 작가도 미니시리즈는 힘든가'라는 초반 우려를 불식시키며 단 두 주만에(12월 12일) 8.513%의 <남자 친구>를 9.8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수목 대전의 강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황후의 품격>의 상승세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황후의 품격>은 12월 20일 13%로 <남자친구(9.166%)>와 4% 정도의 격차를 벌리며 수목 대전의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 <남자친구 > |
ⓒ tvN |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그 분들에게 삶의 낙이 된다면 제겐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왜 막장을 쓰는가'란 질문을 받은 <황후의 품격> 김순옥 작가의 답이다. 그리고 이 김순옥 작가의 말이야 말로 <황후의 품격>을 정확하게 정의내린 것으로 보인다. 작가 말에 대한 호응처럼, <황후의 품격> 기사 댓글에는 "다음 주가 궁금해서 어떻게 1주일을 보내냐", 심지어 "김순옥 작가 당신이 성공했소, 다음 주가 보고 싶어 이번 주를 버틸 것 같소"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즐비하다.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은 남편과 시댁에게 버림받은 뒤 점을 찍고 복수하던 <아내의 유혹>의 서사적 전통을 잇는다. 거기에 현존하는 황실이라는 배경이 막장 드라마 속 막가파 시댁을 업그레이드했다. 또 장나라, 신은경, 신성록, 심지어 아역인 오아린까지 출연진의 호연은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더구나 성형수술로 업그레이드 된 나왕식(최진혁 분)이 오써니(장나라 분)를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처럼 보호해 주나 싶을 때쯤 오히려 오써니를 함정에 빠뜨리는 등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는 시청자들이 달아날 틈을 주지 않는다. 기존 로코(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기대치를 산산이 무너뜨리는데서 오는 쾌감. 그럼에도 일관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무엇보다 김순옥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기다.
이런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을 사람들은 '막장'이라 부른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드라마.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다(다음 사전)'는 막장은 우리나라 주말, 아침 드라마의 주된 소재였다.
'막장'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는 질이 낮은 드라마라고 평가받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미국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역시 크게는 막장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 SKY 캐슬 > 속 가족 관계 역시 '막장'의 장르적 속성을 품고 있다. <남자친구> 속 차수현(송혜교 분) 주변 관계라고 다를까.
막장의 정의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 하지만, 그게 인기를 끄는 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제도가 가진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열광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모순'이 노정되는 한 '막장'은 존재할 것이다.
잠자던 연애 세포 자극제, <남자친구>
가끔 배우가 개연성인 드라마가 있다. 주말을 책임지는 현빈과 박신혜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러하고,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일찌감치 앞서갔던 송혜교, 박보검의 <남자친구>가 그러하다.
내용이 무슨 문제인가, 그저 아름다운 송혜교가 이쁜 옷을 입고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서 설레면, 당장 나도 가서 저렇게 단발로 잘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말이다. 그런데 그 송혜교가 보면서 설레는 대상이, 아줌마같은 단발머리를 해도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박보검이라니...
가기도 힘든 쿠바의 풍광 아래서 구 시댁과 친정, 전 남편, 그리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에 치여 자신을 돌아보기도 힘들던 차수현을 김진혁(박보검 분)이 위로해 주더니, 이젠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 '라면'먹고 싶단 한 마디에 대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득달같이 라면을 끓여 대령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시간은 3회까지였나보다. 여전히 두 배우를 통한 '시선 호강'은 여전하지만 <버디 버디> <예쁜 남자> <딴따라>까지, '개연성'이 다소 부족했던 유영아 작가의 극본과 쿠바를 떠나면서 풍광과 함께 감정 해석조차 두고 와버린 듯한, 박신우 감독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 붉은 달 푸른 해 |
ⓒ mbc |
'시' 문구로 상징되는 죽음. 주인공 차우경(김선아 분)과 강지헌(이이경)은 그 실마리를 쫓지만 드라마는 과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 차우경의 눈앞에 자꾸 나타나서 사건을 인도하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발 빠르게 추적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건 속에서 헤매는 주인공에 집중한다.
그들을 통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당신들은, 즉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소외된 사람들, 그 소외를 방조하는 사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드라마인 것이다. 당연히 요즘처럼 'LTE'급 속도가 아니면 못 견디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선 <붉은 달 푸른 해>의 느린 호흡은 애청자조차 따라가기 버겁다.
하지만 그렇기에 <붉은 달 푸른 해>는 그저 '스릴러'의 경지를 넘어선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일찍이 <늪(2006)> <케세라 세라(2007)>,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2015)> 등 가뭄에 콩 나듯 시청자를 찾아오는 도현정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늘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는, 아니 마치 작가 스스로 시청률을 저만치 밀어내는 듯한 작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 단편 <늪>이래 늘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면에서는 끝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테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수목 드라마 중에선 좋은 드라마로 가장 오래 기억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죽어도 좋아> |
ⓒ KBS2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 중의 갑인 MK치킨 내부의 우스꽝스런 중역진이라든가, 갑질을 일삼는 비호감 캐릭터 남자 주인공은 색채만 다를 뿐 <저글러스>와 <김과장>의 여러 요소를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어제 본듯 익숙한 강지환은 무엇을 해도 차태현인 차태현의 연기를 보는 듯하다.
<저글러스>에 이어 또 다시 상사 갱생의 주역이 되어 돌아온 백진희(이루다 역)는 안 그래도 익숙한 오피스물 <죽어도 좋아>를 더욱 진부하게 만든다. 막상 드라마를 보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님에도 마치 이전 드라마들의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라, 시청자들의 사랑을 얻기엔 다소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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