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화씨 11/9', 트럼프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조우

김시균 2018. 11.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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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 파헤친 다큐
'풀뿌리 민주주의' 복구 촉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마이클 무어와 도널드 트럼프는 배우 로잰 바의 새 토크쇼에 함께 초대받는다. 사전에 무어가 온다는 걸 몰랐던지라 트럼프는 잠시 주춤한다. "우린 정치적으로 상극이고 제가 왔다니 (그가 도망) 가려고 했죠."

어찌 됐건 "살살 해달라"는 PD들 요청을 수용해 토크쇼는 정상대로 진행되고, 무어는 그냥 농담이나 하며 봐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다 방송 중 트럼프가 농담 아닌 농담을 툭 던지는데, 이로 인해 장내는 뒤집어진다. 그 농담이란 이런 것이었다. "근데, 제 다큐는 안 만들 거죠?"

말이 씨가 되는 것이다. 20년이 흐른 올해 무어는 정말 트럼프가 주연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내놓았다. 22일 개봉하는 '화씨 11/9 : 트럼프의 시대'다. 2016년 11월 9일 '트럼프라는 괴물'이 대통령에 당선된 맥락부터 이것이 미국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짓이기고 있는지, 그럼에도 이에 대한 희망의 불씨는 과연 살아 있는지를 그는 악착같이 파헤친다.

트럼프 당선의 직접적 이유로 드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버니 샌더스가 웨스트버지니아주 55개 군에서 전승했음에도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선정된 게 한 예다. 선거인단 제도의 폐해였던 것인데,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탈당하며 무투표를 던진다. 1인 1투표 원칙이 배반된 것에 대한 환멸에 우군 힐러리마저 외면받은 것이다. 그런 다음 짚는 건 트럼프의 우군들이다. 배경은 무어 자신의 고향인 미시간주 플린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50% 이상을 점한 이 흑인 도시에 왜 썩은 식수원이 공급되며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중범죄가 저질러졌는지가 폭로된다. 그럼에도 '재난지역 선포'는 이뤄지지 않았고(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책임이 작지 않다), 사실을 은폐한 릭 스나이더는 여전히 주지사 자리를 유지 중이다. 그런 플린트야말로 무어에겐 미국 사회의 축도다.

그의 시선에 몰락의 징후는 명징해 보인다. 되살아난 인종주의, 총기규제 철폐, 반이민과 반난민, 기후변화협약 탈퇴와 보호무역주의…. 이에 대한 책임이 비단 트럼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무어는 직시케 한다. 히틀러라는 악이 배태했던 것도 결국은 그 씨에 물을 준 독일 대중에 힘입어서였다면서. 그러면서 그는 히틀러라는 파시스트 연설에 트럼프의 육성을 슬그머니 끼워넣는다. 그렇게, 이들은 짝패가 된다.

그럼에도 무어는 무어다. 그는 여전히 절망보다 희망을 본다. 그가 볼 때 '죽은 민주주의 사회'에도 필요한 건 여전히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보여줄 건 '행동', 그리고 '저항'일 것이다. 후반부로 갈 수록 그의 렌즈가 오래 비추는 것은 이 땅의 곳곳에서 투쟁하는 활동가들이다. 상식과 양심에 입각해 투쟁하는 이들이야말로 그의 눈엔 한 가닥 남은 '희망'이다. 그 희미한 불씨가 타오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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