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韓서 풀려난 성폭행범, 스리랑카서 잡힌 사연(종합)

이민지 2018. 11. 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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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민지 기자]

스리랑카에서 정의가 구현될 수 있을까.

11월 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1998년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정은희 씨 사망사건과 남겨진 의혹을 파헤쳤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스리랑카를 찾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에서 자일라(가명) 가족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보름날이라 가족이랑 어디 가셨다"고 말했다. 그가 집에 없다며 나가달라는 가족들. 가족들은 "우리에게는 너무 창피한 일이다. 오지 마라. 이 사건에 대해 모른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만나려 한 사람은 스리랑카인 K, 자일라, 하산따(가명)이다. 제작진은 4년 전에도 이들에 대해 취재한 바 있다. 대구공단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스리랑카인 3명이 여대생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지난 1998년 여대생 정은희 씨가 대구 구마고속도로 상에서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의 사인은 뇌파열이었고 사고 현장은 참혹 그 자체였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던 구급대원은 "너무 끔찍해서 손 쓸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난다. 빨간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주민등록번호가 2로 나왔다. 그래서 여자구나 했다"고 회상했다. 정은희 씨 친구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그쪽은 사람이 갈 일이 거의 없다. 고속도로에서 사람이 횡단하다 사고났다는게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구의 한 대학 새내기였던 정은희 씨는 사고 전날 밤 학교 축제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술버릇이 크게 없었다. 조용하게 어울려서 마시고 집에 잘 들어갔다"고 말했다. 은희씨는 오후 10시40분께 술 취한 친구 염씨를 데려다준다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염씨가 잠에서 깬건 대학 정문에서 500m 떨어진 길가였다. 졸다 깬 염씨가 은희씨에게 연락했지만 은희씨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은희씨가 다음날 새벽 고속도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정은희씨의 가방은 텅 빈 채 발견됐고 입고 있었던 청바지 안에는 속옷도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고 당일 오후 친구들은 고속도로 옆 풀숲에서 그녀의 물건을 찾았다. 깨진 콤팩트, 화장품, 찢겨진 리포트와 책 등이 발견됐다. 은희씨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이다. 풀 숲에서 여성 속옷 2점도 발견됐다. 은희씨가 사고 당한 1차선 반대편에서 물건들이 발견된 이유, 속옷이 발견된 이유는 뭘까.

당시 대구공단 외국인 근로자는 자일라가 이야기 한 소문 속 성폭행 피해 여성이 은희씨와 같은 대학생이었고 은희씨와 비슷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성폭행 가능성을 배제하고 교통사고 사망으로 사건을 마무리 했다. 경찰은 "팬티에 잡풀 같은게 많이 묻어있었다. 젊은 아가씨들이 입는 팬티가 아니라 아줌마들이 입는 팬티였다", "법의학 교수가 정액이 안나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속옷에서는 정액이 발견됐지만 이번엔 속옷이 은희씨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성폭행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은희씨 아버지는 재조사를 요구했고 국과수는 속옷 유전자를 분석했고 속옷은 은희씨의 것으로 확인됐고 성명불상의 남성 유전자가 검출됐다.

2013년, 15년만에 진실이 밝혀졌다. 은희씨 속옷에서 나온 유전자와 일치하는 남자는 스리랑카 근로자 K였다. 성폭행 소문에 등장한 가해자 3명 중 한 사람이었다. 검찰 조사 당시 통역은 "술 많이 마신 여자가 길에 넘어져 있었고 다리 밑에 가서 성폭행 했다. K씨, 자일라, 하산따이 가서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소문 속 성폭행 가해자는 3명이지만 K씨를 제외한 자일라, 하산따는 증거가 없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은희씨가 사고 당한 현장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사건 당시 현장은 주변이 논으로 둘러싸인 왕복 2차선 고속도로였다. 이제는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그날의 흔적. 그런데 사진 속 현장은 깨끗하다. 부검감정서에도 출혈이 거의 없었다고 적혀있었다. 법의학자는 "즉각적으로 사망이 일어나고 심장이 멈추면 살아있을 때의 심한 손상보다 피가 적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정은희씨는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걸까. 스리랑카 근로자들 사이에 무성했던 소문에 답이 있지 않을까. 소문에 의하면 세 사람은 피해 여성을 자전거에 태워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은희씨를 자전거에 태운 채 2.7km를 이동한게 된다. 은희씨가 끌려간 곳은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였다. 이수정 교수는 "세명의 노동자들이 지리적 지식이 많던 곳이다 보니 눈에 안 띄는 지역으로 여자를 데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성폭행을 당한 뒤 은희씨는 고속도로로 올라갔을 터다. 당시 경사면은 걸어올라갈 정도로 완만했다고 한다. 은희씨는 고속도로 중앙분리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느끼고 도움을 요청하려 다급히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은 것.

K씨의 지인은 가해자들이 은희씨의 죽음을 몰랐다고 말한다. K씨 지인은 "K가 잡혀갔다고 해서 다들 놀랐다. 이 사건이 이렇게 터질 때까지 그 여성분이 죽었다는거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또다른 외국인 노동자는 "죽은거 생각했으면 이야기 안하고 도망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K씨는 대구에서 스리랑카 식품 가게를 운영하며 자리잡고 있었다. K씨는 2010년 미성년자에게 성매수를 제안했다 적발됐고 2013년에는 30대 여성 강제 추행으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었다. 검찰은 K씨를 특수 강도 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별다른 증거가 없어 풀려난 자일라와 하산따는 불법체류 문제로 2003년과 2005년 스리랑카로 추방됐다. K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의 과거 만남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의 DNA가 나온 것에 대해 그는 "DNA가 어떻게 나오냐. 그렇게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K씨는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성폭행을 했으나 처벌할 수 없었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됐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강간죄로 기소할 수 없어 특수강도 강간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특수강도 강간죄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특수강간은 가해자가 2명 이상이고 흉기를 가지고 있거나 일몰 후 범행일 때 이 죄명을 붙인다. 강도는 폭행과 협박이 동반된 상태에서 물건을 갈취한 것이다. 특수 강도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특수강간 혐의는 어떨까. 강간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으로 기소자체가 불가능했다. 특수강도 강간 혐의의 공소시효는 15년이고 이 때문에 검찰이 특수강도 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이 죄명이 성립하기엔 강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결국 사건 초기 경찰의 잘못된 초동 수사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캔디에서 마트를 운영한다는 정보만 가지고 K씨를 만나러 갔다. 동네 사람들은 K씨에 대해 묻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한국에서 일했던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K씨는 어떤 존재인 것일까. 이들은 K씨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렸다. 대구지역 경찰들도 그를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14년 대구 경찰관계자는 "본인 자체도 폭력성이 있다. 그쪽 애들이 무서워한다. 조직이 좀 있다"고 말했다. K씨 지인은 그를 모함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산따는 "나는 모른다. 거기 있지도 않았고 모른다. 기억이 안난다. 거짓말로 있었다고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나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얼마든지 촬영해도 좋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는 "K를 만난 적이 있다. 전화와서 어디 있냐고 했다. 그 사람 부인과 왔었다. 그냥 와서 이야기 하고 갔다. 누군가 자기를 잡으려 한다고 했다. 그 사람도 자기가 성폭행 안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리랑카 검찰이 고 정은희씨 사건을 수사하고 용의자 K씨를 기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스리랑카 날린 로산타 법무차관은 "심문 결과 K씨가 주동자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콜롬보 법원에 기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지 검찰이 한국에서 범행을 저지른 K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그는 "스리랑카 사람이 외국에 가서 범죄 행위를 한 것이 스리랑카 국내법에도 위반이 된다면 스리랑카 법원에서도 같은 사항으로 적용된다. 외국에서 위반한 것을 스리랑카에서 기소하고 재판한 것은 처음이다"고 설명했다. 이는 2016년 개정된 법에 따른 것이다. 스리랑카는 성범죄에 특히 엄격하다.

K씨는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으로 기소됐다. 이에 로산타 차관은 "성추행으로는 5년 형이 최고이고 다른 법을 적용해 벌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성폭행은 성폭행 피해자가 직접 진술해야 하고 그것을 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증거물로 성추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속옷을 내리는 행위 자체가 성추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기소는 우리 검찰이 스리랑카에 공조 수사를 요청하고 스리랑카 검찰이 뜻을 같이 하며 시작됐다. 김영대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지검장은 "2심에서 유죄를 받을거라 생각했다. 상고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리랑카에 알아보니까 스리랑카에는 아직 시효가 남아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안되면 외국에서라도 밝혀야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영대 지검장은 "성추행으로 기소해 실망이 크긴 했지만 스리랑카에는 스리랑카의 법이 있는거니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만, 죄명은 성추행이지만 스리랑카의 경우 국내 강간죄 보다 더 높은 수위의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을 만난 자일라는 "할 말은 경찰서에서 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스에 나오는거 전부 사실은 아니다. 뉴스에 나와도 이건 20년 전 사고다. 이것을 본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이 방송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핫산이 하라는대로 했다. 그밖에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하면 한국에 다시 가기 위해 도와준다고 해서 그렇게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모든 것은 K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한거다. K가 잡힌 후 핫산이 이야기 해서 소문이 다 나버렸다. 아니면 아무도 모를텐데"라고 말했다. 핫산이 K를 모함하기 위해 일을 꾸몄고 자신은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이다. 핫산은 누구이며 K씨와 어떤 관계일까. 외국인 상담소 관계자에 따르면 K씨와 핫산은 사업경쟁을 하느라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하지만 자일라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그동안 여러차례 진술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검찰은 자일라와 하산따를 기소하지 않았다. 로산타 차관은 두 사람의 기소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만 아직 뚜렷한 증거가 없고, 진술이 계속 바뀌고 있어 참고인으로만 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검찰과의 첫 공조인 만큼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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