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 "마음 잘 맞는 조승우..나이 들면 '꽃보다 할배' 같이 찍을래?" [인터뷰]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 직감했다. 머지않아, 이 배우의 ‘시간’이 오리라는 사실을. 당시 유재명(45)을 본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어느 것 하나 꼬투리 잡을 수 없는 연기력을 갖췄으니 말이다. 꼭 1년이 지났다. 유재명은 이젠 영화나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내뿜는 카리스마는 또 어떤가. 9월 한 달간 그가 선보인 영화가 세 편, 드라마도 두 편이나 된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유재명을 찾고 있다는 의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본 연극에 빠져, 20년 넘도록 오로지 연극에만 몰두해 살아온 그에게 ‘새로운 삶’이 열리고 있다.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지금의 상황에 그가 툭 내뱉은 한마디, “살다보니 참, 별 일 다 있다.”
● “연극은 내게 ‘열병’…7년 전 서울로 도피”
유재명은 이번 추석에 영화 ‘명당’으로 관객과 만났다. 주연을 맡은 다양성영화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 역시 동시에 극장서 상영하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라이프’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와중에 단막극 ‘탁구공’까지 소화했다. 그는 “‘이거 안하면 후회 하겠다’ 싶은 마음에 한 편씩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생선 장사를 하면서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께 “효도하자”는 생각에 등록금 싼 국립대(부산대)에 진학했다. 전공도 연기와는 무관한 생명공학을 택했다. 특별한 꿈이 없던 인생은 대학에 입학한 직후 달라졌다.
“입학한 3월에 우연히 연극을 봤다. 상여 나가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다. 연극에 미쳤다. ‘열병’ 같은 게 있었다.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으니 말 다했지. 어머니께서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집에도 안 오고 연극하면서 술 먹고 다니니까. 그런 게 오랜 내 삶이었다.”
“너무 많은 열정을 쏟다가 번아웃! 아무런 계획 없이 서울로 왔다. 선배들 만나고 연극도 볼 심산이었다. 그렇게 눌러앉았다. 마흔 살까지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나름 홈그라운드 인프라도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까, 이거 원.(웃음) 아는 사람들 따라 영화사에 프로필도 냈지만 안 됐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이제 내려가야지’ 했다.”
바로 그때 유재명은 자신의 연극을 보러온 지금의 매니저를 만났고, 그 직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울살이는 녹록치 않았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성북구의 한 옥탑방. 경제적으로 나아진 지금은 근처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유재명은 요즘도 가끔 그 옥탑방을 찾아간다고 했다.
“옥탑방 앞에 가서 그 집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간절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힘들었지만 뜨거운 때였다. 지금은 일도 많고 행복할 수 있지만, 어쩌면 위기일 수도 있다. 인생이 열 바퀴의 레이스라면, 나는 다섯 바퀴를 100미터쯤 앞둔 상태다. 레이스를 잘 완주해야 한다고, 늘 새기고 있다.”
● “내 연기에 비린내가 나면 뒤통수를 때려줘”
유재명은 지난해 ‘비밀의 숲’으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때에 영화 ‘명당’을 택했다. “인생의 캐릭터를 만났지만 연기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흰 머리카락이 확 올라올 정도로 힘든 드라마”를 마치고 한동안 쉬고 싶었지만, 시나리오 속 구용식이란 캐릭터에 마음이 흔들렸다.
“얼굴 작은 꽃미남들 사이에서 벌에 쏘인 단 한 사람처럼, 잔망을 떠는 구용식이란 인물이 날갯짓하는 게 좋았다. 자기만의 신념을 가진 조력자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민초의 생활력을 보이는 인물이다.”
‘명당’에 함께 출연한 배우 조승우는 이제 유재명을 이야기할 때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비밀의 숲’부터 ‘라이프’까지 내리 세 편을 같이 했다. 그는 조승우와 처음 촬영장에서 만나 연기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서로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그런 느낌이다.
“승우가 서른 편을 같이하고 싶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그건 너무 먼 이야기다. 하하! 언제, 어느 때든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와! 반갑네 친구!’ 하면서 같이 연기할 친구다. 훗날 ‘꽃보다 할배’를 하게 된다면 꼭 같이 가고 싶은 친구이고.”
“술자리에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은지 물어보는 후배들이 한둘씩 생겼다. 그럴 땐 솔직하게 말한다. 연기를 안 해도 된다고. 우리 때와 다르지 않나. 연기 말고도 더 행복한 일이 분명 있다. 나도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졌다. 배우가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절망하지 않길 바란다. 나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유재명은 친한 후배와 동네를 산책하면서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을 들려줬다. “내 연기 비린내가 나면, 뒤통수 때려달라고 했다. 열심히 달려서 잘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중심’은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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